[인터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양노자 사무처장 "위한부 합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인권'에 대한 책임, 시간이 많지 않다"

[뉴스포스트=박은미 기자] “병을 치료하는 데 시간이 걸리듯 한국이 위안부 합의를 착실히 이행하는 데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돈도 지불했는데 다시 재협상이라니,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다”

일본 아베 정부의 특사 자격으로 최근 방한한 니카이 간사장이 한 말이다. 그는 한일 위안부 재협상 여론을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우리 국민을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환자’로 비유하며 강도 높은 막말을 일삼았다. 가해 국가의 특사가 피해 국가의 국민을 싸잡아 모욕하는 건 외교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의 정권 교체로 위안부 문제 재검토가 부상할 것을 염려한 일본은 ‘합의 밀어붙이기식’ 방어 자세를 더욱 견고히 취하고 있는 것이다.

시작은 재 작년 겨울이었다.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는 한일 밀실 합의를 체결했다. 2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우리 국민은 그 정부를 탄핵시켰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았던 박근혜 정부의 지난한 과정을 뒤로하고 대한민국 헌정사상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탄핵 100여일이 지난 오늘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재검증하는 방침을 확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혹자는 이를 두고 절반의 성공이라 일컫는다. 한일 합의 1년 반 만에 잘못된 국정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은 확실하니까. 하지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 서왔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의 생각은 사뭇 달랐다. 새 정부 들어서서 우리의 잘못된 역사들이 하나하나 바로 세워지길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뉴스포스트>는 그 출발점에 선 위안부 합의에 대한 현안을 19일 양노자 정대협 사무처장을 통해 들어봤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양노자 사무처장 (사진=박은미 기자)

일본 ‘위안부 합의 밀어붙이기’ 심각

정권이 교체됨에 따라 한일 합의의 재검토가 시작되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일본 특사를 만난 자리에서 위안부 합의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언급했으며, 정대협의 활동에 적극 참여해온 참여연대 출신의 정현백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를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로 지명하기도 했다. 일련의 변화가 정대협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 양 처장의 짧은 소감을 물었다.

“소통하는 기분이 듭니다. 물론 힘이 나죠. 일본 정부와의 공식적인 자리에서 위안부 문제의 부당함을 언급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일겁니다. ‘한일합의는 유효하다’는 것이 전 정권의 입장이다 보니 이에 대한 논의 자체가 불가능했죠. 수요시위를 두고 정권에 반하는 불법집회로 보는 시선도 일부 있었고요. 이제는 정부의 입장이 변화한 만큼 당당하게 저희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수요 시위에도 수차례 참여했었고, 정현백 교수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을 위해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어요. 이 같은 지도부의 이력을 봤을 때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 재협상에도 목소리를 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선 정부와 대화의 물꼬를 틀수 있는 여지는 열린 셈이다. 다만 아직 축배를 들기는 이르다는 것이 양 처장의 생각이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합의 밀어붙이기’ 여론전 나서며 더욱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권 교체를 앞두고 일본은 자기 방어논리를 쏟아냈습니다. 정권이 바뀌면 위안부 재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던 거죠. 지난달 말 NHK 등 일본 언론은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아베 총리와 회담 당시 위안부 합의를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유엔 수장이 일본 측 입장에 손을 들어줬다는 보도가 나온거죠. 논란이 불거지자 유엔은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 합의에 따라 해결할 사안’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아쉽게도 한국 외교부는 사무총장 발언에 대해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은 해외에 자신들의 입장을 더욱 강력히 주장한 뒤 왜곡된 보도를 내고, 이를 아베 총리의 외교 성과라고 치켜 세우고 있습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한일합의 무효’ 발언 등에 자극을 받아 정도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특사가 막말을 일삼을 것도 이런 이유가 포함됐겠죠. 정대협은 위안부 피해자에서 여성인권운동가로 평생을 싸워 온 할머니들과 함께 국제 사회를 통해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287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앞줄 가운데) 대표를 비롯, 청소년 참석자들이 일본의 공식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제공)

‘증거는 없고 증언만 있다’식 역사지우기 우려

정대협은 한국 사회운동의 고유명사처럼 자리 잡은 ‘수요 시위’를 이끄는 곳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회복과 전시 상황에서 여성과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막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로, ‘평화의 소녀상’을 처음 세우기도 했다.

“저희의 주요활동은 매주 수요일 낮 12시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여는 수요 시위입니다. 1992년 유엔인권위원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상정하고 1월 8일 수요일에 첫 수요시위를 열었죠. 당시 일본 총리가 우리나라를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그 후로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시민들의 관심과 동참 덕분에 급속히 늘어난 참여 인원이죠. 그간 수요 시위를 하면서 일본은 변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평화와 인권을 만들어냈다는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도 아마 이렇게 큰 운동으로 확대될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거에요. 일본의 공식 사죄와 위안부 문제 해결이 있을 때까지 수요 시위는 쭉 계속 될 것입니다”

양 처장은 어눌한 말투로 그간의 정대협 활동들을 차근차근 들려줬다. 보통 시민단체의 실무를 맡고 있는 본부장들은 언론과의 소통을 통해 쌓은 숙련된 인터뷰 기술을 자랑한다. 하지만 느릿하고 친근한 말투로 인터뷰에 응하는 양 처장의 모습에 기자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양 처장은 재일교포 3세다. ‘노자’라는 일본 이름 앞에 ‘양’이라는 한글 성을 붙여 쓰고 있다.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정대협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했고, 2017년 신임 사무처장으로 임명됐습니다. 원래는 일본에서 언어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물류 회사에 다니다가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한국으로 건너왔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도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한국에 오자마자 정대협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했어요. 때마침 일본은 54년만에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됐죠. 미국에서도 민주당이 집권을 했고요. 지금 우리나라가 ‘평화냐? 대결이냐?’의 기로에 서있었는데 일본과 미국에 ‘대화할 수 있는 정권’ 들어선 셈이죠. 이런 중대한 시기에 위안부 문제도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판단해 그나마 저의 전공인 언어 지식을 내세워 양일간 소통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게 됐습니다. 일종의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수호자이자 해결사로 나선 양 처장은 고충도 많이 겪었다. 어리숙한 한국어 솜씨로 의해 받는 오해, 일본인이 아니냐는 주변의 편견, 일본 정부의 압박, 한국 정부에 대한 실망감, 운영자금 부족 등 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양 처장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세월의 야속함이다.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기에 하루빨리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 할머니들에게 진정한 해방을 드리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일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양국 정부의 의식변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한 순간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저도 알죠. 하지만 시간이 정말 없습니다. 할머니들의 건강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나이를 드시는 탓에 점점 기력이 쇠해 지시니까요. 현재까지 많은 할머니들을 떠나보냈습니다. 지난 4월 4일 이순덕 할머님께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셨죠. 이제 위안부 피해 할머니 238명 중 생존자는 38명으로 줄었습니다. 이러다 만약 할머니들이 모두 저희 곁을 떠나시고 나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요? 위안부 역사에 대한 실질적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일본은 완벽한 역사 지우기에 나설 것입니다.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가 정식으로 사과할 때까지, 목숨이 다 해 죽기 전까지 시위에 나가겠다고 하십니다. 일본 정부는 이걸 아니까 시간을 벌고 있는 거죠”

실제로 일본 정부는 10억엔의 성격이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금이 아닌 치유금 명목의 위로금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일본은 지금까지 일관되게 ‘위안부’를 정부 주도가 아닌 단순한 군대 차원의 주도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국가적으로 책임이 없으니 공식 사과도 필요없다는 논리다.

또한 ‘증거는 없고 증언만 있다’는 이유로 위안부 징용 역사도 부정하고 있다. 증거는 불변하지만 증언은 언제든지 변하고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이 일본의 주장이다. ‘목숨이 다 할 때 까지 어디 한번 버텨봐라, 세월 앞에 장사는 없다’식의 꼼수로 역사 지우기 작업도 진행 중이다. 우리가 더욱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요 시위에 참석한 초등학생들이 손팻말을 들고 합일 합의 무효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박은미 기자)

위안부 합의 갈등, 후손에 대물림해선 안돼

일각에는 위안부 합의가 한일 새 관계 정립의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양 처장은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일간의 자존심과 국익논리가 아닌 평화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의 관계가 인권 문제 때문에 악화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죠. 인권은 옳고 그름에 대한 답이 명확한 인류 공통의 평화가 달린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저희가 해결해야 앞으로 미래세대는 온전한 평화와 화해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양국의 미래세대 아이들까지 위안부 문제로 서로 할퀴며 다툼 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역사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이 그렇게 강조하는 실증주의 역사관에 따라 위안부 피해 역사의 산증인인 할머니들이 아픔을 딛고 직접 증언에 나섰습니다. 일본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 등 상식과 국제 인권 원칙에 근거한 해결만이 유일한 화해의 길입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우리의 발걸음을 제대로 찍어야 할 때다. 그 어떤 역사도 돈으로 바꿀 수 없고,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양 처장은 미래세대에 남겨줄 유산으로 평화를 위해 노력한 국민들의 정신을 꼽으며 우리 역사의 허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손팻말을 들고 수요 시위에 참가한 초등학생들을 볼때마다 양 처장의 걱정이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지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한일 합의와 소녀상 강제 철거 사태 이후 수요 시위에 참석하는 청소년들의 비율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왜곡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역사를 아이들이 스스로 바로 잡고 있는 셈이죠. 미래 세대들이 일본군 성노예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이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교육과 추모사업을 병행해 평화의 장을 만들 것입니다. 정부 또한 그릇된 역사관의 최대 피해자는 자라나는 미래세대라는 점을 분명히 자각하고, 미래세대의 교육에 있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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