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여성문학인회 26대 김선주 이사장 (사진=신현지 기자)

[뉴스포스트=신현지 기자] 도심의 계절은 가로수 잎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느낌이다. 가을이 문턱을 넘나 싶었는데 탑골공원 지나 운현궁 오르는 가로수길이 햇살 여문 가을빛이다. 더욱이 자잘한 떨림으로 청명함을 더하니 기분 좋은 만남이 예견된다.

다름 아닌 52년 역사를 지닌 (사)한국여성문학인회를 찾아가는 길이다. 1965년 박화성 선생을 시작으로 최정희, 모윤숙, 임옥희, 손소희, 김남조 등의 기라성 같은 선배 여성문인들의 뒤를 이어 26대 (사)한국여성문학인회를 이끄는 김선주 이사장과 만남이다.

1985년 월간문학의 단편소설 ‘갈증’으로 신인상을 받은 김선주 이사장은 『유리벽 저쪽』 『길 위에 서면 나그네가 된다』 『제로섬 게임』 『파라도』 『불꽃나무』 등 다수의 작품집을 통해 윤동주문학상, 민족문학상, 최우수예술인상, 이화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문학 백년상 등 굵직굵직한 문학상들을 거머쥔 문단의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김 이사장을 처음 알게 된 건 2015년. 그녀의 소설집<꽃비 내리다>을 통해서였다. 인간의 삶의 진실과 또 나아갈 방향을 묻는 주제로 깊은 사유를 제공한<꽃비 내리다>의 작가는 그해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이어 2016년 한국여성문단의 초석을 다진 (사)한국여성문학인회 26대 이사장에 선임, 지난봄, ‘한국여성문학인회의 전문지를 새롭게 창간하여 회원들의 참여도를 높이는 성과를 보였다.

더불어 작고문인의 재조명을 통해 문학의 향기를 지속시키는 한편 문학기행과 포럼 등을 열어 52년 역사의 ’한국여성문학인회‘의 활발한 활동을 독려 중이다.

(사)한국여성문학인회 역대 회장들의 사진이 걸려있는 율곡로 여성문학인회 모습 (사진=신현지 기자)

본지가 찾은 (사)한국여성문학인회의 방은 의외로 소박했다. 한국여성문학인회를 이끈 역대 회장들의 사진이 벽면을 차지하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특별함은 없었다. 그 아래 김 이사장은 간밤의 오랜 글 작업에 조금은 피로한 기색이었다. 그 때문인지 조용한 움직임과 차분한 음색이 김 이사장의 단아함을 돋보이게 했다.

문학의 계기는 주위의 압력 때문

창안 가득 들어오는 햇살을 피해 본지와 마주 앉은 김 이사장은 평소 자주 접한 질문이었다는 듯 문학의 계기에 망설임 없이 주위의 압력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백일장이나 잡지에 나가 상을 많이 받았어요. 그 때문에 ‘글 잘쓰는 아이’로 통했지요. 하지만 난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소설가는 감히 내가 넘볼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래도 문학이 좋아 불문과를 갔고 졸업하자마자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그대로 현모양처로 사는 걸 꿈꾸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글 쓰는 동네를 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응모의 압력을 받는 바람에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게 되었어요.

그러니 난 준비 없이 등단을 하게 된 것이고 뒤늦은 등단에 가족들 뒷바라지 하면서 하루 3시간 정도의 잠만 자고 열심히 글을 썼어요.

소설가가 될 운명을 알았더라면, 좀 더 일찍 등단했을 것인데. 왜 일찍 등단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에 조금은 안타까워하곤 해요.”

알렉산드르 뒤마의 <몬테크로스 백작>을 읽었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지 못해

그러니까 김 이사장이 ‘글 잘쓰는 아이’로 통했던 이유에는 그의 아버지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즉, 김 이사장이 처음 소설책을 접한 것은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사주신 외국소설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책을 좋아하는 만큼 김 이사장은 알렉산드르 뒤마의 <몬테크로스 백작>을 읽었을 때의 그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프랑스라는 나라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소설 한 편으로 다 알아버린 느낌이었어요. 먼 훗날 주인공이 갇혀있던 남프랑스의 지중해 한 가운데 있는 감옥 ‘이프성’까지 가보았다니까요. 또 레마르크의 <개선문> <서부전선은 이상없다> 앙드레지드의 <좁은 문> 톨스토이의<전쟁과 평화> <부활> <죄와 벌>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또 김동리 선생님의 소설을 비롯하여 한국작가들의 수많은 작품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어릴 적 완전 소설에 빠져 살았다고 할까요. 소설이 없는 세상은 재미가 없어 어떻게 살까? 할 정도였으니까요.”

늦은 문학의 길에 남보다 배의 노력, 가정과 문학이 서로 방해하지 않도록...

책을 좋아하는 소녀였기에, 아니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피그말리온의 효과였는지 결국 ‘글 잘쓰는 아이’는 운명처럼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 길은 절대 만만치 않은 길이었다.

뒤늦은 등단에 남보다 배는 노력을 기울여야 했고 또 무엇보다 한 가정의 주부라는 현실에서 그 어려움은 컸으니. “가정과 자식들의 삶에 지장을 주지 않고 두 가지를 서로 방해하지 않고 완벽하게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고 싶은 마음에 안간힘을 써야만 했어요. 그러니 밤을 잊고 살았지요. 그래도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글 쓰는 일을 계속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가장 보람 있고 뿌듯해요.”

내 소설은 치열한 경쟁과 이기심의 비정함에서 고뇌하는 인간들

하지만 소설 창작에 있어 시작점을 결코 나이의 적고 많음으로 계산할 수 없다는 게 김 이사장으로부터 확인이 된다. 작가 안에 오래 내장된 창작의 불꽃이 오히려 가두어진 여세를 몰아 거침없는 화력으로 분출한 것이니.

김 이사장은 발표한 작품마다 독자들의 반응은 즉각이었다. 특히 치열한 경쟁과 이기심의 비정함에서 고뇌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린 그녀의 작품에서 산업화 시대의 정신적인 갈등과 외로움을 느낀 독자들은 깊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는 소감을 내놓았다.  이에 김 이사장은 현실적으로 성공한 인간보다 현실에서는 비록 패배해도 정신이 올바르고 진실한 인간이 진정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 같은 소설을 쓰는 것이며 또 작가라면 사회와 역사를 꿰뚫어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이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어야 독자들의 공감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라고.

사실적인 사소설은 싫어, 주제 찾는 것 무엇보다 상상력 필요

이렇게 현대인의 정신적인 갈등과 외로움을 잘 녹여내는 김 이사장은 작가가 가장 어려워하는 소설의 주제는 물론 소재도 순간순간 서광처럼 뇌리를 스치는 상상력에서 찾아낸다고 말한다.

“소설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과 창의력, 그리고 풍부한 감성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쓰는 사소설을 싫어해요.

나는 신문에 난 단 한 줄의 기사나 생소한 풍경 하나를 보고 상상력을 동원해서 한 편의 소설을 만들지요. 그러니 내 소설은 내 생활이나 경험을 쓴 것이 한 편도 없어요.

그러니까 오로지 상상력으로 머리에서 시키는 대로 써 내려갈 뿐이에요. 소재는 주위에 널려있지만 작가는 그것을 어떻게 소설로 형상화 하느냐가 진짜 고민이지요.”

소설의 작법, 무조건 다독과 다작

작가에게 흔히 묻는 물음을 김 이사장에게도 던졌다. “도대체 소설을 잘 쓰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분명 특별함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김 이사장의 여타 문인들과 다를 바 없다는 답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또 다양한 독서를 하며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많이 써봐야 하지요.”

즉 다독과 다작을 통해서만 상상력과 창의력이 유발되고 감성이 무디어지지 않는다는 답이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또 수 없이 다듬어내야 보석 같은 작품이 나온다는 것.

페미니즘? 현대는 다양한 인간상의 하나

여권(女權)은 과거보다 신장했지만 여전히 페미니즘 소설이 화두라는 말에는 김 이사장은 조금 고개를 갸웃한다.

“굳이 페미니즘 소설로 분류할 필요가 있을까요? 분명히 여성과 남성은 다르지만 현대는 모두 다양한 인간상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지금껏 김 이사장은 성차별과 관련하여 특별하게 피해의식을 가져본 일은 없다고 한다. 따라서 남녀차별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며 성스러운 출산을 담당하는 여성이야말로 존중받아야 함을 사회 역시 자각해야한다고 차갑게 표정을 굳힌다. 그 모습에서 김 이사장의 당당함과 더불어 ‘(사)한국여성문학인회’의 길을 새롭게 다질 행보에 기대가 모아진다. 김 이사장의 앞으로의 계획을 듣는 것으로 오늘의 만남을 마무리하기로 한다.

앞으로도 끝까지 소설 쓰는 것

“앞으로 나의 계획요? 앞에서 설명했듯 (사)한국여성문학인회  회원들의 활발한 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문학기행과 포럼 등을 자주 열 것입니다. 그리고 나 개인적으로는 글쎄요. 나는 인간에게 분명히 자기도 모르는 운명이 있다고 생각해요. 작가를 꿈꾸지 않았는데 우연히 그 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아주 내성적이고 번잡한 인간관계를 싫어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했던 내가 치열한 선거 과정을 거쳐서 한국문협 소설분과회장을 2번이나 하고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장을 하는 것을 생각하면 문득문득 내가 아닌 것 같이 낯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에 고개가 갸웃거리네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로지 가정 속에서 소설만 쓰던 때로 돌아가서 나를 차분하게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어찌됐든 나의 최종 계획은 끝까지 소설을 쓰는 것이에요.”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