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민주계 쌓여온 불만, 427재보선 공천 과정서 폭발

[뉴스포스트 = 도기천 기자] 야4당의 진보대통합 논의가 가속화 되면서 민주당내 중도-진보블럭 간의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올해 초 ‘3무1반’(무상급식·의료·보육 및 반값등록금) 정책을 당론으로 채택하면서, 당내 중도-진보 간 미묘한 입장차이가 있었는데, 결국 4.27재보선 공천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지고 말았다. 민주당이 민노당에게 전남 순천 국회의원 선거를 양보(무공천)하기로 하면서, 이 지역 예비후보자들은 물론 구 민주계를 중심으로 하는 당내 중도그룹이 크게 반발하고 나선 것. 여기에다 일부 중립 성향 의원들이 여권의 개헌논의에 참여하자는 쪽으로 기울면서 민주당내 자중지란이 소리소문없이 번지고 있다.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왼쪽)과 손학규 대표

일각에서는 민주당내 진보그룹과 민노당 등 진보정치권이 야권대통합을 이루려는 시도에 맞서 민주당 중도그룹이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뉴스포스트>가 민주당의 복잡한 정쟁 속으로 들어가 봤다. 결정적인 불씨는 전남 순천 공천과정에서 지펴졌다. 4.27재보선 공천에서 민주당이 민노당의 강력한 요구로 순천에서 후보를 내지 않기로 한 것. 이에 민주당 예비후보자들과 호남지역 실세들(구 민주계)이 대거 반발하면서 후폭풍이 일고 있다.

‘범국민연대와 야권연합추진특위’를 이끌고 있는 민주당 이인영 위원장(왼쪽)


박준영 전남지사와 민주당 소속 도의원들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데 이어 전남 시·군의회 의장단도 무공천 방침에 반발하고 나섰다. 이달초 전남 시·군의회 의장 22명은 전남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정략적인 야권연대를 이유로 순천시민과 전남도민의 여론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며 “원칙 없이 순천을 양보할 경우 당의 정통성이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급기야 순천 지역 도·시의원 등 40여명이 집단 상경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들은 국회와 당사를 방문해 “손학규(대표)와 이인영(최고위원)을 민주노동당으로 입당시키라”며 집단 시위를 벌였으며, 박지원 원내대표에게도 강력한 항의를 표시했다.

유독 이인영 최고위원에 대한 비난이 거셌는데, 이는 이 최고위원이 최근 민주당 내 486출신 인사들을 결집, ‘진보행동’을 출범시키면서 ‘진보통합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 때문. 진보진영과 민주당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이 최고위원은 ‘순천 무공천 카드’로 손 대표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그룹의 당권 장악에 반발

이같은 당내 갈등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는 게 당 안팎의 분석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순천 무공천’ 사태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손학규-김근태-이인영으로 연결되는 진보블럭이 당 실권을 장악해 나가는데 대한 호남지역 구 민주계의 쌓였던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는 얘기다.

손 대표는 원래 성향이 ‘중도’쪽에 가까웠으며, 지난해 전당대회 때까지만 해도 ‘중도통합론’을 내세우며 당 대표에 당선됐다. 당시 호남지역 대의원들은 ‘진보’보다는 ‘중도’에 가까운 손 대표 노선을 지지했었다. 손 대표는 이인영 최고위원측에서 운을 띄운 ‘진보통합론’에 대해 선을 분명히 했었다. 당 대표에 당선된 후에도 당내 486진보인사들이 주축이 된 삼수회, 진보행동 등을 불편하게 여겨왔다. ‘진보행동’ 발족식에서 손 대표는 “486도 기득권화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순수성을 잃지 말아 달라”며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진보행동은 이인영 최고위원을 비롯, 원내에서는 강기정 백원우 조정식 최재성 서갑원 김재윤 의원이, 광역단체장으로는 송영길 인천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가, 원외에서는 영남 강원 충청 지역의 지구당위원장 30여명 등 총50여명의 486출신 전현직 의원들이 참여해 지난해 11월 출범했다.

손 대표 호남에 등 돌렸나

하지만 486그룹이 친노, 민노당 등 진보진영과 유기적으로 결합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과거 한나라당 출신으로 호남쪽 기반이 전무한 손 대표는 이들과 친해지며 자연스레 진보노선쪽으로 ‘좌향좌’하게 됐다.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진보통합의 주자로 자리매김하며 진보진영 지지율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것도 손 대표의 마음을 급하게 만들었다.

민주당의 ‘3무1반’ 복지정책은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했다. 박 전 한나라당 대표의 ‘한국형 복지론’에 맞서 손 대표는 당 강령에서 ‘중도개혁’이라는 표현을 15년만에 삭제했으며, ‘보편적 복지’를 당의 목표로 제시했다. ‘보편적 복지’의 구체적 방안으로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에 무상교육(대학생 반값등록금 정책 등)을 더한 이른바 ‘3무1반 복지정책'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민주당의 ‘무상 3종 시리즈’ 정책은 그동안 진보진영에서 요구해왔던 아젠다를 대부분 수용한 것으로 향후 진보대통합의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도로 열린우리당?…위기감 고조

하지만 이때부터 민주당내에서는 ‘보이지 않는 갈등’이 진행돼 왔다. 진보통합론과는 한발 짝 거리를 두고 있던 호남지역 의원들은 대놓고 당의 노선에 반대하지는 못했지만, “자칫  열린우리당 시절의 전철을 되밟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들에게는 지난 2003년 당시 유시민 대표가 이끄는 개혁당과 시민단체, 민주계 일부가 통합해 만든 ‘열린우리당’으로 인해, 기존 ‘민주당’은 지지율이 4%까지 추락하는 미니지역정당으로 전락한 뼈아픈 기억이 있다. 

이들을 자극시킨 또 한가지 결정적 사건은 ‘김근태(GT)의 귀환’이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지난 8일 당내 최대계파로 출범한 ‘진보개혁모임’의 수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진보개혁모임은 김근태, 한명숙 상임고문과 문희상 의원을 공동대표로 원혜영, 백원우, 우상호, 유인태, 윤호중, 원혜영, 이목희, 이미경, 이인영, 임종석, 조정식, 최규성, 홍영표 의원 등 22명의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총 106명의 전·현직 의원 및 지역위원장이 회원으로 참여한 당내 최대 조직이다.

김근태 상임고문, 이인영 최고위원, 유선호, 최규성 의원 등이 속한 ‘민주평화연대’, 강기정, 조정식 의원과 우상호, 임종석 전 의원 등 486출신 정치인들의 모임인 ‘진보행동’, 이광재 전 지사, 서갑원 전 의원, 백원우 의원 등 친노 진영이 각자 주주로 참여한 ‘초계파 연합체’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조용히 지내던 김 상임고문은 진보개혁모임의 공동대표를 자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 안팎에서는 “김 고문이 손학규 대선 캠프의 싱크탱크 역할을 할 것”이란 얘기도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GT계로 알려진 민주당 모 의원은 “이미 진보통합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손 대표로서는 GT의 복귀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진배없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GT와 손 대표는 ‘경기고-서울대’(KS) 동문이자 과거 민주화운동을 함께 해온 평생 동지로 알려져 있다.

중도파, “좌편향으론 집권 불가”

이처럼 이념을 기반으로, 구 열린우리당 인사들이 총결집한 ‘진보개혁모임’의 출범은 호남권역을 기반으로 하는 구 민주계 진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GT의 복심’으로 알려진 이인영 최고위원이 나서서 손 대표를 설득, 이번 순천 공천에서 민주당이 민노당에게 양보하게끔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구 민주계 전체가 들썩거리고 있는 것.

한때 DJ의 최측근으로 순천에서 2선을 한 김경재 전 의원은 순천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며 민주당의 ‘좌클릭 현실’을 질타하고 나섰다. 그는 출마선언에서 “북한 김정일-김정은 세습에 대해 할 말을 못하는 민노당과의 연합으로 대다수 중도적 성향의 국민들이 민주당 지지를 주저하게 될 것”이라며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당은 민노당, 국민참여당, 좌파 시민사회의 압력에 밀려 후보를 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며 당지도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25일에는 “민노당 후보에 맞서 무소속연대를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또 DJ정부에서 과기부 장관을 지낸 김영환 의원은 “민주당이 다시 집권하려면 중도세력을 끌어안아야 하는데 현재의 좌편향으론 불가능하다”며 문제 제기를 공론화하고 나섰다.

개헌 참여로 진보대통합 저지?

더 나아가 구 민주계 일각에서는 여권의 개헌론을 이용해 돌파구를 찾자는 목소리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진보쪽으로 좌클릭한 당 주류에 맞서 한나라당에서 제기하고 있는 개헌논의의 아젠다를 선점함으로써 당내 기반을 다져 나가자는 것. 일단 손 대표를 비롯한 당내 진보통합론자들은 개헌논의 거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는데, 호남지역 의원들이 주축이 돼 개헌논의에 참여하게 되면, 당 주류의 동력을 분산시키고 진보대통합론도 힘을 뺄 수 있다는 전략이다. 분권을 보장하는 ‘개헌의 단내’를 당내 대권 주자들이 무조건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최근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민주당 쪽에서도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 원로를 비롯해 개헌에 찬성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고 발언한 것도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개헌을 화두로 보수대통합을 추진하려는 MB의 셈법과도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한나라당 친이계는 한나라당과 선진당, 민주당 일부 등을 통합하는 ‘보수대연합구도’를 통해  ‘박근혜 대세론’을 차단하는 한편 ‘레임덕’도 막자는 계산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MB연대’라는 야권의 공통된 대제 앞에서 구 민주계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내년 총선의 공천 칼자루를 현 지도부가 쥐고 있는 이상, 이들과 정면충돌을 일으키기 보다는 순간순간 ‘발목잡기’ 전략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미 민주당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을 내걸고 진보정당들과 연대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따라서 향후 선거에서도 연대의 큰 틀이 유지되면서 이번 순천 공천처럼 국지전 양상으로 진보-중도 간 갈등이 분출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색깔이 다른 두 가족이 한 지붕 아래서 오래 동거하기는 힘들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책과 이념이 다르면 결국 갈라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 정당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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