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간우 녹색병원 과장, "사무직 근로자에 비해 하지정맥류 2~18배 높아"

서서 응대··· 친절하고 공손해보여

잠시 앉았더니, ‘건방지다’ 컴플레인

업무시간에 앉으면 안 돼, 교육받아

외국브랜드 매장, 앉아서 손님맞이

 

[뉴스포스트=우승민 기자] # 어느 매장을 가더라도 아르바이트생들이 의자에 앉아서 일하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은 거 같아요. 그냥 하루 종일 이렇게 서 있어요. 서비스업이라 앉아서 손님을 응대하면 친절해보이지 않는다면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시기 때문에 다리가 아파도 일어서서 일하고 있어요.

# 일어서서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거 같아요. 매일 7시간씩 구두를 신고 일어서서 일을 하다보니 이제는 다리가 붓는 건 어쩔 수 없더라구요. 앉아서 일하는 아르바이트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대부분 서비스업이라 앉아서 일하는 건 상상도 못해요.

카페, 편의점, 대형마트, 화장품 가게 등 서비스직에서 종사하는 근로자들이 근무시간에 앉지 못하고 서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계속 오고가는 고객들을 앉아서 맞이하면 불만을 표현하기 때문에 제대로 앉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객은 왕’이라는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장기간 서서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허리 통증 등 고통을 호소하는 근로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에 <뉴스포스트>는 직접 서비스업에서 일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들은 6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하루 종일 서서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백화점 매장에서 일어서서 근무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 (사진=우승민 기자)

아르바이트생, 앉을 수 있는 의자 없어

손님을 앞에 두고 앉아서 계산을 하거나 서비스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처럼 서비스직 종사자들과 아르바이트생들은 약 7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서서 일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백화점, 마트, 편의점, 커피숍 등에서 근무하는 일부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앉을 권리’를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마련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들에게 일을 하면서 앉을 수 있도록 의자가 비치되어 있지만 몇 군데 없고, 실제로 의자가 있어도 앉을 수 없다.

이는 ‘손님을 대할 때 서서 응대하는 게 공손해 보인다’는 뿌리 깊은 사회적 인식 때문에 서비스종사자들은 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서비스 교육을 통해 ‘업무시간에 앉으면 안 된다’고 아예 못을 박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A매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양 모(23·남)씨는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 전에 교육을 받는데, 그 때 손님들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 앉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고 배웠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얼마 전에 다리가 너무 아파서 구석에서 쪼그리고 잠시 앉아있었는데 ‘건방지다’라며 손님이 컴플레인을 걸었다”라며 “이제는 컴플레인이 접수될까봐 눈치가 보인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서비스직 아르바이트생들은 비정규직에도 불구하고 약 7시간 이상을 서서 일하고 있었다.

대기업 편의점, "직영점 계산대에 의자 놓지못하도록 지침" 

관련업계에 따르면 CU와 GS25, 세븐일레븐 등 국내 주요 대기업 편의점들이 직영점 계산대에 의자를 놓지 못하도록 본사 차원에서 지침을 내리거나 교육 과정에서 의자에 낮지 못하도록 지시해 아르바이트생들의 불만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가맹점 역시 이 같은 지침이 내려지지만 본사 차원에서 강제력을 행사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 대기업 편의점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매장이 많지만 회사 이미지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투철한 서비스 의식을 보여주기 위해 의자를 두지 않고 있다”며 “또한 손님들이 자주 찾아주시기 때문에 응대하다보면 앉아있을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편의점 관계자도 “손님이 없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은 물품정리 등 할 일이 많다. 계산대 의자 배치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장시간 앉지 못하고 서서 일할 경우 하지정맥류나 허리근육통 등 각종 업무상 질환에 시달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윤간우 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과장은 “연구 결과 서서 일하는 근무자들을 사무직에 비해 하지정맥류가 나타나는 비율이 2~18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또한 국내 대형마트에서 근무하는 캐셔, 시식코너 담당자 등 근로자들도 앉아서 일을 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해있었다.

지난해 민주노총이 전국 대형마트 근로자 123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77명(70.8%)이 요통이나 어깨 결림 등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발바닥 통증인 족저근막염을 호소하는 이들도 312명(34.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본적으로 대부분 근무시간 내내 일어서서 업무를 보기 때문이다.

한 편의점에서 일어서서 손님을 응대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 (사진=우승민 기자)

서서 일하지만, 휴식시간·공간 제대로 주어지지 않아

또한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주어지는 휴식은 실제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제대로 마련되어있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7일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전국 알바생 90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47.3%는 휴식시간을 아예 가지지 못한다고 밝혔다. 또한 휴식시간을 갖더라도 10분 이하(33.3%)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이어 ‘30분 정도의 휴식시간을 갖는다’는 응답이 19.4%, ‘20분’이 9.3%, ‘1시간 이상’이 8.6% 순으로 나타났다.

B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권 모(24·여)씨는 “근무시간 동안 공식적으로 가질 수 있는 휴식시간은 30분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서서 일을 하는데 잠깐의 휴식시간동안 피로를 다 풀 수 없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솔직히 휴식공간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도 않다. 창고에서 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다”고 전했다.

이처럼 직원들이 쉴 수 있도록 창고 겸 휴식공간을 마련해두고 있어, 직원들이 발 뻗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2008년 '의자 비치 캠페인' 벌어지기도

이에 지난 2008년 노동, 여성 관련 단체들을 중심으로 서서 일하는 노동자의 ‘앉을 권리’를 주장하며 전국적으로 의자 비치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결과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를 위해 사업주가 의자를 비치해야 한다’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제 80조 의자의 비치)이 신설되기도 했다.

하지만 약 10년이 지나도록 이 같은 문화는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각 업체들은 근로자들을 위해 의자를 비치해두고 있지만 정작 근로자들은 의자에 앉아 있지 못한다. 직원이 앉아서 근무하는 것에 대해 아직까지 일부 고객들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노동권익센터 관계자는 “센터로도 많은 사례들이 접수되고 있다”며 “일단 소비자들 인식 자체가 아직까지는 서비스업 종사자는 일어서서 근무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거 같다”고 밝혔다.

화장품 매장에서 서서 근무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 (사진=우승민 기자)

외국브랜드 아르바이트생은 앉아서 일해

한편 수많은 서비스직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들은 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있는 반면, 외국 브랜드 I 매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들의 모습은 달랐다.

캐셔를 담당하고 있는 관계자는 줄이 길게 서 있는 고객들을 대하면서 단 한 번도 일어서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계산대 앞에 앉아서 손님들을 응대할 수 있는 높이의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고, 이들은 의자에 걸터앉아서 손님들을 차근차근 응대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에 불만을 표하는 손님은 없었고,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생들도 힘들지 않게 일하고 있다.

I 매장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이 모씨는 “여기서 일을 하면서 앉아서 일을 하지만 눈치를 보지 않고 손님들을 응대한다는 점이 좋다. 가끔 서있는 것이 습관이 되어 서서 일하다가도 힘들면 당당하게 앉아서 일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전했다.

이처럼 외국에서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직원들은 앉아서 무척 여유롭게 일을 하고 있는데도 아무도 불평없이 물건을 사간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회사와 고객들 눈치를 보느라 쉽게 낮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 80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해당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갖춰야 한다.

이에 구교현 알바노조 위원장은 “매장에서 수만 명의 알바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그런데 알바 노동자들을 회사 치원에서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라며 “알바 노동자들을 위해 앉을 권리 등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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