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피해자들 "징수 유예 기간 고작 한달, 행정 편의적 횡포에 신용불량자 내몰린 판"

[뉴스포스트=박은미 기자] 세무사 한명이 4,000명의 프리랜서 사업자들을 속였다. 자신을 국세청 출신의 세무사라고 거짓 홍보하며 합법적 절세를 미끼로 고객을 모집해 수년간 세무사기를 벌인 것. 누적 피해금액만 3,000억원에 달한다.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일이 어떻게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었을까? 업계에서는 터질 줄 알았던 폭탄이 터진 셈이라고 평했다. 일반 사업자에 비해 비용처리 증명이 복잡한 프리랜서 사업자의 세정 모순이 문제를 키웠다는 것이다. 연매출 7,500만원을 넘으면 무조건 복식장부를 작성해야 하고, 인적용역을 제공하는 특성상 비용처리 부분을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에 세금부담이 늘어나는 프리랜서 사업자들. ‘절세’를 하려다 초대형 탈세 스캔들에 휘말려 ‘탈세’ 책임을 물게 된 그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지난 3일 ‘전국 프리랜서 세무사기 대책위(이하 대책위)’ 김정환 대표를 만나 현실과 동떨어진 세법 구조의 문제점 등 이번 사태의 본질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 3월 15일 오후 종로구 서울지방국세청 앞에서 열린 프리랜서 세무사기 집회에서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프리랜서 세무사기 피해자 대책위 제공)

국가 보증 세무사 믿었는데, 하루아침에 ‘탈세’ 누명

지난해 지병으로 어머니를 떠나보낸 김모(23)씨는 올 2월 국세청으로부터 4,000만원의 세금 추징을 통보 받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세금 과소 신고가 의심된다며 어머니를 대신해 세금을 납부하라는 것. 김 씨는 “엄마가 살아계신다면 물어 볼 수라도 있지만, 제가 겪은 일도 아니고 물어볼 사람도 없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 같이 보험설계사와 자동차 판매원, 학원 강사 등 프리랜서 4,000여 명이 올 초 세금폭탄을 맞았다. 이들의 소득 신고 맡아온 Y세무사가 허위기장으로 세금을 환급받아 온 사실이 적발되면서 관련 사업자들에게도 세금 추징이 통보됐다. 이른바 ‘Y세무사 스캔들’이다.

지난 수년간 세금을 제대로 냈다는 증빙자료를 제출하지 못하면 이들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세금과 가산세를 부담해야 한다. 국세기본법에 의하면 이들은 허위증빙으로 인한 신고불성실 가산세(최고 40%)를 내야 한다. 여기에 세금을 미납한 날로부터 납부불성실 가산세(일 0.03%, 연 10.95%)까지 추가로 붙어 내야 할 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 3월 31일, 집에 있던 아내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국세청 문서 사진을 찍어 보내며 ‘여보 이게 뭐에요?’ 라고 묻더라고요. 지난 5년간 종합소득세 신고 과정에서 누락된 경비사용 내역을 소명하지 않으면 수억의 세금을 징수하겠다는 내용인데, 놀랐을 아내를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져 내리더군요”

김 대표는 세무사기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을 가족들에게는 차마 미리 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세금을 완납하고 이미 수년이 흐른 시점에서 ‘세금 재추징’이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기 때문이다. 억 소리 나는 금액도 금액이거니와 세금 납부 기한도 빠듯했다. 무엇보다 지난 5년간의 소득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보관하고 있을 리도 만무하다.

“1~2년도 아니라 5년 동안의 지출 내역을 가지고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죠. 아무도 이런 세무스캔들에 휘말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Y세무사가 처리한 세무신고 중에는 실제 증빙이 있음에도 허위로 신고한 경우도 있고, 일부는 아예 증빙도 없이 신고한 경우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떠한 부분을 누락하고 왜곡했는지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니 더욱 답답하죠. 국세청은 황당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법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고작 1달 남짓한 징수유예를 주는 것을 큰 시혜인 것인 양 내세우고 있습니다. 피해자 모두 생업을 포기하고 이 사건에 매달려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Y세무사가 뿌린 홍보 전단을 보면 저렴한 수수료로 최대 환급을 보장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신용카드와 휴대전화 사용내역 등 소득 신고에 필요한 기본 증빙 자료는 안 내도 된다고 적혀있다. 특히, 총 수입에 따라 일률적인 환급액을 보장한다는 ‘미끼 광고’로 세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현혹했다.

쉽게 말해 개개인의 비용 내역을 계산하는 게 아니라 목표 환급액을 정해놓고 관련 비용을 허위로 끼워 맞췄다는 뜻이다.

 

세무사기에 사용된 홍보 전단지 (사진=프리랜서 세무사기 피해자 대책위 제공)

“연매출 7,500만원 이상 고소득자? 천만에”

이번 ‘세무사 스캔들’에 연루된 프리랜서들은 연매출 7,500만원 이상의 복식부기의무자에 해당한다. 복식부기란 수입과 지출 내역을 비교할 수 있는 손익계산 장부인데, 일반인이 작성 하기엔 복잡해 전문 세무사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두고 ‘프리랜서들도 피해자’라는 동정 여론과 더불어 탈세를 알고도 묵인한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상당했다. 애시당초 Y세무사가 무리한 방안을 제시했는데도 의심하지 않고 절세하려던 과욕이 화를 불러왔다는 것.

지난 5년간 절세혜택을 받은 것에 대한 자업자득이며, 매달 수입이 억대에 이를 정도로 고소득자니 가산세 좀 내는 게 뭐가 문제냐는 논리다. 김 대표는 해당 주장에 대해 모두 부인하며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하소연 했다.

“반박하자면 우선 저희 대책위들은 고소득자가 아닙니다. 복식부기의 대상인 ‘7,500만원 이상’의 기준은 매출이지 순이익 아닙니다. 보험업 기준 연 7,500만원 매출일 경우 순이익은 월급쟁이 연봉 2,000~3,000만원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보험업계의 특성상 매출의 65% 주로 비용으로 사용하니까요. 두 번째로 공범이라는 표현은 매우 억울합니다. 우리는 세법을 몰라 국가에서 인증한 세무사에게 기장을 맡겼습니다. 당시 Y세무사가 ‘최대 환급 보장, 저렴한 수수료, 철저한 사후관리’를 약속했습니다. 누구라도 끌릴 수밖에 없는 내용이죠. 각자 맡은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왔는데 하루아침에 탈세혐의를 받는 억울함을 누가 알아 줄까요”

 

불합리한 과세절차, 간소화 절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프리랜서가 속한 인적용역 제공자의 불합리한 과세 구조를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무엇보다 현재 노동시장의 고용 형태가 보험설계사나 자동차 영업사원과 같은 프리랜서 비율이 늘어나는 상황인 만큼 이들을 위한 납세 방식이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책위는 현실과 괴리된 채 오랫동안 방치됐던 세법의 모순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다. 프리랜서가 상대적으로 세무상 불이익을 보는 구조가 해소되지 못하니, 악덕 세무사에 의해 필요경비를 과다 계상하는 불법이 암암리에 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인적용역을 제공하는 프리랜서는 매출과 지출방식이 제조업이나 도소매사업자와 다른데도 세금을 내는 방식은 똑같이 되어 있습니다. 제조업이나 식당 등 일반 사업자는 매출이 늘면 재료비, 인건비 등 각종 경비도 명확히 늘어납니다. 그만큼 세금에 반영되고 정당하게 혜택을 받죠. 애초에 매출에 비례해 지출이 올라가는 구조이기에 비용처리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는 겁니다. 하지만 프리랜서의 경우 그 특성상 스스로 몸을 움직여 돈을 벌어야 하는 구조입니다. 보험설계사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이들은 ‘영업 스킬’이라는 무형자산이 신용으로 쌓여 매출을 지탱합니다. 학원강사의 경우를 보더라도 강의 준비하고 하루 종일 떠들어서 몸이 파김치가 되어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감가상각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이렇듯 매출이 늘어나도 인적용역 특유의 무형의 가치가 전혀 반영되지 않아 현실적으로 비용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프리랜서는 4대 보험에 있어서도 약자였다. 직장인의 경우 건강보험과, 연금보험, 고용보험의 경우 회사와 직장인이 반반 부담을 하며 산재보험은 회사에서 가입해 준다.

반면 프리랜서는 건강보험과 연금보험이 지역가입자로 분류됨과 동시에 본인이 100% 부담한다. 당연히 근로소득자들이 받는 의료비, 교육비, 보장성보험, 신용카드 공제 등도 전혀 받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절세를 해 준다며 허위로 비용을 만들어 처리해 주는 세무사가 그 틈을 파고들며 부당한 수익을 노리는 것이다.

따라서 장부작성의무(기장의무)를 없애고 추계방식으로 통일한 뒤, 추계한 것보다 비용을 더 썼다면 입증해서 인정받도록 하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의 제언이 이어지고 있다.

김 대표는 행정을 통해 시정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경비를 추계로 인정하는 비율을 차별 없이 통일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연매출 7,500만원 이하 프리랜서는 정부가 정한 경비인정 비율로 추계해서 세금을 계산하고 있습니다. 연매출 7,500만원이 넘는 프리랜서도 장부를 안 쓴 경우에 추계할 수 있지만 경비인정비율이 훨씬 낮아서 세 부담이 커지고, 당국은 장부작성의무를 어겼다며 가산세까지 물립니다. 3.3% 세금 환급은 커녕 오히려 더 많은 세금이 부과될 수 있는 거죠. 결국 납세자로서는 부담이 커지니까 경비를 더 인정받기 위해서 거짓으로 장부를 만들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사진=프리랜서 세무사기 피해자 대책위 제공)

세금 낼 수 있게 도와 달라

피해 프리랜서들의 요구사항은 한가지다. 세금을 내게 도와달라는 것. 세무사기의 공범이 아닌 피해자로서 가산세 감면과 납부기한 연장, 소명절차 간소화를 통해 ‘탈세범’이라는 불명예를 벗을 수 있도록 당국이 도와달라는 것이다.

“탈세혐의를 받는 일은 불명예스러운 일입니다. 더구나 그 혐의가 스스로의 고의에서 비롯되지 않았다면 더욱 답답하고 억울할 수밖에요. 그럼에도 국세청은 지난달 수년치 세금을 한꺼번에 고지하고 사건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억울하면 5년이 지나 상법상 보존기간이 지난 자료를 찾아내 증빙하라고 합니다. 대책위는 징수 유예 및 분할납부 등을 요청해왔지만 당국의 행정 편의주의적 횡포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국세체납 신용불량자로 몰리게 됐습니다. 보험업의 경우 체납자로 지정되면 영업자격을 박탈당해 사실상 경제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창출 기조와도 역행하는 일입니다. 이번 사기의 피해인원은 4,000여명이지만 딸린 식구까지 계산하면 20,000여명으로 추산됩니다. 결국 정부가 20,000여명의 시민들을 거리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던 일자리 정책인지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관리감독에 소홀했던 국세청의 책임을 납세자에게만 전가시켜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간 프리랜서에게 불리한 세법 제도를 알고도 수수방관하며 문제를 키운 국세청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국세청은 과거 유사한 사건으로 과태료를 1,160만원을 부과한 바 있다. 그때 당시 동종 유형 사건에 대해 조사를 했다면 Y세무사의 사태를 예방을 할 수 있었으나, 이를 방치해 대형 세무스캔들을 야기했다는 지적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사기 사건의 피해자인 만큼 5년이 아닌 2년 치 과세만 적용해 납세자 부담을 줄여주자는 대안도 내놨다.

반면 국세청은 탈세가 드러난 것에 대해 법대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세무사에게 사기를 당했다곤 하지만 이들이 납세의무를 성실히 수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

국세청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개인별로 소명 기간과 납부 기한을 연장해줄 수는 있겠지만 세금감면 주장은 법령에 따라 업무상 한계가 있다”며 “과세기간 축소 및 변경은 국세청의 재량권 위반 사항이다”고 말했다.

세무사의 과실이 있더라도 납세자의 책임까지 면피되는 것은 아니며 유사사건 동일형량 원칙과 추가 범죄 예방을 위해서라도 조세 감면은 어렵다는 것이다.

이어 지난 5년간 방만한 관리로 피해금액을 키운 책임에 대해서는 “보다 신속하게 인지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며 “다만 신고책임 증빙 자료 보관의무 등은 최종적으로 납세자한테 주어져 있는 만큼 정확한 소명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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