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증세방안 마련 지시
보수야당, ‘포퓰리즘 정책’ 비난

[뉴스포스트=김경배 기자] 문재인 정부가 부자증세의 칼을 빼들었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178조 원 정도가 들어간다. 이중 80조가량은 세출을 줄여서 마련하고 95조원은 세금을 더 걷어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 95조원의 일부를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서 마련한다는 것.
이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 법인세율과 소득세율 인상 방안을 마련하라고 기획재정부에 지시했다. 하지만 보수정당은 이를 ‘밑빠진 독에 물붓기’, ‘포퓰리즘 정책의 수습책’이라 비판하며 중지를 요구하는 등 부자증세 문제가 정치권에 새로운 격랑을 몰고 올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제공)

소득세율 42%, 법인세율 25% 유력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0일 증세 필요성을 제기하며 초고소득층(과세표준 5억원 초과)의 소득세율을 40%에서 42%로, 초대기업(과세표준 2000억원 초과)의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인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추 대표의 증세 제안안에 대해 “소득세와 법인세 증세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줬다. 어제 토론으로 방향은 잡힌 것 같다”며 “기재부에서 충분히 반영해 방안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증세를 하더라도 대상은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라며 “중산층과 서민, 중소기업에는 증세가 전혀 없다. 이는 5년 내내 계속될 기조”라고 강조했다. 이어 “중산층, 서민, 중소기업들이 불안해 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이 증세를 공식화함에 따라 정부는 다음주 경제관계장관회의 및 국무회의에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다음달 마련될 내년 세법 개정안에 ‘부자증세’ 방안을 담을 방침이다.

문대통령 왜? 높은 지지율로 난관 돌파
 
추경예산안 통과라는 중요 과제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은 ‘증세’마련 대책을 전격적으로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왜 이처럼 ‘증세’ 추진을 서두르는 것일까? 이에는 지난 노무현 대통령 시절 참여정부의 ‘종부세’ 역풍에 대한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다는 분석이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종부세’ 실시과정에서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해야 했다. 지지율을 최저인 상태에서 보수언론의 흔들기와 집권여당의 지리멸렬한 상태 때문이었다. 이에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취임초기가 국민저항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시기로 보고 이를 전격 시행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증세는 말 그대로 세금을 늘리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정당한 이유를 들더라도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위험성이 크다. 이러한 점때문에 어떤 역대정부도 증세카드를 쉽게 꺼내들지 못했다. 참여정부 등을 거치며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있는 문 대통령이 증세라는 난제를 지지율로 극복하는 방안을 꾀했다는 분석이다.
20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일주일 전보다 6%포인트 하락한 74%였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다. 특히 국정운영은 여론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지지율이 높은 이때가 최적기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추후 과제도 남아있다. 소위 '증세폭탄'을 맞은 대기업들의 불만을 어떻게 풀어갈지 여부이다. 또 부자증세에 반발하고 있는 보수야당의 비판도 잠재워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여당, “진지한 논의 시작해야”

문재인 대통령의 증세 추진과 관련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양극화 해소를 위한 고통분담 차원에서의 부자증세가 갖는 상징적 의미가 적지 않은 만큼 정치권은 신속히 진지한 논의에 착수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정진우 민주당 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어려운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층의 고통분담을 요구한 매우 적절한 지적"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 부대변인은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의 평균에 비해 부족세금이 연간 100조원 정도가 된다고 알려져 있다"며 "부족분을 고려하면 4조원 정도의 세수증대가 예상되는 슈퍼리치들에 대한 증세는 매우 미미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정부의 세출구조 개혁,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깎아줬던 부자감세의 환원을 전제로 필요시 최소한의 증세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바 있다"며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층에 대한 증세추진과는 달리 중산층과 서민, 그리고 중소기업에 대한 증세는 없을 것이라는 언급은 문재인 정부의 조세원칙을 명료하게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과표이윤 2천억원 초과 대기업과 과표소득 5억원 초과의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는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되기 시작하여 이제는 일정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한 사안"이라며 "바른정당의 대선후보였던 유승민 의원은 지난 대선과정은 물론, 그 이전에도 일관되게 증세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고 언급했다.

보수야당, “포퓰리즘 정책” 거센 비난

'부자증세' 논의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포퓰리즘 정책의 수습책"이라고 나란히 비판했다. 자유한국당은 24일 여권이 추진하고 있는 증세에 대해 '세금폭탄', '퍼주기' 등의 우려를 제기했다.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세금 폭탄 정책에 대해 이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쓰고 보자'는 정책의 연속성상에 있다"며 "가공할 세금 폭탄 정책이 현재는 초(超)고소득자, 초대형 기업에 한정돼 있지만, 어디까지 연장될지 예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22일 전희경 대변인은 구두논평을 내고 "전 세계가 감세를 통한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는 데 우리만 포퓰리즘 정책을 펴고 그 뒷수습책으로 증세 논의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대변인은 "이런 식의 증세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면서 "기업과 부자의 이른바 엑소더스 현상이 일어나면 서민들 고통만 가중될 것"이라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증세 논의는 한심하기 짝이 없으며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바른정당 이종철 대변인도 구두논평을 통해 "정부·여당은 야당일 때도 여당일 때도 온갖 선심성 포퓰리즘 공약을 내놓으면서 뚜렷한 재원조달 방안은 제시하지 못한 채 증세에 대해서는 회피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이 대변인은 "더 가진 사람이 더 내는 구조는 맞지만, 어느 일방의 희생만 강요하는 식은 곤란하다"며 "부자증세는 그 자체도 문제가 있으나 이는 합리적 증세 논의를 물타기 하는 행태로도 보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