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대책위 "밀실협상 통한 은폐 의도, 공정위 제소 검토할 것"
사측 "외부단체의 교섭 참여 허용 못해, 법적 보상 책임도 없어"

[뉴스포스트=박은미 기자] “CU본사 측이나, 어느 곳에서도 저희가 당한 고통과 슬픔을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CU 박재구 대표님, 임직원 여러분. 사회적인 도리와, 인간적인 윤리의 차원에서라도 저희를 만나 대화를 나눠 주십시오” CU노동자 피살사건 피해자 아버지는 지난 21일 BGF리테일 정문 앞에서 눈물 섞인 호소문을 낭독했다. 대화를 요구한지 4시간이 지났지만 굳게 닫힌 정문은 결국 열리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허공에 떠도는 메아리 신세와 다를 바 없었다.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BGF리테일 본사를 방문했을 때도 문전박대를 당한 터라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땡볕에 찾아온 유가족의 목소리에 귀를 열었어야 할 박재구 대표는 또 한번 소통의 기회를 놓친 셈이다. 유가족의 주장에 대한 정당성을 논하기에 앞서 이런 문전박대가 없었다. 

 

지난 21일 BGF리테일 직원들이 '경산CU알바노동자 피살사건' 관련 면담을 요구하는 CU대책위를 제지하고 있다. (사진=박은미 기자)

경산CU알바노동자 피살사건이 벌어진 지 6개월이 넘은 21일 오전 10시께 선릉역에 위치한 BGF리테일 본사 앞. 

BGF리테일 직원들이 대화를 희망하는 피해 노동자 아버지를 막아섰다. 굳게 잠긴 정문 위에는 ‘고객의 안전을 위해 출입문을 폐쇄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유가족과 CU편의점노동자 살해사건 시민대책위(이하 CU대책위)는 정문으로 들어갈 것을 요구하였으나, 끝내 정문은 열리지 않았다. 면담 요청을 거부당한 CU대책위는 4시간가량 정문 앞에 서서 BGF리테일 측과 대치해야만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 아버지의 표정에 지쳐가는 기색이 역력했다. CU대책위 관계자들은 따가운 햇볕에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고개를 숙여 고인을 추모하기도 했다. 

사회변혁노동자당의 정주회씨는 최근 BGF리테일이 대응책으로 마련한 'CU측의 안심편의점 계획'에 대해 보여주기 식 여론몰이에 불구하다고 지적했다.

“CU대책위는 오래 전부터 얘기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당사자, 알바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 피해자의 유족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 그리고 원인이 얼마나 복합적이고 무거운지 알아 달라. 대책도 그만큼의 책임감 있게 마련돼야 한다. 안전 시스템이 언제까지 전국적으로 확대될 것인지, 구체적인 방법과 시행시기를 함께 마련해야 할 것이다”

 

 21일 오전 BGF리테일 본사 앞에서 CU대책위가 기자회견을 열고 직접 면담을 촉구 하고 있다. (사진=박은미 기자)

CU대책위 최기원 상황실장은 그간의 협상 진행 과정을 설명하며 직접 면담을 요구했다.

“BGF리테일은 사건이 벌어진 지 6개월이 지났으나, CU대책위의 교섭 요구에 전혀 응하고 있지 않다. 유가족은 단 한 푼의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안전대책이라며 안심편의점을 계획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사건이 일어난 해당 편의점은 사건 이후 단 한 번의 안전 점검도 없었다. 대부분의 CU편의점 역시 전혀 달라지지 않은 환경 속에서 심야 영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은 본사인 BGF리테일의 책임 있는 사과와 보상, 안전대책 마련, 야간노동 유도정책의 중단 등을 요구했다. 박재구 대표가 유가족에게 직접 사죄하고 책임을 짐으로써 제 2의 경산CU사건을 막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BGF리테일이 CU대책위와 일절 소통하지 않으며 갈등이 장기화 되고 있다. 다섯 차례의 교섭요구 공문에도 응답하지 않고 유가족과의 밀실협상만을 고집하는 상황이라라고 박준규 알바노조 조합원은 주장했다.

“BGF리테일 측의 태도는 유가족과의 밀실 협상을 통해 사건을 덮으려는 의도다. CU대책위는 공문을 통해 여러 차례 유가족이 대화와 교섭의 권한을 모두 위임 하였으며, 정식으로 사건 해결을 위한 교섭을 요구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CU대책위를 배제하는 것은 유가족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며, 사건 해결의 의지가 없음을 내비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BGF리테일은 이날 유가족 이외 CU대책위와의 만남에는 결코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대신 BGF리테일 직원 박모씨가 본사의 입장을 통보하는 방식을 택했다. 박 씨가 윗선으로 추정되는 대상에게 전화로 상황을 보고하며 일일이 지시를 받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CU대책위는 유가족 1명, 법률대리인 1명, CU대책위 1명이 본사가 아닌 제 3의 장소에서 대화하자는 안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BGF리테일은 유가족을 제외한 사람의 참여를 완강히 거부했다.

알바노조 정건은 상담팀장 CU대책위 참여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편의점 범죄가 연간 1만 건이 넘는 시대에 이 문제는 이미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 사건은 우연히 일어난 개인의 불행이 아닌 수많은 편의점 알바노동자들의 안전이 달려 있는 문제다. 제 2의 CU사건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책위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면담 요청을 거부당한 CU대책위와 유가족들은 4시간가량 정문 앞에 서서 BGF리테일 측과 대치해야만 했다. (사진=박은미 기자)

마냥 길바닥에 앉아 있을 수 없는 유가족과 CU대책위는 오후 3시께 돌아갔다. BGF리테일 본사에 발조차 들여 놓지 못했음에도 이들은 의외로 담담한 모습으로 발길을 돌렸다.

알바노조 최기원 대변인은 “사측이 대화에 응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며 BGF리테일의 소통 자세에 대한 불신을 토로했다.

“CU대책위는 협상 결렬과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본사 측에 대화를 요구할 것이다. 또한 편의점 안전보장과 심야노동 유도를 중단시키기 위한 공정위 제소, 광범위 한 편의점 노동법 위반 사례에 대한 본사 책임 요구, 본사 앞 집회 및 1인시위의 확장 등을 통해 더 나은 편의점 안전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점심시간조차 출입이 제한돼 많은 방문객들의 빈축을 샀던 BGF리테일의 본사 정문은 유족과 CU대책위가 사라진 이후에야 이용이 허용됐다.

이와 관련 BGF리테일은 유족들에게 항상 열려 있는 것이 본사의 입장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BGF리테일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오늘 방문은 유가족만이 아닌 대책위라는 제3자를 통해 교섭을 요구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BGF리테일 사옥은 저희 뿐 아니라 여러 기업들이 함께 머무르는 공간인데 장시간 위화감이 드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영업을 방해했다”며 “이런 분위기에서 대화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CU대책위의 협상 참여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번 일은 명확한 가해자가 무기징역을 받아서 복역 중인 사고임에도 CU대책위는 정치적, 사회적 이슈로 이용하려 하고있다”며 “BGF리테일은 도의적인 지원을 위해 유족과 지속적인 대화를 하겠지만 당사자가 아닌 외부 단체(CU대책위)의 교섭 요구는 응할 수 없다는 당사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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