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경배 국장]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명분은 조선 국왕의 입조(入朝)와 정명가도(征明假道)의 거부였다. 당시 히데요시는 혼란기의 일본열도를 수습하고 전국시대(戰國時代)를 통일, 봉건적인 지배권을 강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오랜 기간의 싸움에서 얻은 제후(諸侯)들의 강력한 세력을 어떻게 무력화시키느냐가 문제였다. 제후들의 강력한 무력은 전국시대를 통일하는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일통 이후 그 무력은 고스란히 부담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히데요시는 제후들의 무력을 없애 국내의 안전을 도모하고 신흥 세력을 억제하려는 대안으로 대륙 침략의 망상에 빠지게 된다. 그 명분이 바로 조선 국왕의 입조와 정명가도(일본군이 명을 침략하고자 하니 조선은 명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는 것)였다.
그러나 조선 국왕의 입조 문제는 감히 입 밖에도 꺼내지 못했다.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로 조선에 파견된 대마도주인 종의지(宗義智) 등이 조선의 노여움을 살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 나라의 국왕이 입조나 친조를 한다는 것은 당시의 외교관계상 엄청난 사건이다.
실제로 조선은 왕조 태동 이래로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事大主義) 사상에 빠진 나라임에도 불구, 왕이 직접 입조한 적이 없었다.

비단 조선뿐만 아니라 고려 때의 경우에도 몽고침략기를 제외하고는 왕의 입조는 있지 않았다. 몽고침략기때 원종의 몽고 입조도 몽고의 압박 때문이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무신정권하에 놓여있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도 배제할 수 없었다.
당시 고려는 강화도 무신정권시대로 김준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국왕인 원종은 이 같은 무신정권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다보니 원종은 무신정권에 대한 대항마로 몽고를 생각하였고, 원종 2년인 1261년 태자 심(諶 : 뒤의 忠烈王)을 입조시킨데 이어 1264년 역사상 처음으로 직접 친조하게 된 것이다.

입조 대신에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과 그 주변국과의 관계는 조공(朝貢) 형태를 띄었다. 보통 조공이라 함은 굴욕의 역사로 칭해지지만 조공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외교체계이다. 조공은 천자가 조회에 참석하는 것을 의미하는 조(朝)와 공물을 바치는 것을 뜻하는 공(貢)의 합성어다.
정치적 종주국인 천자가 참석한 조회에서 책봉국들이 조공을 받치는 것을 말한다. 이 조공은 오늘날에는 무역의 한 형태로 인지돼 있는데 조공은 가져다 바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바치는 대가로 그 이상을 얻을 수 있는 무역의 한 형태였던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단순히 조공을 가져다 바치기만 한 조공국이 아니었다. 삼국시대 고구려나 고려왕조, 조선시대 전기에 만주와 요동 일대 여진족 등 북방 민족들과 일본 대마도로 부터 조공을 받고 종주국 역할을 했다. 조공은 실리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어찌 보면 6.25 이후 산업시설이 초토화된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의 무상원조가 국가발전에 큰 원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약소국에 있어서 원조란 크나큰 실리를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인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미국 순방길에 올랐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통령을 역임한 경우와 같은 연례행사이다. 한미관계의 중요성은 대통령의 방미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새롭게 대통령에 당선되면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굴욕이나 자존심 문제로 볼 필요는 없다. 그만큼 우리나라 외교순서에 있어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반증이다. 작금의 시대는 세일즈 시대이다. 그만큼 많은 것을 얻어오면 된다.

순방길에 오르면 수많은 경제인들을 대동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가 미국으로부터 얻은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유일한 예외는 1965년 5월 박정희 대통령과 존슨 미 대통령의 회담이다. 월남전에 발목 잡힌 미국이 한국에 부탁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존슨 대통령은 당시 한국군의 파병을 부탁하기 위해 전용기를 한국으로 보내 박정희 대통령 일행을 태우는 등 극진히 대접했다. 뿐만 아니다. 존슨 대통령은 각종 경제 및 기술원조, 개발차관 제공, 사전 허락 없이 주한미군을 철수치 않는다는 등 전례없이 많은 선물 보따리를 박 대통령에 안겨줬다.

현재 한국과 미국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한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에 대해 미국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외교와 협상에는 상대가 있는 법이지만 어떠한 형태로 결과가 지어질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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