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손학규로 갈아타기…참여당 다시 민주당 ‘기웃’

[뉴스포스트 = 도기천 기자] 4.27재보선이 사실상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완승’으로 끝나면서 민주당 중심의 야권대통합론이 속도를 내고 있다. 민주당과는 일정부분 선긋기를 하면서 진보진영의 대표주자를 꿈꾸었던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이달초 “다수의 당원이 결정하면 따를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 민주당과의 야권통합 가능성을 최초로 시사했다. 민주당 내 486세대와 재야파, 친노그룹으로 구성된 ‘진보개혁모임’은 1일 80여명의 전·현직 의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대전에서 첫 워크숍을 갖고 대통합을 실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플랜을 가동했다. 

민노당과-진보신당을 중심으로 하는 진보대통합도 9월말까지로 시한을 정해두고 속도를 내고 있다. 연합공천과 후보단일화를 성사시킨다면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내년 총선에서 160석 이상을 얻을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나오고 있다. <뉴스포스트>가 정치권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대통합론 속으로 들어가 봤다.  

참여당 도로민주당 되나?

그동안 야권의 통합논의는 크게 세 갈래 구도 속에서 전개되어 왔다. 민주당 중심의 민주대통합, 민노당과-진보신당-참여당을 축으로 하는 진보대통합, 시민사회단체가 주축이 된 범개혁세력 통합론(제3지대통합론) 등이다. 유시민 대표는 그동안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소(小)통합을 이루고 제1야당인 민주당과는 선거·정책연대를 하자는 그림을 그려왔다. 유 대표는 4.27재보선때 ‘김해을’에서 승리해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굳힌 뒤, 민주당을 제외한 범진보진영이 추진하고 있는 8자연석회의에 대주주로 참여, 진보진영 대표주자로 자리매김 한 뒤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제대로 한판 붙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김해을에서 참여당 소속으로 출마한 야권단일후보가 패배함으로써 대권주자로서의 위상이 크게 실추됐으며, 처음부터 다시 밑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게 됐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야당 대표로는 이례적으로 1일 노동절을 맞아 민주노총 등이 주최한 ‘노동자 대회’에 참석했다. 그만큼 진보대통합이 손 대표에게는 절실한 과제로 보인다.

유 대표는 2일 마포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년 총선ㆍ대선 이후를 포함한 당 진로는 앞으로 당원들이 함께 논의해 결정할 것”이라며 “당 활동에서도 개인이 아니라 당대표 유시민으로서 생각과 고민, 결정, 행동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과의 색깔차이를 분명히 하며 선을 그었던 과거와 달리, 민주당과의 통합에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음을 처음으로 시사한 것이다. 이는 재보선 이후 손학규 대표는 물론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야권통합론을 강조하고 나선데 대한 유 대표의 첫 반응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민주당 쪽에선 유 대표 스스로 야권대통합 쪽으로 통합논의의 물꼬를 터주려는 것이란 기대 섞인 해석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수도권 자신있다”

민주당내에서도 모처럼 맞은 ‘기회’를 내년 총선까지 끌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분당을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손학규 대표는 “민주개혁 진영을 더 새로운 마음으로 통합하는, 끝까지 우리를 버릴 수 있는 자세로 통합해나가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진보진영의 승리를 위해 야권연대를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에 민주당 486그룹과 재야파, 친노그룹으로 구성된 진보개혁연대는 1일과 2일 대전에서 야권통합 워크숍을 열고 “1년 뒤로 다가온 총선까지 이번 재보궐 선거 승리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야권이 한나라당과 1대1 구도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워크숍에는 김근태 상임고문, 문희상, 원혜영 의원 등 당 중진들을 비롯, 강기정, 백원우 의원 등 80여명의 전·현직 의원들이 참석했다.

지난달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야권후보 단일화를 성사시킨 야4당 대표들.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 민주당 손학규 대표, 민노당 이정희 대표,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왼쪽부터)
진보개혁모임은 김근태, 한명숙 상임고문과 문희상 의원을 공동대표로 원혜영, 백원우, 우상호, 유인태, 윤호중, 원혜영, 이목희, 이미경, 이인영, 임종석, 조정식, 최규성, 홍영표 의원 등 22명의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총 106명의 전·현직 의원 및 지역위원장이 회원으로 참여한 당내 최대 조직이다. 진보개혁모임의 지상과제는 야권대통합이다. 통합의 반경을 최대한 넓게 잡고 있는데,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모든 민주-개혁세력을 통합한다”는 목표로 뛰고 있다.

진보개혁모임의 수장격인 GT(김근태)는 민주화운동의 대부격으로 전대협 운동권 출신인 당내 486그룹과 친노개혁그룹 등을 두루 우군으로 두고 있다. GT와 손 대표는 ‘경기고-서울대’(KS) 동문이자 과거 민주화운동을 함께 해온 평생 동지로 알려져 있다. 당 안팎에서는 “김 고문이 손학규 대선 캠프의 싱크탱크 역할을 할 것”이란 얘기도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GT계로 알려진 민주당 모 의원은 “이미 대통합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손 대표로서는 GT의 복귀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진배없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시민사회단체 및 진보진영쪽과의 실무적인 통합 논의는 전대협 의장 출신으로 486그룹의 대표격인 이인영 최고위원이 맡고 있다. 이른바 손학규-김근태-이인영 ‘쓰리 톱’으로 야권대통합을 추진한다는 게 이들의 구상이다. 야권통합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인영 최고위원은 “야권통합이 이뤄지면 다음 총선에서 160석 이상을 석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연합당을 만들 경우 수도권 3분의 2와 영남 20석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160석 이상 석권할 수 있을 것으로 이 최고위원은 예상했다. 이는 지금 한나라당 의석수에 10석 정도 모자라는 규모. 한마디로 압승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야권이 양적인 팽창만 이룰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색깔과 정체성을 분명히 해 정책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 최고의원은 “4ㆍ27 재보선을 통해 돌아온 넥타이부대를 잡는 길은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이 힘을 합치는 것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이제는 지역정당에서 노선정당으로 가야 할 때이며, 민주당도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으로서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기적이고 일회적인 야권 연대가 아닌 안정적이고 거시적인 야권통합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민주당 원혜영 의원은 “국민의 기대를 받을 수 있는 정당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통합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역할을 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구민주계 반발 야권통합 ‘걸림돌’

하지만 야권대통합에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민주노동당 등 진보진영이 아직 통합에 소극적이고, 야권 통합으로 인해 공천권 박탈을 우려하는 호남 지역 민주당 의원들도 반대 의사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30% 지분 보장이라는 통합카드가 실제로 적용될 경우 자리를 내줘야 하는 것은 호남과 일부 수도권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야권통합론과는 한발 짝 거리를 두고 있는 호남지역 의원들은 대놓고 당의 노선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자칫 열린우리당 시절의 전철을 되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이들에게는 지난 2003년 당시 유시민 대표가 이끄는 개혁당과 시민단체, 민주계 일부가 통합해 만든 ‘열린우리당’으로 인해, 기존 ‘민주당’은 지지율이 4%까지 추락하는 미니지역정당으로 전락한 뼈아픈 기억이 있다. 

특히 이번 4.27재보선에서 민주당이 민노당에게 전남 순천 국회의원 선거를 양보(무공천)한데 대해, 이 지역 예비후보자들은 물론 구 민주계를 중심으로 하는 당내 중도그룹이 크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DJ정부에서 과기부 장관을 지낸 김영환 의원은 “민주당이 다시 집권하려면 중도세력을 끌어안아야 하는데 현재의 좌편향으론 불가능하다”며 문제 제기를 공론화하고 나섰다. 김해을 후보단일화 경선에서 참여당에게 후보 자리를 내준 것과 관련해서도 말들이 많다. 지난 6.2지방선거 때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유시민 대표에게 자리를 내줬던 과정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비판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지난해 경기도지사 경선때와 마찬가지로 참여당이 계속 몽니를 부리니까 민주당이 (김해에서) 양보를 한 것인데 매번 이렇게 당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당이 되짚어 봐야 한다”며 “야권연대의 원칙과 방법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할 때가 됐다”고 꼬집었다.

소제-민노, 되레 참여당에 손짓

한편 진보성향의 시민단체들은 ‘범개혁세력 통합론’을 들고 나오며 야권 전체를 압박하고 있다. 한나라당을 제외한 야권 전체가 기득권을 버리고 ‘제3지대’에 모여 대대적인 국민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자는 것이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통합론’의 요지다. 

대표적으로 지난 2002년 대선때 노사모 바람을 일으켰던 영화배우 문성근씨 등이 야권의 대권주자 단일화를 아예 시민운동으로 이슈화하겠다며 발벗고 나선 상태다. 이른바 ‘백만민란 프로젝트’(일명 국민의명령)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야권단일화를 촉구하는 시민 100만명의 서명을 목표로 거리홍보, 트위터구축, 강연회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정치권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에 시작한 이 운동에는 현재까지 10만여명이 후원금을 내는 회원으로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웬만한 정당의 진성당원(당비를 내는 당원) 수에 육박하는 규모로, 이 움직임이 미칠 파장을 두고 정치권도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또 진보대통합을 화두로 최근 구성된 ‘8자연석회의’는 민노당, 진보신당, 사회당, 민주노총, 진보정치세력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 모임,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 전국농민회총연맹, 빈민단체 등 진보그룹을 대표하는 정당 및 단체들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진보진영의 통합정당 건설을 목표로 머리를 맞대고 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최근 모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진보정치 대통합을 위한 대표자 연석회의에서 9월 말까지는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겠다고 합의 한 바가 있다”며 “일부 논의가 늦춰지는 점은 있을 수 있으나 완료 시점은 더 이상 늦출 수도 없고, 늦춰서는 내년 총선 준비가 대단히 어려워지기 때문에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 대표는 특히 참여당의 진보테이블 참여에 관해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이 대표는 “진보정치 대통합은 진보정당들이 중심이지만 좀 더 폭넓게 갈 수도 있다. 공식 논의는 하지 않고 있지만 국민참여당이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통보한 바가 있어 이것 역시 다 열어놓고 논의해야 될 것”이라고 열린 태도를 보였다.

4.27재보선 전까지만 해도 이 대표는 “진보신당과는 같은 길을 가다가 잠시 판단이 달라 갈라서기는 했으나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므로 당장 합치면 문제없이 간다. 그러나 국민참여당과는 여러 이야기를 해봐야 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대표가 진보테이블에 참여당 초대를 운운한 것은 재·보선 이후 민주당 중심으로 야권대통합의 중심이 급격히 이동하고 있는데 대한 경계 의미로 풀이하고 있다. 

진보정당들 합당 논의 활발

진보정당들 간의 합당 논의도 활발한 편이다. 최근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이미 각자 협상대표단을 구성해 수차례 회동을 가졌다. 민노당은 강기갑 전 대표가, 진보신당은 노회찬 전 대표가 각각 협상대표로 나섰으며 이들은 최근 회동에서 구체적인 지분논의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노회찬 전 대표는 지난달 국회에서 “새로운 진보정당은 기존의 진보정당들만이 아니라 진보적 시민사회, 개별 인사와 자발적 국민들의 참여 속에 건설될 것”이라고 밝혔다.

진보진영 내에서는 17대 국회에서 같은 당 소속으로 의정 활동을 한 두 사람이 협상대표를 맡아 통합 논의가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갈라서게 된 원인이었던 ‘종북(從北)주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가 여전히 숨은 변수다.  어쨌든 이해관계는 서로 다르지만 야권이 ‘대통합’이라는 큰 그림을 함께 그리는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다. 바로 ‘반(反)박근혜(또는 反MB)’ 공동전선을 형성해 정권교체를 이루자는 것. 어떤 방식으로든 대통합을 이뤄 여권의 유력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1:1대결구도를 만들어 내야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여기에 맞서는 여권의 기류도 심상찮다. 친이계(MB)와 친박계(박근혜)가 잠시 휴전을 선언하고 보수대연합 구상에 들어갔으며, 청와대는 대대적인 물갈이(인적 쇄신)를 통해 분위기를 바꾸려 하고 있다. 야권이 진보대연합을 성사시켜 거대 여권에 맞설 수 있을지에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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