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 안의 카나리아

그때였다. ‘꺄꺄꺄꺄꺄꺄...’

나무위에 앉은 짝을 알아보기라도 한 듯 새장안의 수컷이 목이 찢어지게 울었다. 헌데 놀랍게도 수컷의 울음에 반갑게 반응한 건 남편이었다.

그가 카나리아의 울음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집안으로 뛰어 들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다짜고짜 카나리아의 가느다란 발목을 실로 묶어 밖으로 내왔다. 그러고는 그것을 포플러 나뭇가지 위에 걸어놓고 흐뭇한 표정으로 봐라보았다. 그러나 발목이 묶인 수컷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포플러나무 위에 앉아있던 카나리아도 남편의 속셈을 알아챘는지 망설이지도 않고 훌쩍 날아가 버렸다. 그날 밤 태풍 곤파스가 불어 닥쳐 새장을 매달은 포플러나무가지들을 꺾었다.

그 바람에 발목이 묶인 카나리아가 먹이통에 눌려 다리를 심하게 절룩거렸다. 그런데도 남편은 아침 눈을 뜨자마자 다리를 다친 카나리아에게는 눈도 주지 않은 채 둥지를 떠난 새를 찾으러 집을 나갔다. 결국 그날 이후 남편의 하루시작은 출근 전 동네 나무들마다 쫒아가 살피는 일이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상한 꿈을 반복해서 꾸기 시작한 건 그 일이 있은 뒤부터였다. 아마도 잠들기 전 카나리아를 생각한 탓이었는지. 난 그 밤, 잠들기 전 집나간 카나리아를 생각했다.

‘지금쯤 그 새는 어디에 있을까? 아프리카가 걔네들의 원산지라고 했지? 그렇다면 그 곳까지는 날아갈 수 없을 텐데. 아니야, 갈수도 있어 그럼, 갈수 있지. 그래서 지네 가족도 만나고 그리고 어쩌면 옛사랑도 다시 만났는지도 모르지...’

그렇게 둥지를 떠난 카나리아를 생각하던 밤. 불쑥 그가 떠올랐다.

마치 어제 본 얼굴처럼 선명하고 또렷하게. 환, 가슴 한쪽이 좌르륵 미끄러지는 아픔에 잠시 숨을 참았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창문을 때렸다.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방안 깊숙이 곤욕스럽게 침투했고. 이불깃을 끌어 머리위로 뒤집어썼다.

남편의 커다란 등이 내 움직임에 잠시 꿈틀했다. 수도원의 벽처럼 가파르고 견고한 등. 아니, 황량한 벌판처럼 버석거리는 등. 애써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난 그 밤에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꾸었다.

산에 올라있었다. 카나리아 빛깔처럼 노란빛의 꽃들이 아름드리나무 아래로 가득 피어있는 산.

누군가 아까부터 줄곧 내 옆에서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지영이었던가. 아니 내 목소리였던가. 어쨌든 그건 확실치 않았다. 노래 곡목도 기억이 나지 않으니. 하지만 얼마 안 있어 굵은 바리톤의 목소리가 허밍으로 그 낮은 목소리와 합류했다는 건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멋진 이중창이 산속 가득 울려 퍼졌다는 것도. 아, 그 순간 내 가슴은 환희로 터질 것만 같았다.

숨이 멎을 것 같은 환희에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내뿜는 향기와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만지는 바람 그리고 내 호흡과 같은 편안한 바리톤의 음성, 그 모든 것들이 알맞게 내리쬐는 태양과 함께 감은 눈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 이럴 수가, 그 모든 것은 사라지고 없었다. 황량한 벌판이었다. 빼곡한 숲도 숲을 달리던 부드러운 바람도 내 가슴을 뛰게 했던 바리톤의 음성도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벌판. 그 한가운데에 내가 서 있었다. 저 멀리로 누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내 가슴으로 들이쳤다. 피부를 뚫는 한기가 느껴졌다. 그가 사라졌으니 세상은 온통 차가운 어둠이었다. 그를 찾아야 했다. 나의 전부. 내 전부인 그 사람. 왜 그가 내 전부인지는 모르지만 그 순간 난 그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하지만 난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 몸이 결박당한 그것처럼 굳어 손조차도 내밀수도 없었다. 소리를 질렀지만 소리역시 그대로 바람에 묻힐 뿐이었다.

결국 그를 찾지 못한 채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그 꿈은 그날 이후로 종종 되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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