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선초롱 기자] 광동제약이 제약업계에 부는 블라인드 채용 바람에 찬물을 끼얹었다. 최근 상반기 공개채용을 실시한 광동제약이 입사지원서에 가족들의 인적사항은 물론 ‘추천인’까지 적도록 한 것으로 본지가 단독 확인했다. 광동제약이 활용한 ‘사내추천인 제도’는 블라인드 채용을 권장하고 있는 정부의 기조에 반하는 것은 물론, 채용차별을 막아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와 기업들의 노력에도 반하는 행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내부 인사 자녀나 지인 등을 뽑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광동제약 채용 시 사용되는 온라인 입사지원서 내 '추천인' 항목. (사진=광동제약 홈페이지)
광동제약 채용 시 사용되는 온라인 입사지원서 내 '추천인' 항목부분 확대. (사진=광동제약 홈페이지)

구직자 "추천인 보고 뽑겠단 소린가"

광동제약 홈페이지에 마련된 채용공고란에는 온라인으로 입사지원서를 작성할 수 있게 돼있다. 입사지원서에 들어갈 기본적인 이름, 생년월일, 메일주소 등을 작성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지원분야, 희망연봉, 입사가능일 등 구체적인 지원사항을 적는 란이 나온다. 그리고 그 바로 밑에 문제가 된 ‘추천인’을 적는 항목이 있다.

해당 항목에는 추천인의 소속, 성명, 연락처, 관계 등을 적도록 돼있다. 이에 대해 광동제약 관계자는 “사내추천인 제도”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제약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없는 신입 지원자들이 광동제약 직원에게 추천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입사를 위해서는 학연·지연·혈연 등을 동원해 광동제약 직원의 추천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런 탓에 광동제약에 아는 사람이 없는 신입 구직자들은 지원서 작성이 부담이 될수 밖에 없다.

광동제약에 입사지원을 고민하고 있는 구직자 박모씨는 "추천인란을 공란으로 비워두기 껄끄러워 지원을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며 "추천인을 적었을 때 회사가 확인 작업까지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상 추천인을 보고 해당 지원자를 뽑겠다는 것과 다름없지 않겠냐"고 불만을 표했다.

사내추천인 제도는 기업이 사내추천인을 통해 구직자의 평판을 쉽게 알아볼 수 있고, 지인이 근무하는 기업에 입사한 직원은 상대적으로 회사 적응이 쉬울 수 있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다. 기업 입장에서는 직원의 업무 효율이 높아지는 이점을 누릴 수 있다는 순기능도 있다.

(사진=뉴스포스트DB)

하지만 학연, 지연 등을 통해 입사한 직원이 많아질수록 이른바 ‘뒷배경’이 없는 구직자는 채용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도 클 수밖에 없어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찮게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이같은 상황이 기업의 ‘채용비리’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탓에 추천인제도는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기아자동차는 지난 2005년 입사지원서의 추천인란이 채용비리 논란으로 변질되는 결과가 발생하자 추천인란을 폐지했다. 당시 민주노총 산하 기아자동차 광주지부 노조간부 A씨는 억대의 돈을 받고 추천인 제도를 통해 계약직원을 채용시켜준 것을 드러났다.

정부 기조역시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는 등 이력서를 최소화하고 실무능력을 검증하는 방향으로 채용시스템을 바꾸고 있는 상황이다.

이외에도 구직자를 추천한 직원에 대한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예를 들어 입사지원서에 추천인을 적은 구직자가 채용될 경우, 추천을 받았음에도 업무능력이 떨어지거나 회사에 피해를 입히는 상황 등이 발생하면 구직자를 추천한 직원에 대한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탓에 추천인제도가 직원 관리용 자료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광동제약 입사지원서에는 추천인 항목 외에도 키, 몸무게, 가족들의 학력 등 지원자의 능력이나 수행 직무와 관련이 없는 개인 정보를 다수 포함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모두 국가인권위원회와 고용노동부가 입사지원서에서 제외할 것을 권고하는 인권 침해 항목들이다. 지난 3월 고용노동부에서 배포한 ‘능력중심채용 가이드북’에 따르면 가족학력, 신체 사이즈 등과 같은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광동제약 "채용에 영향 없다" vs 업계 "악용 소지 크다"

광동제약 측은 입사지원서에 회사 내 추천인을 적는 것이 채용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입장이다.

광동제약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회사에서 실시하고 있는 사내추천제도는 직원을 위한 포상제도”라며 “과정 또한 투명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추천인제도가 채용비리 등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겠다”면서도 추천인제도를 계속 유지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제약업계 관계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취재 결과 타 제약사들은 형평성을 위해 이 같은 정보를 요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D제약 업계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추천인을 적는 것은 채용과정에서 악용될 소지가 크다”며 “특히 지금처럼 채용비리, 채용갑질 등이 화두가 된 시대에 대놓고 추천인을 적으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H제약 업계 관계자는 “추천인제도라는 것은 활용도, 들어본 적도 없다”며 “포상제도가 아니고 직원들에게 심리적인 부담을 주는 제도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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