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구역 확대 · 대형건물 자체 금연구역 지정, 필곳이 없다

담배피울 공간 없는 애연자들 어디로

흡연부스에서 피우기는 싫어 ‘근처에서’

길에서 피우는 담배 ‘길빵’

금연구역 확대, 흡연구역도 함께 늘여야

길에서 피우는 담배로 간접흡연 피해 속출

 

[뉴스포스트=우승민 기자] 금연구역은 늘어가고 흡연구역은 부족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버스정류장, 횡단보도, 골목길 등 길을 걸어다니면서도 담배를 피우는 일명 ‘길빵’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바로 앞에서 ‘길빵’을 하면 뒤에 있는 사람은 피하지도 못하고 짜증만 나는 상황이 연출된다. 하지만 흡연자들은 흡연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길빵’을 계속하고 있어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실태를 들여다보았다.

(사진=우승민 기자)

늘어가는 금연구역, 흡연부스는 적어

길을 걸어다니다 보면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길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벌금을 물진 않는다. 담배꽁초를 버릴 경우에 한해서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지만 길거리 흡연 자체는 ‘흡연자들의 매너’에 맡겨 놓는 상황이기 때문에 ‘매너’의 한계가 길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난 2010년 보건복지부가 ‘국민건강증진법’을 개정하고, 지방자치단체가 금연구역을 정해 단속할 수 있도록 한 뒤 금연구역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금연구역은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지만 흡연자들이 편히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만든 흡연구역이 없다는 점에 흡연권을 보장하지 않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흡연구역에 대한 안내도 없이 무작정 금연구역만 늘어나면서 흡연자들은 규제를 피해 길거리를 활보하며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금연구역 확대에 너도나도 대형건물 출입구와 건물 근처를 ‘자체 금연구역’으로 규정하면서 흡연자들은 담배피울 곳을 찾아 이리저리 배회하며 흡연에 비교적 관대한 건물 앞이나 골목으로 몰리게 되는 상황도 벌이지고 있다. 정부의 금연정책이 가져온 또 다른 폐해다.

실제로 서울시내 여기저기 건물에선 거의 대부분 금연 표지판이 붙어 있다. 그러나 빌딩이 밀집한 여의도나 을지로 강남 등에는 흡연을 할 수 있는 곳은 눈 씻고 찾아봐도 발견하기 어렵다. 심지어 ‘흡연할 경우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는 곳도 실상은 ‘국민건강진흥법’에 규정된 흡연건물이 아닌 경우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금연구역 설정의 기준이 되는 국민건강증진법에는 정작 건물 앞거리나 골목이 금연구역에 포함된다는 규정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일부 자치구에서 ‘어린이집이 입주해 있는 건물은 건축 경계선으로부터 10미터 이내 금연’이라는 조례를 제정해놓고 있지만, 이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 건물 앞이나 골목길에서 흡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흡연구역을 마련하지 않고 무조건 금연을 요구하는 대형건물 탓에 흡연자들은 흡연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맨다. 이에 건물관리자가 없는 건물 앞이나 골목길, 길거리에서 흡연을 하고 있는 애연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에 길빵으로 인해 겪는 피해를 호소하는 비흡연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최 모(31‧여)씨는 “사람들이 없는 곳이나 흡연구역에서 피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걸어다니면서 담배를 피우게 되면 바람으로 인해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어 “길 가다 떨어지는 담뱃재로 인해 다칠 뻔 한 적이 있다. 어른도 위험한데 키가 작은 아이들은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조심해주기 바란다”고 전했다.

이처럼 ‘길빵’은 직접적인 상해를 입히기도 한다.

이에 따라 길거리를 비롯한 야외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는 행태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흡연에 비교적 관대한 문화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비흡연자들의 권리의식이 갈수록 강화되고 간접흡연의 고통에 대한 공감대도 확산되면서 ‘보행 흡연’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행법상 보행 흡연은 불법이 아니다. 간접흡연 피해를 보더라도 호소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가 보행 흡연을 법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흡연자나 비흡연자 양 측의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보행 중 흡연 금지를 찬성한 비율은 88.2%에 달했다. 서울시민 10명 중 9명 꼴이다. 반대한다는 의견은 7.7%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민 중 성인 남성 흡연율은 36.5%로 미국·호주보다 2배 이상 높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연간 7조원에 달한다.

서울시 움직임에 대해 비흡연자들은 반기고 있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우준향 사무총장은 “서울시 조사결과는 일반 국민들도 간접흡연의 폐해에 대해 경각심이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흡연권보다 비흡연자의 건강권이 우선돼야 한다. 길거리 흡연 규제는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흡연자들은 못마땅하다는 기색을 보인다.

애연가 김 씨(53‧남)는 “금연구역이 확대되면서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워왔다. 밖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는 곳이 많이 없는데, 다 규제를 해버리면 어쩌라는 건가”라며 “비흡연자들을 생각하면 금연구역을 늘리는 것에 대해 반대를 하지 않는다. 흡연자들을 위한 흡연 구역도 함께 만들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비오 담배소비자협회 정책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금연구역 확대로 인해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가 많아져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무분별하게 금연스티커를 사서 붙이는 건물도 많은데 이렇게 되면 흡연자는 갈 곳이 없어진다. 이 상태로라면 계속 갈등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문가들 중에도 금연구역이 늘어난 만큼 정부와 자치단체가 흡연자를 위한 공간을 확보해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사진=우승민 기자)

길거리 담배연기, 찝찝한 간접흡연

서울시의 설문조사에서는 시민 2853명을 대상으로 질문한 결과, 시민 10명 중 3명이 1주일에 10회 이상 간접흡연을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민들은 흡연 관련 가장 심각한 문제로 간접흡연(55.3%)을 꼽았다. 공공장소 중 간접흡연이 가장 빈번한 곳은 길거리(63.4%), 건물입구(17.3%), 버스정류장(13.3%)이라고 답했다. 길거리가 간접흡연의 중심구역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이처럼 비흡연자들은 길을 지나가다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들을 통해 원치 않는 간접흡연을 당하면서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 갈등이 심각한 실정이다.

비흡연자들의 권리의식이 갈수록 강화되고 간접흡연의 고통에 대한 공감대도 확산되면서 ‘보행 흡연’에 대해 적극적인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로 인해 눈살이 찌푸려진다는 이 씨(25‧여)씨는 “많은 사람들이 길을 지나다니는데 그 좁은 인도에서 담배를 피면서 걸어가면 연기는 뒤에 있는 사람들이 다 마신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며 “간접흡연이 더 좋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제발 담배를 길에서 피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하 모(26‧여)씨는 “회사 앞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지나갈때면 연기를 피할수도 없어 자연스레 담배 냄새가 몸에 베이는 기분이다”라며 “간접흡연으로 인해 찝찝할 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너무 당당하게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은데 불쾌하다며 담배를 꺼달라고 말을 못한다. 흡연자들을 위한 흡연부스가 많이 설치되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유준현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간접흡연에 노출된 경험이 있는 사람이 간접흡연 노출이 없는 사람보다 자살을 생각할 위험이 1.43배 더 높았다”며 “간접흡연이 신체적 건강 이외에도 정신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게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관심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간접흡연을 막기 위해 흡연부스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이기영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금연구역은 어린이 등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의 공공장소에 금연을 적용한 것”이라면서 “흡연 부스나 실내 흡연구역 등을 설치하자는 주장은 세계적인 실내 금연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흡연자들도 우리와 같은 국민이고 자기 선택권과 결정권을 갖기 때문에 거리로 내몰고 사회적으로 낙인찍기보다는 적절한 흡연 공간을 제공해서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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