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폰카에 이어 증명사진까지..."기념사진빼곤 할게 없다"

이달부터 시행된 '블라인드 채용'

사진란 없앤 응시원서와 이력서

취준생 "증명사진 없애면 취업비용 줄어"

증명사진 전문 사진관, 생존권 보장은?

 

신촌에 위치한 증명사진 전문 사진관 (사진=우승민 기자)

[뉴스포스트=우승민 기자] 이달부터 ‘블라인드 채용’이 공공부문에 의무화되면서 여러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취준생들의 찬반 논쟁 뿐 아니라 지역 동네 사진관들은 “증명사진을 찍으러 오는 취업준비생들이 줄어들게 돼 생존권에 위협이 될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다.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차별이 해소된다는 점과 더불어 증명사진을 찍는데 들어가는 메이크업, 헤어, 사진비용 등을 생각하면 긍정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증명사진을 위주로하는 동네 사진관은 갈 곳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뉴스포스트>는 이들의 사정을 상세히 들여다보았다.

 

동네 사진관..."생존권 위협, 기념사진빼곤 할게 없다"

정부가 공공기관 인력 채용 시 학력, 사진 등을 사전에 묻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이달부터 전면 시행했다.

이 제도는 개인 정보 노출을 최소로 줄이고 면접에서도 직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핵심이다.

응시원서와 이력서에 사진, 출생지, 출신학교와 전공, 가족 관계 기재란을 없애는 대신 법정 취업 가능 연령 여부와 근무 경력, 직무 관련 교육 이수 여부, 자격증, 수상 기록 등을 응시자가 적도록 했다.

면접 단계도 대폭 손질해 서류에 공개한 정보 외에 혼인여부, 종교, 장애, 병력, 성적 지향 등을 묻지 않기로 했다.

학력은 직무와 관련한 전공과 연구 경력에 초점을 맞추고 최종 학력과 출신 학교에 대한 질문은 금했다.

이처럼 응시원서와 이력서에 사진을 제외시키면서 증명사진 및 각종 기념사진 촬영, 사진현상 등이 주 수입원인 동네 사진관이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이미 사진관은 디카, 폰카의 등장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고 사양사업으로 접어들었다.

(자료=통계청 제공)

또한 전문 사진관과 셀프 사진관 등이 많이 생기면서 동네 사진관들은 이미 쇠퇴 일로를 걷고 있었다. 하지만 이력서에 증명사진 부착을 없애면서 이들의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

최근 동네 사진관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에 대해 사회 변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아현동에서 사진관을 운영 중인 A 사진관 운영자는 “솔직히 말하면 이 정책에 대해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좋지 않다”라며 “예전에는 신분증, 여권 등 규격사이즈가 달라서 따로 찍었는데 지금은 다 통합되어 매출이 줄었다. 블라인드 채용 정책에 대해선 맞다고 생각하지만 합리적으로 바뀌는 만큼 사진관도 조정돼야한다”고 전했다.

이어 “지금도 힘든데, 증명사진을 찍으러 오는 손님들도 없다면 생존권에 위협을 받을 것 같다”며 “정부에서 이러한 부분들도 고려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작은 동네 사진관은 지금도 통합된 증명사진으로 더 이상 증명사진을 자주 찍으러 오지 않는 손님들로 인해 수입이 줄고 있다고 전했다.

증명사진을 전문으로 운영하고 있는 취업 증명사진관의 걱정도 마찬가지였다. 취업 증명사진관은 메이크업 시설을 갖추고 의상을 대여해 주는 서비스를 병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진관들은 대략 일반 증명사진 비용은 12장에 1만 5000원 수준인 반면 프리미엄 취업 증명사진은 3만원 상당이다. 이보다 비싼 곳도 있다. 프리미엄 사진의 경우 의상 대여는 물론 헤어 스타일 합성 등 포토샵 보정도 가능하다.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증명사진을 잘 찍는다고 소문난 B 사진관 관계자는 “이력서에 넣을 증명사진은 취준생들 사이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우리 사진관은 좀 더 체계적으로 기업의 특성에 맞게 증명사진을 리터칭 해주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블라인드 정책이 시행되게 된다면 다른 기업들도 블라인드 채용을 할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증명사진을 중점으로 하는 저희 사진관에도 타격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사진=우승민 기자)

 

취준생..."사정이해하지만 공평한 기회측면에서 블라인드채용 필요"

하지만 취업 준비생들의 생각은 생존권을 걱정하는 사진관 운영자들과는 달랐다.

취업 준비생 김 모씨(25·여)씨는 “우선 사진관의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증명사진이 아무리 전문이여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그런 경우 오히려 그곳에서는 가격 부풀리기로 이득을 취해온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증명사진란을 없애서 취업의 선입견을 없앤다는 본래 취지는 취준생의 입장에서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어떤 제도든 예상치 못한 약점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이 사진관의 이익이 사라진다는 것이라면 그것보다 취업의 질을 높이는 공공의 이익이 더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래의 취지보다 더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생 한 모(26·여)씨는 “사진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증명사진란 하나가 그들에게는 큰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취업 준비생의 입장에서는 학원 다니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이런저런 비용이 들어가는 부분이 줄어들기 때문에 긍정적이다”라며 “하지만 정부는 이런 소시민들의 입장을 고려해주어야 하는 부분도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지난 10일 리얼미터가 블라인드 도입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차별을 없애고 공정한 채용 기회를 제공해 찬성한다’는 의견이 68.0%로, ‘객관적 평가가 어렵고 역차별을 일으킬 수 있어 반대한다’는 의견은 23.1%로 집계됐다. ‘잘 모름’은 8.9%였다.

연령별로도 30대(82.0%)와 40대(80.1%), 20대(71.0%)에서 '찬성'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50대(64.2%)와 60대 이상(47.9%)에서도 '찬성' 의견이 우세했다.

지역별로는 광주·전라(74.4%), 대구·경북(74.0%), 경기·인천(68.2%), 서울(67.0%), 부산·경남·울산(66.9%), 대전·충청·세종(61.5%) 등 모든 지역에서 블라인드 채용에 찬성하는 의견이 높았다.

이처럼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사진란이 없어짐으로써 취업 비용문제도 줄어드는 등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찬성하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동네 사진관 등 증명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사진관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인 만큼 정부에서는 이러한 소시민들을 위한 대책마련도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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