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의 바다

바다, 내가 바다를 처음 본 것은 부산에서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곳이 아마도 태종대가 아니었나 싶은데 정확한 위치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난 집을 떠난 타향에서 처음으로 바다를 봤다. 어디를 가려고 했던 건지 목적지는 정확히 기억이 없지만 버스를 타고 가던 중이었던 건 생각이 난다.

그때 산허리를 끼고 돌아 무심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하마터면 난 비명을 지를 뻔 했다. 내 몸이 창공으로 번쩍 들려 패대기쳐진 것처럼 아찔했던 것이니.

그렇게 바다는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바위와 바위사이에 하얗게 부서지는 물살. 부서지는 파도 너머로 파랗게 펼쳐진 망망대해. 난생 처음 보는 바다는 선잠을 깬 아이의 슬픔 같기도 하고, 장에 나와 엄마 손을 놓쳐버린 아이의 낯빛 같은 그런 것이었다.

파란 먹빛 물결위로 회색빛 갈매기는 저 홀로 헛헛하게 날고 있었고 기기묘묘한 단구(段丘)를 향해 끝없이 으르렁대는 바닷가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볼 수 없어 소르르 한기가 느껴지게 했다. 그러면서도 뭔지 모를 펄펄 끓어오르는 열기로 날 소스라치게 했다. 한기(寒氣)와 열기(熱氣), 암담함 속에 솟구쳐 오르는 삶의 희열. 가슴이 뜨거웠다. 스무살 적, 처음 본 바다는 그렇게 상반되는 묘한 색깔로 날 당황하게 했다.

남자는 춤을 추고 있었다. 긴 생머리를 질끈 하나로 묶어 넘기고 파란색의 아이세도우를 눈두덩에 넓게 발라 떡칠을 한 채 춤을 추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자는 엿을 팔고 있었다.

각설이. 연지곤지에 붉은 립스틱, 하늘하늘 미니 시폰치마와 브라를 한 깡마른 엿장수. 나이는 이제 갓 마흔이 되었을까, 아쉽게 나이는 어림잡을 수 없었다.

난 원래 사람의 얼굴을 보고 나이를 알아맞히는 것에는 젬병이니 여장을 한 그가 서른인지 마흔인지 아니면 그 이상인지 가늠해 볼 수가 없었다.

날씨는 상당히 추웠다. 그런데도 방파제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정월대보름 오이도 축제' 라고 내걸린 현수막에 사람들이 들어차 바닷가 길옆 주차라인에는 이미 주차할 공간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도 주차 관리인은 내 차를 흰색 코란도 옆으로 바짝 붙여 세워두게 했다.

"싸드 올지 마쇼!

두툼한 털모자를 귀까지 내려쓴 주차 관리인은 추위 때문인지 말이 어눌했다. 그가 창문 안으로 고개를 쑥 디밀어 내 사이드 키를 가리켰을 때 그의 입에서 하얀 입김과 함께 고약한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순간, 난 숨을 멈춘 채 얼른 고개만을 끄덕여주었다. 그리고 내가 왜 이곳에 차를 세워두어야 하는가를 잠깐 고심했다. '아, 바다! 바다를 보러 왔지.' 그만큼 난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차를 몰고 나왔던 것이다.

정확하게 갈 곳을 정하지 않고 차를 운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스스로를 갈팡질팡 균형 잃게 하는지, 아니 얼마나 비참하게 하는 건지 잘 알면서도 언제부턴가 난 가끔씩 낯선 거리를 헤맸다.

그날도 그랬다. 하지만 원래는 그곳까지 갈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날은 도심을 맴돌던 그것을 벗어나 멀리 오이도까지 나갔던 것이다. 여자의 그 눈빛만 아니었어도 대충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으로 들어갔을 텐데.

'그 나이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OO출판사의 편집장 눈빛은 분명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순간, 난 바다가 보고 싶어졌던 것이다. 하얗게 이를 드러내는 바다가. 그래서 외곽순환도로에 올라탔던 것이다. 인천에 가면 바다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하지만 인천에 도착하기 전에 생각이 바뀌었다. 바다는 인천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라서. 광명을 조금 벗어난 시흥에도 바다는 있었다.

달리는 전광판에 오이도라는 푯말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상큼한 바다를 연상시켜 방향지를 재조정했다. 상큼함에 비중을 둔 것은 그만큼 내안에 날선 감정들이 누그러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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