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시인 / 수필가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박종민] 갑과 을이 종속관계로 확정돼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위상이나 위치가 고착 됐을 때 터져 나오기 쉬운 게 갑 질이다. 갑이 하위에 있는 을의 약점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자기의 이윤과 편익을 추구하려 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갑과 을 간에 합의 협약이 없는 술수로 종속관계의 상위에 있는 갑의 요구 요청에 따라야만 되는 위협적 강압적인 행태, 이런 걸 갑 질로 정의하고 있다. 옛날엔 갑 질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이와 같은 갑 질의 실체는 경제경영이론에도 없는 것이다.
주인이 사람을 소유하여 사고팔며 맘대로 부리는 노예제도하의 독선적 행위도 아니고 기업주가 사람을 고용해 업무를 추진 처리해나가는 과정의 노사관계에 따른 업무행위도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돌발적으로 빚어지고 있는 비합법적 월권관계질서가 갑 질이다. 

인권과 인격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비합법적이며 비정상적인 사람과 사람의 관계질서이니 당연히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이 이로 인해 아픔과 고통을 감수하고 공감하며 질타하고 있으나 갑 질은 계속되고 있다.
근절되지 않는 갑 질 문화, 큰 권한과 넓은 영역을 가진 갑의 인지부조화가 만들어내는 현상인 듯싶다. 사건이 터져 여론에 밀리면 갑의 위치는 큰 손상을 받고 비난과 여론에 의해 상처를 받는다.
이처럼 사회적인 여론의 질타와 망신살 속에서도 끊이질 않는 갑 질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건 무엇일까?. 권한의 주도권을 쥔 자의 횡포, 무식하고 무지하여 행하는 무모한 처사 때문이다. 오만 불손한 정신자세로 자기밖엔 아무도 없다는 식의 인격과 인권을 져버리는 부덕한 행위를 스스럼없이 자행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사회에서는 나름대로 출세했다는 지식인들이 아니던가. 남들이 무식하고 무지하다 비난한다면 펄펄 뛸 인사들이다. 그런 그들을 보며 저주 할 수밖엔 없다. 좋은 자리, 존경과 사랑을 받을 위치에서 남들보단 더욱 먹고 살만 하니 만족해하련만, 욕심에 눈과 마음이 가리고 막혀 외골수가 됐고 냉혈인간이 된 것이다.
지위나 형세가 그만 하면 허욕을 버리고 비뚤어진 욕망을 바로 세워 베풀며 보듬고 나누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 선비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차라리 육갑 질이나 하란다. 갑자 을 축... 육십갑자를 외우란 것이다. 흔히 “등신, 병신 육갑 질하네.”라고 했다.
사람 아닌 사람모형을 한 괴물이, 몸에 병이 잔뜩 든 병자가 육십갑자 외운다? 온전치 못한 시원찮은 사람이 초삭 대며 나서서 잘난 체, 아는 체 할 때 “등신 병신 육갑 질 하구 자빠졌네.”라고 질타하던 것이니, 갑 질이란 건 육갑 질만 도 못한 것이다.  
 
노릇 제대로 하려면 겹 육갑 질 하는 게 낫다. 갑자 을 축- 해 중금(바다 속의 금). 병인 정묘-노 중화(길섶에 핀 꽃).... 이렇게 사람들의 사주팔자나 궁합을 봐주고 시조를 읊으며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의미를 되새기며 살아가야 하는 게 우리사회에서 출세를 하고 성공 성취를 한 지도자급의 인사들이 아니겠나 싶다.
지나치게 이익만 집착 말라. 가진 권한을 의롭게 행사하라. 원성과 원망을 살 행위 행실로 파멸을 자초하질 말라. 스스로 등신(等身)의 몸, 병신(病身)의 몸으로 전락(顚落)하는 행동거지를 하지 말라. 세상이 엄혹(嚴酷)하다. 감시망이 촘촘하고 보는 눈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살아있다.

자신의 건전한 정신 건강한 육체부터 길러라.

박종민
시인 · 수필가
한국문인협회회원, 국제 펜클럽회원
시집 『바람가지』 『기다림』 外
수필 『하늘을 이고 땅을 딛고』 『여럿이 더불어』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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