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원의 아이

어느덧 태양은 하늘 한가운데를 벗어나 긴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M은 핸들을 시내에서 외곽으로 돌려 30번 도로를 향했다. 바다가 보이는 해안도로였다. 7월 초순의 태양, 장마 끝에 나오는 태양에 차 안은 몹시도 후텁지근했다.

그것에 M이 운전석의 창을 열어 열기를 덜어냈다. 하지만 오히려 열린 창 안으로 찝찌름한 갯내가 훅, 밀려들어 M은 다시 황급히 창을 올려 에어컨의 버튼을 두 단계나 내려 눌렀다.

그러면서도 M은 침묵이었다. 선경 역시 그런 M을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슬쩍 뒷좌석의 아이들을 돌아다봤다. 

방금까지도 호들갑스럽게 떠들던 아이들이 서로 기댄 채 잠이 들어 있었다. 언제 볼륨을 올렸는지 차안 가득 브르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 아이들의 웃음대신 흘렀다.

선경은 그것에 숨을 참아 손끝으로 현의 코드를 잡아 선율을 따라 잡았다. 그러다 자신의 행동에 깜짝 놀라 황급히 몸을 세워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작은 배 한 척이 한가로이 바다 위를 떠가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바다 위를 배는 마치 붓끝을 놀리 듯 긴 선을 남긴 채 유유히 물살을 헤쳤다. 선경은 그것을 말없이 내려다 봤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이제 배는 소나무 사이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그 배가 다시 소나무 사이를 나올 즈음이었다.

“선경아, 우리 보나 예쁘지 않니?”

침묵을 깬 M의 말이었다. 갑작스런 말이라 미처 답을 찾지 못한 선경은 급히 고개를 끄덕여 당황의 표정을 감추었다. 장애 아이에 대범한 척하지만 아무래도 큰아이는 M의 커다란 상처일 게 분명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우리 보난 천사처럼 예쁘게 생기지 않았니?”

새삼스럽게 M은 그대로 시선을 룸미러에 둔 채 다시 물었다. 선경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으로 착각이라도 하는 듯.

“고슴도치도 지 새끼는 다 예쁘다고 하잖니.”

혹, 연민이라도 내비칠까. 선경은 일부러 그렇게 무딘 감정을 가장해 답했다.

“크윽, 그런가. 실은 우리 보난 배도 아프지 않고 얻은 자식이거든.”

M의 뜻밖의 말에 선경은 뒤통수에 일격을 당하는 듯 아찔했다. 그 아찔함에 바다 위를 가르던 배가 단숨에 물 위로 붕 솟구쳐 하얗게 물보라를 일으켰다.

“얻다니? 누구?”

“성모원이었어. 우리 보나를 처음 만난 곳이.”

M은 마치 남의 얘기를 하듯 담담한 얼굴로 선경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같은 말을 반복했다. 유유히 물살을 가르던 배가 중심을 잃고 심하게 뒤뚱거렸다. 선경은 그것에 질끈 눈을 감았다.

“……?”

“놀랐니?”

“……?”

“미안. 미리 말하지 못해서,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론 숨길 일도 아니지만.”

M은 희미하게 웃기까지 했다. 물살에 휩쓸리던 배는 이제 소나무 사이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너도 기억 날거야. 우리 고등학교 때 여름 피정 가서 알게 된 송 신부님, 그분이 나 결혼하고 얼마 있지 않아 우리 동네 주임신부님으로 오셨더라고. 알다시피 그 신부님이 대단하셨잖아, 우리 성당에 오셔서도 그랬어.

 특히 청년단체를 닦달하시는 통에 우린 주말마다 성모원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성모원 봉사활동 나간 그 첫날에 내가 저 아이를 본 것이었어. 정말 충격이었어. 저렇게 예쁜 아이가 버려지다니.

더구나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를 버리다니. 태어난 지 3개월도 채 안 된 갓난쟁이였어. 그런 아이가 기가 막히게 나를 알아보더라고. 자지러지게 울다가도 내 목소리만 들으면 울음을 뚝 그치고 벙글거리고. 그걸 운명이라고 하겠지. 결국, 남편과 의논 끝에 저 아이를 입양하게 된 거였어.”

뒷좌석을 흘끔 돌아본 M의 표정엔 이제 웃음기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랬구나, 어떻게 그런……? 저 아이도 이 사실을 알고?”

M이 지금껏 자신과는 다른 세계를 구축했다는 것에 선경은 적잖이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아니 이것은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었다.

“그럼, 어차피 알게 될 거니까, 나중에 애가 알게 되면 상처가 더 클 수도 있을 테고. 그래서 우리 부분 오픈하기로 했어. 다행히 애가 성격이 밝아서 쉽게 받아들이더라고. 둘째와도 잘 통하고, 제 동생 챙기는 게 나보다 나아. 성격이 활발해서 다른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고. 그러니 배 아프지 않고 얻은 큰애가 고맙고 감사하지, 더구나 저 앤 선천적인 절대음감이야.”

“선천적인 절대음감?”

“응! 믿기 어렵겠지만 저앤 다른 애들이 한 달 넘게 연습하는 곡을 단 몇 번이면 완벽하게 연주해.”

이건 또 무슨 소린지, 선경은 믿을 수 없는 말에 M을 빤히 쳐다봤다.

“연주? 앞을 보지 못하는 저 아이가 연주를?”

“응, 지금 바이올린 스즈키 4번이야.”

“바이올린?”

“응, 그러니까. 내가 성모원 봉사를 나가게 되면서 우리 애들도 자연스럽게 그곳 프로그램에 끼게 되었는데. 어느 날, 성모원 음악을 봉사하시는 선생님이 보나를 한번 가르쳐보고 싶다더라고. 보나가 소리에 반응을 보이는 것이 특별한 것 같다면서.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정색을 했는데,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저 애가 악기를 배운지 3개월도 채 안 되어 1포지션의 음계를 완벽하게 소화하더라고. 그러니 신께서는 보이지 않는 눈 대신 귀를 열어주신 게 분명하지. 그래서 말인데 네가 그 일을 좀 맡아주면 안 되겠니?”

“무 무슨?”

“얼마 전에 음악을 가르치시던 선생님이 집안 사정으로 일을 그만두셨는데. 그 누구도 그 선생님을 대신할 사람이 없어. 그래서 안타깝게도 그 선생님이 했던 성모원 오케스트라가 지금 해체 위기에 처해 있어. 음악 재능기부를 해주겠다는 선생님이 없는 데다, 선생님을 돈으로 모실 형편도 안 되니까. 그러니 네가 좀 그 일을 맡아주면 어떻겠냐고?”

“잠깐만, 혹시 지금 우리 성모원에 가는 거니?”

그제야 선경은 M의 목적지가 성모원이라는 것에 다급하게 물었다.

“응, 오늘이 주말이라서.”

순간, 선경은 하얗게 굳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것이 은근히 스트레스였는데. 젠장,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 끌려오다니. 그러나 선경은 애써 불쾌감을 감추고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그러자 M은 그것을 긍정적인 반응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선경이 네가 성모원 오케스트라를 맡아주면 우리 보나는 물론 성모원 아이들은 그야말로 최고의 선생님을 모시는 거잖아. 그러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순간 선경은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아 그녀 자신도 모르게 벌떡 몸을 세워 소리를 질렀다.

“난 너처럼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아! 봉사할 그런 여력도 없고, 그리고 이런 식으로 사람을 데려오는 데가 어딨어, 네가 성모원에 가는 줄 알았으면 난 절대 따라나서지 않았을 거라고! 그런 애들에게 내가 왜 바이올린을 가르쳐야 하냐고!”

목에 핏대를 세운 채 파르르 몸을 떠는 선경의 모습에 M은 그제야 아차 하는 얼굴이었다.

“미안해. 미리 말하면 네가 오지 않을 것 같아서. 그리고 난 네가 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어. 그 애들 악기 초보 단계는 이미 거친 아이들이라 일주일에 한두 번만 봐주면 되겠다는 생각이었어.”

그런다고 선경의 불편한 심기가 누그러지는 건 아니었다. M이 그깟 선한 사마리아사람 흉내를 낸다고 자신에게까지 막무가내로 봉사를 강요할 수는 없었다. 아니, 솔직히 봉사를 핑계로 M은 자신에게 무례했다. 선경은 올라오는 화를 참느라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때 숨을 참는 그녀의 뒷목으로 뜨거운 숨이 느껴졌다. 그것에 선경은 무심코 뒤를 휙 돌아다보았다. 잔뜩 얼어붙은 보나의 얼굴이었다. 그 아이의 얼굴이 선경을 향해 있었다. 아이가 언제 잠에서 깬 것인지. 뜨거운 뭔가가 선경의 가슴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하지만 선경은 그 무엇도 보지 않은 것처럼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잠깐의 틈을 주어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다른 선생님을 알아봐 줄 수는 있어, 하지만 난 아이들 지도는 어려워. 솔직히 연주하고 싶어도 난 할 수가 없다고. 이상하게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선경은 문득 그 일을 말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었다. 차라리 그 일을 M에게 말한다면,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자신이 낳지 않은 장애아까지도 품는 M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빨리 차에서 내리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선경을 M은 아까부터 무슨 할 말이 있다는 듯 조심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한참이나 말을 꺼내지 못하고 침묵이었다. 그러다 차가 맞은편의 경운기를 비켜서자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기색으로 나직하게 선경을 속삭이듯 불렀다.

“선경아! 오해는 하지 말고 들어. 실은 내가 널 이곳으로 오게 한 것은 널 다시 무대에 세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어, 난 네가 슬럼프에 빠지게 된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으니까. 여태 넌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너의 그 일을 다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네가 그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로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그 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사실도.”

아아, M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자, 잠깐만, 그게 무슨?”

선경의 목소리는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그래 알아.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하지만 일단 내 말을 끝까지 들어. 넌 둘도 없는 내 친구야, 그래서 그 정도는 나도 알 권리는 있다고 생각해. 불쾌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얘기야.

그리고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네가 그 일에 요즘 얘들처럼 아무런 가책도 가지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야. 넌 충분히 가책의 시간을 견뎠으면서도 아직도 그것에 묶여서 너 자신의 학대는 물론 네 엄마까지도 고통을 주고 있으니 그것이 문제라는 얘기야.

그래서 너 같이 양심이 심약한 부류는 그 문제를 아예 까놓고 그것을 들여다보는 게 해결책이라고 생각해. 즉. 죄의식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는 게 문제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고, 그래야 너 스스로와 화해가 되고 과거의 그 일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그만, 그만! ”
놀랍게도 M이 선경의 과거를 알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젠장, 그러고도 여태 모른 체하고 있었다니. 그래서 성모원 아이들을 통해 그 아이에게 저지른 죗값을 대신하라고 자신을 이곳으로 불러 내렸다니.

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뚱이도 이보다는 덜 부끄러울 것이었다. 이제 바다 위의 통통배는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대신 잿빛 갈매기 한 마리가 밀려드는 파도를 따라 창공을 오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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