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유시민, 대권플랜 가동

[뉴스포스트 = 도기천 기자]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이 오는 4월27일 치러지는 경남 김해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극적으로 후보단일화를 성사시켰다. 이로서 김해을은 국민참여당, 전남 순천은 민노당, 강원지사 선거와 경기 분당은 민주당 후보가 야권단일후보로 뛰게 되면서, 사실상 민주-민노-참여당 간의 황금분할 구도로 이번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게 됐다. 

‘판’이 세 번씩이나 깨지면서 막판까지 난항을 거듭하던 김해을 야권 단일후보 경선. 결국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가 민주당 곽진업, 민노당 김근태 후보를 누르고 후보적합도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함으로써 극적인 야권통합을 이뤘다. 비슷한 시각, 강원도에서는 민노당 배연길 후보가 사퇴해 민주당 최문순 후보로 단일화 됐다. 이로서 강원지사와 국회의원 선거구 3곳 등 4곳 모두에서 야권 단일후보 1명만 본선에 진출하면서 여야간 1:1 구도가 구축됐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당시 ‘반(反) 한나라당’을 기치로 전면적 범야권 연대가 시도된 이래 선거구 전체에서 후보등록 전 단일후보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해을, 유시민 대권 플랜 가동

야권단일화 선거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김해을’이다. ‘김해을’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의 대권행보와 맞물리면서 향후 야권의 대통합 향방을 가늠 짓는 중심추로 급부상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해을 재보선에서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에 맞서 야권 단일후보가 1:1로 맞붙을 경우, 김 후보를 10%이상 차이로 이기는 것으로 분석됐다. 더구나 이 지역 최대 이슈였던 신공항 백지화 파동과 맞물리면서 한나라당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야권단일화 성사의 최대 수혜자는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로 보인다. 유 대표는 참여당 중앙당을 아예 통째로 김해로 옮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번 경선에 사활을 걸어왔다. 유 대표는 참여당 대표로 선출된 지난달 19일 직후부터 김해에 상주하며 발로 뛰고 있었는데, 예상외로 참여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야권단일후보로 낙점된 데다, 여론도 야권에 유리하게 기울고 있어 자신의 대권행보에도 ‘파란불’이 켜졌다. 김해가 고 노무현대통령의 고향이라지만 전통 한나라당 텃밭인 영남권역임은 분명한 사실이라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만, 현재로서는 유시민호(號)가 예정대로 순항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손-유, 통합주도권 다툼 치열

한편 김해을 재보선은 참여당의 사활이 걸린 곳이기도 하다. 이번에 참여당이 한 석을 확보하게 된다면 국회의원이 없는 상태에서 최초로 원내진출을 이루는 셈이다. 이는 향후 진행될 야권통합 논의에서 원내정당으로서 다른 야당들과 동등한 지위를 보장받게 됨을 의미한다. 또 내년 총선에서 자당 후보자 기호배정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원외 정당은 무소속 후보와 마찬가지로 뒷번호(대략6~8번) 기호를 받게 되지만, 단 한 석이라도 의석을 확보하게 되면 명실공히 의석 순으로 기호를 받게 돼 진보신당 다음 순번을 받게 된다.

반대로 참여당이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에게 패한다면, 민주당 내에서는 ‘야권단일화 책임론’이 대두될 것이며, 이는 향후 단일화 판에도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된다. 유 대표는 이미 지난 6.2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야권단일후보로 출마했다가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에게 크게 패한 바 있다. 따라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에서는 ‘유시민으로는 안된다’는 ‘참여당 필패론’까지 대두될 수 있다. 유 대표가 민노당에 보내고 있는 러브콜 신호도 약발이 안 먹힐 수밖에 없다. 내년 총선에서 20석 확보로 원내교섭단체를 꿈꾸고 있는 참여당으로서는 이번 선거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참여당 핵심관계자는 “분당을에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출마했는데, 손 대표가 분당에서 이기고, 김해에서 참여당이 진다면 야권대통합의 추는 급격히 손 대표 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우리가 이기고 손 대표가 진다면 이는 유시민 대표가 야권대통합의 중심주자로 부상될 수 있는 결정적 기회가 된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선거”라고 전했다.

선(先)진보통합, 후(後)민주당과 승부 
 
유 대표의 ‘대권 밑그림’을 살펴보면 크게 3단계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은 ‘김해을’에서의 승리다. 유 대표는 최측근인 이봉수 후보를 당선시켜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굳힌 뒤, 민주당을 제외한 범진보진영이 추진하고 있는 8자연석회의에 당당하게 참여한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최근 진보대통합을 화두로 구성된 8자연석회의는 민노당, 진보신당, 사회당, 민주노총, 진보정치세력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 모임,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 전국농민회총연맹, 빈민단체 등 한국 진보그룹을 대표하는 정당 및 단체들이 총망라된 곳.

참여당도 이 연석회의에 참여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반기는 단체는 ‘시민회의’뿐이며 나머지 단체들은 참여당의 색깔과 정체성 등이 ‘진보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며 꺼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대표는 김해을에서 이긴 뒤, 진보대통합 논의에서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유 대표는 최근 <민중의 소리> 주최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조국-유시민-이정희 공개토크쇼에서 “내가 볼 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행복해지는 걸 두려워하고 승리하는 것을 기피하는 것 같다. 행복해지고 승리하는 길이 저기 있는데 그 길을 가지 않으려 하지 않나. 사람들이 ‘이게 무슨 일이야’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과감한, 낡고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는 것만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진보진영에 손을 내밀었다.

유 대표는 민노당 등 진보진영과의 관계정리가 잘되면 ‘진보단일후보론’을 내세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김해을 경선과정에서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먼저 단일후보를 낸 뒤, 경선에 참여했던 것처럼 진보진영 단일후보로 자신이 선출된 다음, 대대적인 국민경선을 통해 손학규 민주당 대표(손 대표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는 가정하에서)와 ‘한판 붙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유 대표와 개혁당 시절부터 함께해 왔다는 참여당 고위당직자는 “민주당과 선긋기를 분명히하고 진보통합주자로 자리매김하자는 것이 유 대표의 전략이며, 그래서 김해을에서도 민주당 중심의 단일화를 끝까지 반대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유 대표 ‘진보구애’에 민노 ‘시큰둥’ 

하지만 유 대표가 넘어야할 산은 현실적으로는 상당히 높아 보인다. 일단 민노당 등 진보진영의 ‘유시민 거부감’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최근 공식석상에서 “진보신당과는 같은 길을 가다가 잠시 판단이 달라 갈라서기는 했으나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므로 당장 합치면 문제없이 간다. 그러나 국민참여당과는 여러 이야기를 해봐야 하는 것”이라며 에둘러 말했다. 이 대표는 “유 대표는 참여정부의 부채를 계승하겠다고 했는데 한미 FTA가 6월에 올라온다. 생각하고 토론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민주노동당 핵심 관계자도 “진보신당과의 통합이 최우선 과제이며, 국민참여당과의 이야기는 더 두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진보신당 역시 참여당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진보신당 심재옥 대변인은 “참여당은 무조건 함께 하자고 할 것이 아니라 진보정당과 함께 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과거 정치적 활동에서 보였던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조직적으로 성찰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 진보양당의 태도는 과거에 비해 상당히 부드러워진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 시절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낸 유 대표를 비롯한 친노세력을 향해 ‘신자유주의를 내세워 노동자를 탄압했던 세력’이라고 비난했던 2~3년전과 비교하면 꽤 유연해진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게 정계 안팎의 분석이다. 또 일부 시민단체들이 ‘범개혁세력 통합론’을 들고 나오며 야권 전체를 압박하고 있어, 참여당을 배제한 채 진보대연합을 추진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얘기도 진보진영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을 제외한 야권 전체가 기득권을 버리고 ‘제3지대’에 모여 대대적인 국민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자는 것이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통합론’의  요지다. 

대표적으로 지난 2002년 대선때 노사모 바람을 일으켰던 영화배우 문성근씨 등이 야권의 대권주자 단일화를 아예 시민운동으로 이슈화하겠다며 발벗고 나선 상태다. 이른바 ‘백만민란 프로젝트’(일명 국민의명령)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야권단일화를 촉구하는 시민 100만명의 서명을 목표로 거리홍보, 트위터구축, 강연회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정치권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에 시작한 이 운동에는 현재까지 10만여명이 후원금을 내는 회원으로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웬만한 정당의 진성당원(당비를 내는 당원) 수에 육박하는 규모로, 이 움직임이 미칠 파장을 두고 정치권도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민주, 손학규-GT-이인영 ‘쓰리 톱’ 가동

한편 민주당은 진보진영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내심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야권대통합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나름 ‘통 큰 행보’를 펼치고 있다. 우선 민주당은 대통합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지난달 김근태 상임고문을 중심으로 하는 당내 최대 계파연합체인 ‘진보개혁모임’을 출범시켰다. 진보개혁모임은 김근태, 한명숙 상임고문과 문희상 의원을 공동대표로 원혜영, 백원우, 우상호, 유인태, 윤호중, 원혜영, 이목희, 이미경, 이인영, 임종석, 조정식, 최규성, 홍영표 의원 등 22명의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총 106명의 전·현직 의원 및 지역위원장이 회원으로 참여한 당내 최대 조직이다.

김근태 상임고문, 이인영 최고위원, 유선호, 최규성 의원 등이 속한 ‘민주평화연대’, 강기정, 조정식 의원과 우상호, 임종석 전 의원 등 486출신 정치인들의 모임인 ‘진보행동’, 이광재 전 지사, 서갑원 전 의원, 백원우 의원 등 친노 진영이 각자 주주로 참여한 ‘초계파 연합체’다. 진보개혁모임의 지상과제는 야권대통합이다. 통합의 반경을 최대한 넓게 잡고 있는데,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모든 민주-개혁세력을 통합한다”는 목표로 뛰고 있다.

진보개혁모임의 수장격인 GT(김근태)는 민주화운동의 대부격으로 전대협 운동권 출신인 당내 486그룹과 친노개혁그룹 등을 두루 우군으로 두고 있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던 GT의 ‘화려한 복귀’는 손 대표의 러브콜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GT와 손 대표는 ‘경기고-서울대’(KS) 동문이자 과거 민주화운동을 함께 해온 평생 동지로 알려져 있다. 당 안팎에서는 “김 고문이 손학규 대선 캠프의 싱크탱크 역할을 할 것”이란 얘기도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GT계로 알려진 민주당 모 의원은 “이미 대통합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손 대표로서는 GT의 복귀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진배없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시민사회단체 및 진보진영쪽과의 실무적인 통합 논의는 전대협 의장 출신으로 486그룹의 대표격인 이인영 최고위원이 맡고 있다. 이른바 손학규-김근태-이인영 ‘쓰리 톱’으로 야권대통합을 추진한다는 게 이들의 구상이다. 김근태 고문은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브라질의 룰라가 12개 정파를 등록시켜 각 정파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통합을 이뤄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우리도 그렇게 해보자는 것이다. 민주당, 진보정당, 국민참여당 등 범야권 정당과 시민사회, 대중단체 조직, 노동자와 농민 조직이 참여하는 원탁 테이블을 구성하는 게 필요하다. 4·27재보선이 끝나면 본격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김 고문은 단순한 선거연대로는 정권교체가 힘들다는 점을 강조하며 “12월 중순까지는 (야권 전체가 참여하는) 통합전당대회를 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 방향이나 슬로건, 담론을 정하고, 200개가 넘는 지역구 후보 공천과 비례대표 공천을 할 수 있다”며 구체적인 시한을 언급하기도 했다.

구민주계, 야권통합에 부정적

하지만 당내 구민주계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또 진보진영에서도 민주당과의 통합논의는 여전히 후순위로 두고 있어 통합논의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번 4.27재보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할 경우 ‘손학규표 야권대통합’이 원점에서 다시 검토될 수 도 있다. 야권통합론과는 한발 짝 거리를 두고 있는 호남지역 의원들은 대놓고 당의 노선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자칫 열린우리당 시절의 전철을 되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이들에게는 지난 2003년 당시 유시민 대표가 이끄는 개혁당과 시민단체, 민주계 일부가 통합해 만든 ‘열린우리당’으로 인해, 기존 ‘민주당’은 지지율이 4%까지 추락하는 미니지역정당으로 전락한 뼈아픈 기억이 있다. 특히 이번 4.27재보선에서 민주당이 민노당에게 전남 순천 국회의원 선거를 양보(무공천)한데 대해, 이 지역 예비후보자들은 물론 구 민주계를 중심으로 하는 당내 중도그룹이 크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한때 DJ의 최측근으로 순천에서 2선을 한 김경재 전 의원은 순천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며 민주당의 ‘좌클릭 현실’을 질타하고 나섰다. 그는 “북한 김정일-김정은 세습에 대해 할 말을 못하는 민노당과의 연합으로 대다수 중도적 성향의 국민들이 민주당 지지를 주저하게 될 것”이라며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당은 민노당, 국민참여당, 좌파 시민사회의 압력에 밀려 후보를 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며 당지도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또 DJ정부에서 과기부 장관을 지낸 김영환 의원은 “민주당이 다시 집권하려면 중도세력을 끌어안아야 하는데 현재의 좌편향으론 불가능하다”며 문제 제기를 공론화하고 나섰다. 김해을 후보단일화 경선에서 참여당에게 후보 자리를 내준 것과 관련해서도 말들이 많다. 지난 6.2지방선거 때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유시민 대표에게 자리를 내줬던 과정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비판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경기도지사 경선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참여당이 계속 몽니를 부리니까 민주당이 너무 양보를 한 것인데 매번 이렇게 당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당이 되짚어 봐야 한다”며 “이번 재보선이 끝나는 대로 야권연대의 원칙과 방법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한다”고 꼬집었다.

진보진영과 민주당, 그 사이에 있는 참여당이 각자 살 길을 찾아 치열한 머리싸움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은 야권통합의 주도권이 유시민 대표로 넘어가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민노당이야 대권후보를 내더라도 통합파가 당주류를 장악하고 있어 결국에는 주고받는 형태로 사퇴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지만, 유 대표와는 반드시 맞붙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 사이에서 이래저래 민노당의 몸값만 치솟고 있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