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환 전 관훈클럽 총무/칼럼니스트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구월환] 남북한 간에는 6.25 이후에도 전쟁이 날 뻔했던 사건이 여러 차례 있었다. 1968년 1.21사태가 대표적이다. 그때 청와대습격을 위해 편성된 31명의 특공대원 중 하나로 내려왔다가 체포된 김신조는 침투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정희의 목을 따러왔수다”라고 거침없이 말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들은 청와대 바로 뒷길에서 경찰에 막혀 미수에 그쳤는데 만약 성공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분석이 나온 바가 없다. 이들의 습격으로 대통령과 그 가족이 죽었다면 이는 역사적으로도 그 예를 찾기 어려운 대사건이다. 청와대 습격을 위해 특공대가 담장근처까지 왔다는 사실 만으로도 보통 큰일이 아니다. 북한은 이것도 모자라 이틀 후에는 동해상에서 미해군 정보함 프에블로호와 승무원 82명을 납치해갔다. 또 그해 10월에는 울진삼척지구에 120명의 특공대를 보내 아군과 교전 끝에 113명이 사살되는 등 난리를 치렀다.

입장을 바꿔 만약 남한에서 평양의 김일성관저를 습격했거나 120명의 특공대를 침투시켰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어쨌든 이런 거사를 할 때 최악의 경우 전쟁까지 각오하지 않고는 감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1983년 10월 버마 아웅산에서 전두환 대통령과 수행원들을 몰살시키려고 폭탄테러를 벌인 것도 전쟁위험을 각오하지 않으면 기획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1987년 11월 바그다드발 서울행 대한항공 여객기를 공중 폭파한 것도 그렇고 2010년 3월의 해군의 천안함 격침사건과 같은 해 11월의 연평도포격 사건도 전쟁의 단초가 될 수 있는 사건이다. 

만약 우리 측에서 북한에 대해 이런 공격을 했다면 그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여기에 대해서도 아직 구체적인 예상분석이 나온 바가 없다. 전쟁위기는 1976년 8월 판문점에서 북한군이 도끼로 미군을 살해했을 때도 고조된 바 있고 1994년 북한핵시설에 대해 미국 폭격계획을 세웠을 때도 그랬다.

전쟁유발에 가까운 집요한 도발은 주로 김일성 때에 이뤄졌다. 그의 목표는 이른바 ‘남조선 해방’이었다. 이런 침략주의는 당시 소련 독재자 스탈린의 공산주의 세계화와 맞아 떨어졌고 6.25남침도 두 사람의 합작으로 감행된 것이다. 소련의 남침지원은 스탈린의 후임자인 후르시쵸프의 회고록에서도 자세히 밝혀지고 있다. 전쟁을 치러본 김일성은 실패에 기초하여 또 다른 전쟁준비를 해온 것으로 보여진다. 그중의 하나가 핵개발이고 또 하나는 지하요새화다. 어떤 사람은 북한이 핵개발의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다고 말했지만 외부의 감시를 속여가며 집요하게 준비를 해온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또 지하요새화는 6.25때 미군의 폭격으로 혼이 났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좀 과장이긴 하겠지만 그들은 미군의 집중폭격으로 평양에는 단 한평의 땅도 온전한 게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최고위 탈북자인 고 황장엽씨는 전쟁을 통한 핵문제 해결은 어렵다면서 북한의 주요시설과 무기가 지하요새에 들어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북한을 완전 점령하려면 3개월 정도가 필요할 텐데 이 기간에 미군의 희생이 너무 클 것이므로 미국여론이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갔을 때 평양 지하철역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유난히 깊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하화(地下化)는 70년대 월남전에서 베트콩의 땅굴효과가 입증되면서 더 활발해졌다는 말이 있다. 벌써 여러 개의 땅굴이 휴전선이남 우리 지역까지 뚫고 들어온 것이 발견됐지만 아직도 말이 많다.

북한체제는 공론화와 국민동의를 필수전제로 하는 민주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전쟁 같은 큰일을 도모하기에는 유리한 체제다. 김일성의 생전 교시가 성경처럼 받들어지는 곳이다. 흔히 우상화라는 말로 표현되지만 종교가 불법화된 북한에서 김일성은 종교처럼 떠 받들어지고 있다. 그의 ‘남조선 해방’노선은 죽지 않았다. 이제 핵무기까지 갖게 된 김일성의 나라다. 낭만적인 생각에 치우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맹수인 실제 곰과 곰돌이를 착각하는 격이다.

구월환(丘月煥)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전 연합통신 정치부장, 영국특파원, 논설위원, 상무
전 세계일보 편집국장, 주필
전 관훈클럽 총무
전 한국 신문방송 편집인협회 이사
전 MBC재단(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전 순천향대학교 초빙교수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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