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합동 점검에, 중개업소 집단휴업 및 숨바꼭질 영업 돌입
일주일째 적발 건수 '잠잠'...국토부 "투기 근절 예방책으로 봐달라"

[뉴스포스트=박은미 기자] “어르신, 여기 부동산 문 언제 열어요?” 서울 송파구 부동산 밀집 상가에서 편의점을 운영 중인 김모(51)씨는 기자의 질문에 손으로 단호하게 ‘엑스자’를 그렸다. “기약 없어요. 단속기간엔 문 안 엽니다. 밤늦게 오시든가 전화로 문의해보세요” 김 씨의 구체적인 대답에 요즘 이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은지 궁금해 졌다. “여기가 송파에서 땅값이 제일 비싼 동네 아닙니까. 돈 있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지역이죠. 그거 막겠다고 정부서 단속을 하는 건데... 단속반이 부동산 주인 얼굴이나 볼 수 있을 런지 모르겠습니다”

시장과열을 부추기는 부동산 불법행위를 막겠다며 대대적으로 실시한 정부 합동점검 결과 강남, 송파 일대 중개업소들이 일주일째 모두 문을 걸어 잠그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중개업소들이 단속이 온다는 소식을 알고 일제히 문을 닫으면서 ‘불법행위 1건 적발’이란 저조한 성적표까지 나오자 단속 실효성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 엘스아파트 인근 부동산이 불을 끄고 창문을 가린채 영업을 하고 있다. 문이 닫긴 부동산 영업장 뒤쪽 창문 너머로 손님들이 보인다. (사진=박은미 기자)

 

꼭꼭 숨어라 불빛 보일라

잡으려는 정부와 피하려는 업주들 사이의 숨바꼭질 영업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20일 기자가 찾은 강남·송파 대로변 일대 중개업소는 단 한 곳도 공식적으로 영업을 하지 않았다. 단순히 문을 걸어 잠근 것이 아니라 블라인드나 신문지 등으로 창문을 다 가린 ‘폐점’ 수준의 외관이었다. 창문을 가린채 불을 꺼놓고 몰래 영업을 하는 중개업소도 간혹 볼 수 있었다.

이날 오전 11시 10분께 송파구 잠실 엘스아파트 상가밀집 지역. 문이 닫겨있던 B공인중개소 뒤쪽으로 돌아가니 안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뒷문을 두드리니 단속반이 아님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줬다.

B공인중개소 매장 안에는 총 4개의 테이블이 있었는데 테이블 당 서너명의 사람들이 둘러 앉아 열띤 상담 중이었다. 취재를 나왔음을 밝히자 B공인중개소 관계자 김모씨는 “보시다시피 지금 매우 바쁘다”며 당혹감을 드러냈다.

김 씨는 창문을 가리고 앞문을 잠근 이유에 대해 “꼭 잘못한 것이 있어서 몰래 영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며 “단속에 걸릴 게 있었다면 아예 영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송파 재건축지가 정부 규제의 중심에 서있다 보니 매도자나 매수자 모두 눈치만 보며 시장이 침체됐었다”며 “그런데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거래를 희망하는 고객이 있어 약속 시간을 잡아 오늘 상담을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불법행위를 한 부분이 없다면서 숨바꼭질 영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씨는 “한번 점검을 받으면 4-5시간에 걸쳐 내부 자료를 다 보여줘야 하고 행정 기록에도 남는데 누가 좋아하겠냐”고 말했다.

이어 “단속반은 어떻게든 적발 건수를 올리는 게 목적인 사람들이다”라며 “억울한 부분을 말한다해도 얼마나 반영 될지 미지수기 때문에 업주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의 점심시간이 끝나 오후 단속반이 뜨기 시작하는 2시 이후에는 가게 문을 아예 닫을 것이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일대 상가에 있는 공인중개업소가 모두 문을 닫았다. (사진=박은미 기자)

서울 강남의 중개업소 분위기도 별단 다르지 않았다. 강남구 개포동 인근 D상가의 공인중개소들은 모두 문을 걸어 잠궜다.

D상가의 경비원 송모씨는 “중개업소 주인들은 오전 일찍 이나 오후 늦게 잠깐씩 들러 필요한 서류를 챙겨가곤 한다”며 “이참에 아예 영업을 포기하고 휴가를 떠난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송 씨는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뿌리 뽑기 위해 단속하는 거지만 상가 임대료도 나가는데 영업을 포기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며 “아무래도 매일 만나는 이웃들이다 보니 팔이 안으로 굽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강남구 압구정동 G중개업소 관계자 정모씨도 가게 문을 닫은 채 전화 영업만을 하고 있다.

정 씨는 “합동 점검을 피하기 위해 공무원들이 퇴근한 후인 오후 늦은 시간에만 영업을 하며 단속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놓고 영업을 하는 극소수 중개업소들은 공인된 모범 업소들이다”라며 “숨바꼭질 영업을 하는 업소들은 단속반이 뜨면 문을 닫고 영업장을 뜨면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역별 중개업자들의 단체 SNS 채널이 있어 주변에 공무수행 차량이 뜨는 즉시 해당 사실이 공유된다. 10분 내로 인근 중개업소가 다 문을 닫을 만큼 치밀한 연락망이 구축 돼 있기 때문에 단속의 어려움이 상당하다.

 

(사진=박은미 기자)

물먹은 정부 단속, 실효성 논란

중개업소가 일제히 문을 닫다 보니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불법행위 1건 적발’이란 저조한 성적표까지 나오자 단속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며 단속이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이번 단속은 새 정부의 투기세력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다지기 위해 지난해 단속보다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실제로 지난해 단속보다 2배 많은 99개조 231명에 달하는 관계기관 합동 현장점검반을 구성한데다 대상도 전국으로 넓혔다.

국토부 토지정책과 관계자 성모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적발 사례가 미진하다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 씨는 현재까지의 점검 상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우선 지난 이틀간 101건의 허위신고 의심사례를 발견하고 1건의 불법행위를 적발했다”며 “아직 단속을 진행 중인 사항이기 때문에 매일 정확한 데이터를 내놓기는 어려우니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때가 되면 공식 입장을 통해 합동 점검 성과와 진행 사항을 밝히겠다”고 덧붙였다.

단속에 대한 실효성 논란에 대해서는 “국토부는 강제력을 띄는 수사 기관이 아니다 보니 현장 조사의 한계가 있다”며 “이번 점검을 적발 사례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앞으로 정부가 펼쳐나갈 부동산 정책의 방향성을 알려주기 위한 환기개선책으로 봐달라”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중개업소들이 집단 휴업과 숨바꼭질 영업을 포기할 때 까지 암행 단속을 무기한 실시해 시장 교란 행위를 근절해 나갈 것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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