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 꿈을 꾸었다

신도림역 개찰구를 빠져 나오자마자 잔뜩 흐려있던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이 아스팔트 위에 떨어지자 도로에서는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위에 파장처럼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센터는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 다행이었다. 지하 쇼핑상가를 지나지 않는다면 아침 산책삼아 걷기에 딱 알맞은 거리. 그렇지만 쏟아지는 비를 맞고 걸을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상가의 편의점에 들러 접히는 우산하나를 샀다.

그리고 쇼윈도에 진열된 반라의 마네킹들을 훑으며 문득 캐리어에 든 날개옷을 생각해 냈다. 그러자 갑자기 기분이 유쾌해졌다. 아니, 일부러 웃었던가. 저만치 마주 걸어오던 흰 티셔츠의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봤다. 아마도 내가 자신을 보고 웃는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얼른 표정을 굳히고 남자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러자 남자도 내게서 시선을 떼고 빠르게 스쳤다. 스치는 그에게서 소나무향이 희미하게 올라왔다. 순간, 난 남자의 팔목을 잡아채고 싶다는 묘한 충동으로 파르르 몸이 떨렸다.

간밤에 또 꿈을 꾸었다. 역시 황량한 벌판이었다. 아니, 사막이었던가. 나무 하나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 곳. 그곳에서 난 또 그를 애타게 부르며 찾고 있었다. 하지만 벌판 어디에도 내가 찾는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하늘과 땅이 맞닿는 멀리로부터 누런 흙먼지만 세차게 휘몰아 올 뿐. 벌써 여러 번이었다. 그 꿈이. 헌데 꿈에서 깨고 나면 내가 그리도 애타게 찾던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 기억을 해 낼 수가 없다. 그저 휑한 어둠처럼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려 싸하게 저려올 뿐이었다.

센터에 오는 그녀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거의가 비슷했다. 표정뿐만이 아니라 생김새며 옷차림도 서로 닮았다. 그래서 일자리를 구하는 심정이나 원하는 조건도 한결 같았다.

“아무 일이나 괜찮아요. 그때그때 정확하게 월급만 들어오면 되요.”

“그동안 일을 하신 경험은 없으세요?

나는 충분히 그녀들을 이해하면서도 지극히 사무적인 말을 빼놓을 순 없었다.

“일요? 여태 허리가 휘어나가게 식구들 뒤치다꺼리만 했는데 일은 무슨 일...”

지금껏 허리가 휘어나가게 일을 했다면서도 그녀들은 놀고먹었다는 듯 계면쩍은 웃음으로 말끝을 흐렸다.

“특별한 경력이 없으시면 취업하시기 어려워요.”

“옛날 결혼하기 전 회사를 다니긴 했는데....그런 일은 이제 어렵겠죠?”

“네, 아무래도....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교육을 좀 받으시면 일자리 찾기가 훨씬 쉬워져요.”

그러니까 난 이 곳 센터에서 직업을 찾는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찾아주는 일을 하고 있다. 직업상담사, 물론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나 역시 일자리를 찾아 센터를 방문한 그녀들과 똑 같은 처지였지만.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