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남자

오이도로 들어가는 도로는 상당히 막혀있었다. 하지만 받아놓은 시간 약속도 없는 상황이라 난 그런 것에는 무감각했다.

그보다 서듯 기듯 어기적거리며 들어선 오이도는 내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상큼함은커녕 물방울 하나 튕겨내지 못하는 바다였다. 그런 바다를 보려했던 건 아니었는데. 좁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즐비한 상가와 마주한 바다는 시끄므레한 뻘을 드러낸 채 벌러덩 누워있었다.

뻘 안에는 검은 폐타이어와 비닐 등이 군데군데 흑점처럼 박혀 마치 중병 앓는 환자처럼 초췌해 보였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도, 검푸른 먹빛의 일렁임도 찾아 볼 수 없는 바다.

그런 와중에도 매서운 겨울바람은 갯벌 위를 날아 사람들 속으로 무섭게 파고들었다. 차갑게 파고드는 바람을 마주 안으며 난 피식 쓴웃음을 지었다. 또 편집장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 너무 오랫동안 쉬신 것 같아요.'

젠장, 바닥에 구르는 깡통을 눌러 밟으며 돌아섰다. 헌데 돌아서는 찰나 빨간등대가 눈앞에 보였다. 생뚱했다. 갯벌 밭에 등대라니,

'쳇! 완전 상업적이군.'

죽 늘어선 거리의 상가들을 향해 못마땅한 눈흘김을 했다. 나에게 등대라는 이미지는 신성한 그것이었기 때문에.

밤바다의 수호신, 외로운 해인(海人)들의 파수꾼, 늙은 홀아비와 어린 딸의 애달픔과도 같은 그런 것. 그런데 갯벌위의 빨간등대는 내안의 내장된 순정성의 이미지를 여지없이 박탈했다.

넘쳐나는 도로의 차들과 흥청거리는 유흥점, 그리고 쉴 틈 없이 히죽대는 네온사인, 그것들과 결탁된 빨간등대,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아마도 내가 보고 싶었던 바다의 모습을 보지 못한 불쾌감이 작용된 탓이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빨간등대는 오염된 도회적인 느낌이었다. 그래서 싫었다. 그런데 그런 싫은 느낌과는 다르게 은근히 호기심이 생겼던 것이다.

도대체 이런 곳에서의 등대는 어떤 구실을 하는 것일까? 제대로 밤배들을 유인하기나 하는 것일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난 돌렸던 몸을 다시 돌려 등대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빨간등대 아래에서 춤추는 남자를 발견했던 것이다.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절씨구 씨구 들어간다.

에--헤 품바가 들어간다.

살을 찢는 정월바람에도 아랑곳없이 4명의 각설이들은 쟁강쟁강 엿가위를 흔들어대며 신명을 내고 있었다. 그 중 유독 한 각설이가 내 눈에 띄었다.

파란브라에 파란미니스커트를 입은 남자. 그 커다란 발을 좁은 하이힐에 구겨 넣고서 간드러지게 허리춤을 추는 여장한 남자. 드러난 허리가 푸르스름하게 얼어 나무토막처럼 감각 없어 보였는데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몸뚱이는 유연했다. 얼음 밑의 물고기처럼 리드미컬한 남자의 허리춤에 모여든 사람들이 넋을 놓고 있었다.

"앗 따! 오늘 날씨 겁나게 춥소 그려 잉! 그렇지만 이 추운 날씨도 이 오이도남자한테는 어림없을 것이요. 아, 그런디 거어기 아줌씨!, 시방 누구랑 팔짱끼고 있소? 아줌씨 것 맞어? 남에 것 데리고 나온 건 아녀? 그러다 머리 죄 뜯기는 것 아니냐고?"

춤을 추던 파란미니가 성큼 앞으로 나서 한 여자에게 거침없이 농을 건 것이었다.

자신을 오이도남자라고 지칭한 파란미니는 너무 깡말라 내 45킬로 몸무게보다도 더 가벼워 보였다. 아마도 내 남편이 봤더라면 비릿하다고 빈정거릴 게 분명한 말라깽이. 하지만 가름한 얼굴선과 날렵한 콧날 위로 슬쩍슬쩍 비치는 우수가 남자를 상당히 강단 있게 했다.

말라깽이는 제 가슴에 걸친 파란브라를 두 손바닥으로 추켜올리며 여인네가 걱정스럽다는 듯 울상까지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이 내 눈에는 여인을 상당히 우습게 여기는 것으로 비쳤다.

그런데 놀랍게도 앞줄의 여자는 그냥 헤벌쭉 입을 벌려 웃는 것이었다. 자기를 지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아 죽겠다는 듯 입안의 누런 금니까지 내 보이면서. 젠장, 그 옆에 팔짱을 끼고 있던 남자 역시도 전혀 싫은 기색도 없이 속 좋게 웃었다. 어릴 적 봤던 약장수 이후 간만에 보는 각설이였는데 하는 짓이 그때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러니 더 볼 것도 없었다. 더구나 말라깽이가 나에게 거는 수작 같아서 불쾌하기조차 했다.

'감히 남의 유부녀에게 희롱을 하다니, 그것도 엿 파는 각설이 주제에'

그때도 그랬었다. 5일장이면 매번 원숭이를 앞세운 약장수가 왔었다. 깜박 잊은 장날도 약장수의 북소리가 장날을 기억나게 해줄 정도로 약장수는 어김없이 왔었다.

끈끈한 점막을 만졌을 때의 그것처럼 끈적한 눈빛을 하고서, 더구나 제 바짓가랑이에 축 늘어진 표주박을 덜렁덜렁 흔들어 대며 사람들을 불러 모은 꼴이라니. 그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난 약장수가 싫었다.

그런데 그런 나와는 달리 어른들은 상당히 그를 반기는 눈치였다. 마을의 제일 연장자 약방 할아버지마저도 그의 짓에 맞장구라도 쳐주듯 박장대소하며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아, 그때의 실망감이란, 어른들은 원래 저런 것인가. 뭔지는 모르지만 분명 어른들에게는 아이들이 모르는 비밀스런 세계가 있고, 또 그 세계는 비계덩이를 삼키는 것 마냥 느끼할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랬던지 사춘기 적 한동안은 성기를 가진 모든 것들이 불결해 트라우마(Trauma)를 앓는 아이처럼 수컷에 대한 기피현상까지 앓았다. 아무튼 그 이후부터 북을 치는 떠돌이 약장수는 물론 엿가위를 쟁강거리는 각설이굿판은 혐오식품처럼 의식적으로 피해왔다. 그러니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무를 것도 없었다.

"오매오매! 언니, 어디가려고? 엿 조께 사시요."

둥글게 둘러져 있는 줄 뒤에서 돌아서려는 찰나 언제 나타났는지 진한 화장에 빨간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각설이가 슬쩍 몸을 부딪쳐 왔다.

순간 당혹스러웠다. 아랫도리가 다 드러난 남자가 까만 망사스타킹에 빨간 원피스, 그것도 간지러운 콧소리로 엿판을 내미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난제였다. 그 순간 거절할 말을 잊었다. 그렇다고 넙죽 받아들 넉살도 안 되었다.

"흐 응! 언니, 하나 사!"

"....."

"흐 응! 언니이."

"얼마예요?"

"두개 사아, 두개사면 오천 원에 줄게."

"아뇨, 하나만 주세요."

전혀 뜻하지도 않은 엿봉지를 빨간원피스에게 받아들고 난 당황스러워졌다. 젠장, 그런데 빨간원피스는 한 술 더 떠서 사람들로 겹겹이 둘러쳐진 바리케이드를 뚫고 공연마당으로 날 밀어 넣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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