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 후려쳐 과징금에, 고발돼도 노사문화 우수
본지 취재 들어가자 고용노동부 "취소 문제 검토 하겠다"

[뉴스포스트=박은미 기자] 하도급 대금을 후려쳐 검찰에 고발된 ‘화신’이 상생 문화 우수기업으로 뽑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9일 하도급 대금을 깎아 이득을 챙긴 화신에 과징금 3억9200만원을 부과하고 검찰 고발한 반면 고용노동부는 지난 4일 화신을 모범적인 노사문화를 실천한 상생 우수기업으로 선정했다. 불법을 저지른 기업을 처벌함과 동시에 포상하는 우스운 꼴을 정부 스스로 자초해 버린 셈이다.

그 이면에는 전형적인 ‘중견기업의 이중성’ 행보가 도사리고 있었다. 앞에서는 고용노동부의 평가 기준에 맞춰 건전한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상생 경영을 하는 척했지만 뒤에서는 하청업체의 대금을 깎아가며 갑질을 부려온 정황이 발각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고용노동부에서 매년 발표하는 노사문화 ‘우수’기업 기준이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우수’기업에 선정되면 정기근로감독 면제, 1년간 세무조사 유예, 은행대출금리 우대, 신용평가 시 가산점 부여 등 정부기관으로부터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받는다는 점에서 선정과정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돼야 한다. 이와 관련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과 관계자는 본지의 취재가 들어가자 취소 검토 방침을 밝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사진=화신 홈페이지 캡처)

공정위 “화신 중대 위법 기업”

공정거래위원회는 19일 부당하게 하도급 대금을 깎아 이득 챙긴 화신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3억9200만원을 부과하고 검찰 고발하기로 했다.

화신은 섀시(chassis), 차체(body) 등의 자동차부품을 제조해 현대·기아자동차 등에 납품하는 중견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은 5509억원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화신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입찰금액이 적힌 제안서를 받는 방식으로 최저가 경쟁 입찰을 진행했다. 이 가운데 40건의 입찰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수급 사업자와 추가로 금액 인하 협상을 해 4억3000만원 규모의 대금을 낮췄다.

하도급법에는 경쟁 입찰에 의해 하도급계약을 체결할 때 정당한 사유 없이 최저가로 입찰한 금액보다 낮은 금액으로 하도급대금을 정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화신은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하자 해당 수급사업자에게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4억7300만원을 돌려줬다.

그러나 공정위는 법 위반 금액이 적지 않은 점, 부당 하도급 대금 결정 행위가 중대한 법 위반 유형에 해당하는 점, 법 위반 기간도 상당한 점 등을 고려해 중대한 위법 사항이라고 판단 과징금 부과 및 검찰 고발을 결정했다.

앞서 지난 6월 화신은 2016년도 동반성장지수 평가에서 가장 꼴지 점수인 ‘미흡’ 판정을 받기도 했다. 화신은 공정거래협약 자체를 체결하지 않았다.

 

고용부 “노사문화 우수 기업” 엇박자

이처럼 갑의 위치를 악용해 전형적인 불공정 하도급 행위를 일삼은 화신이 최근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것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4일 화신을 ‘2017년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2월6일부터 3월31일까지 총 118개 사업장으로부터 우수기업 신청을 받은 뒤 서면심사와 사례발표 등을 거쳐 최종 선정했다.

노사문화 우수기업은 지난 1996년부터 협력적 노사문화 확산과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용노동부가 선정·포상하는 제도다. 사업장으로부터 신청을 받아 서류심사와 사례발표 경진대회 등을 거쳐 최종 선정된다.

화신은 협력업체와의 상생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점, 노동환경 변화에 대한 선제적으로 대응해 직원들의 삶의 질 개선한 점 등을 높게 평가 받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화신은 협력업체의 경영안정을 위해 ‘동반성장론(loan)’을 조성해 지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약 350억원을 지원했고, 매년 약 750명의 협력업체 직원 역량강화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이로써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화신은 정기근로감독 면제, 1년간 세무조사 유예, 은행대출금리 우대, 신용평가 시 가산점 부여 등 혜택을 받게 된다. 상생이란 단어와는 배치되는 불법행위로 사회적 비난을 받았던 화신이 혜택을 받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 제기된다.

고용노동부의 우수기업 서류 심사 기준은 ▲노사관계일반 ▲열린 경영 및 근로자 참여 ▲상생협력 및 동반성장 ▲인적자원개발 및 활용 ▲성과배분 및 임금체계 개선 ▲근로복지 및 일터혁신 ▲사회적 책임 등이 있다. 다만 ▲최고경영장의 노사관 이라는 객관적인 수치환산이 불가능한 평가 항목이나 ▲노사대표자의 발표태도 및 심사 참여도 라는 엉뚱한 기준들도 눈에 띈다.

심사기준에 대한 세부 점수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순 없지만, 객관성 및 공정성 논란에 대한 책임은 고용노동부의 몫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 고용노동부는 본지가 취재에 들어가자 부랴부랴 진상파악에 나섰다.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과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번 과징금 사례가 우수 기업 선정 취소 요건에 충족되는지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의 노사문화 우수기업 선정계획안에 따르면 선정되기 이전의 부당노동행위 등 노동관계법 위반으로 선정 이후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경우 선정이 취소되며 우대조치도 철회된다.

이 관계자는 “화신이 오늘 공정위 과징금 처분을 받은 것이 우수기업 취소 사례에 해당하는지 당장 확답을 줄 순 없다”며 “내부적인 검토와 외부 자문을 거쳐 취소 요건에 부합하는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노사문화 우수기업 선정은 노사 협력과 상생의 장을 유도하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라며 “불법을 저지른 화신 같은 기업들이 선정된 것은 명백한 잘못으로 제도의 신뢰도 하락은 물론 긍정적인 기업문화 확산이라는 취지도 반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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