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충남문학관 관장 / 작가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이재인] 몇 해 전에 백두산 탐방길에 수꿩 한 마리를 포획했다. 운전하는 기사가 배경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사냥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이도백하 숲에서 쉬고 있는데 알록달록한 몸에 긴 꼬리를 가진 장끼를 발견하곤 외마디 소리를 냈다. “쉿!” 그 말에 일행 셋은 그만 입을 다물었다. 그는 까치발로 살금살금 자동차 뒷좌석에 숨겼던 장총을 꺼내 들었다.
장끼가 숲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운전기사가 방아쇠를 잡아 당겼다. 탕탕 총소리에 놀라 공중을 날던 꿩은 그만 지상으로 내리 꽂혔다. 놓칠세라 쫒아간 그는 만면에 탐욕스런 웃음을 지었다.

조선족 기사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송강역 근처 아는 식당엘 가서 꿩 요리 안주합시다. 한국의 귀한 손님한테 꿩고기 대접하라는 장백산 산신의 하명이구먼…….”
우리 일행은 그가 잘 알고 있다는 송강역 강가의 허름한 식당에 내렸다.
주인인 듯싶은 웃옷을 훌렁 벗은 터프해 보이는 사내가 말했다.
“무신 꿩인가?”
“산신령이 대한민국 서울 손님께 대접하라고 요놈이 순교 했소이다. 물을 끓여 털을 뽑고 꿩괴기 볶음을 해보시우…….”

그는 기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서둘러 꿩 해체(?) 작업을 했다. 일행들은 예기치 않은 꿩고기 요리에 군침을 흘리면서 기다렸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꿩고기가 청대 경덕진에서 제작된 제법 연륜이 베인 듯한 접시에 담겨 나왔다. 접시는 세제 구경을 한번도 못한 듯 꾀죄죄한 모습에 그만 꿩고기를 먹고픈 식욕이 십리는 달아난듯했다.
주위 일행의 강권에 떠밀려 꿩고기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그런데 꿩고기는 질겨 먹을 수가 없었다. 까닭인즉, 맹렬한 운동 근육으로 단련된 살코기는 푹푹 고아야만 한다는 것.

이런 경험을 간직한 필자는 최근 들깨밭둑을 깎다가 중병아리가 될락말락한 까투리 새끼 한 마리를 날쌔게 맨손으로 잡았다. 운동을 아직 시작하기 전인 것 같아 질기지 않을 육체를 가진 놈으로 추측되었다.
가슴을 벌렁거리면서 둥지에서 어미 한 쌍이 미련을 머금고 깨밭으로 몸을 숨긴 후 난 싸립물 바자에서 노끈을 발견하여 그것을 걷어내어 새끼 꼬듯 두겹으로 꼬아 꿩 새끼 날갯죽지에 감아 도망가지 못하도록 잡아맸다.
이때 마을 이장이 본인을 불렀다. 그를 따라 마을회관에서 현안 몇 가지를 논의하다 깜박 꿩새끼 사건을 잊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끼 꿩을 포박해 날갯죽지를 잡아매어 밭둑에 방치했는데 끓는 물에 담가 털을 뽑으면 새끼라서 먹을만할 테니 가져올게…….”
나는 아내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마치 개선장군이나 된 것처럼.
그런데 아내가 놀란 표정으로 일침을 가했다.
“아! 고기에 걸신들렸어요? 그 새낄?……. 우리도 손자새끼들 키우면서…. 그냥 가서 풀어놓아야…. 어서…….”

나는 아내의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들깨 밭으로 뛰어갔다. 아뿔싸. 밭둑에서 지쳐 쓰러져 있을 까투리는 어미의 끈질긴 주둥이 작업으로 노끈을 끈은 채 새끼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놈을 애초에 붙잡지 말을 일이었다. 욕망에 눈이 어두워 사물의 이치를 망각한 자신을 크게 뉘우쳤다. 어찌 까투리 사건만이 있었을까? 그 꿩 새끼 어미 아비는 새끼를 탈출시키기 위해 애썼을 두 시간이 그들한테 필사의 몸부림이었을 듯하다.
‘요놈들! 뉘들 다 이장 덕분에 새끼를 구했구나….’
나는 쓰디쓴 미소를 지으면서 저문 들녘에 초라하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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