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커피는 싫어

커피숍에 들어서자마자 난 창가를 찾아 앉는다. 역시 제대로 자리를 잘 잡았다는 생각이다. 생각대로 각설이마당이 잘 보인다. 아니, 바로 그 남자, 오이도남자의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순간 나도 모르게 마른침이 삼켜진다. ‘아아, 저 남자가 날 이곳으로 부른 것인가. 저 깡마르고 볼품없는 남자가. 왜, 무엇 때문에...’

강렬하게 솟구쳐 오르다가도 어느 순간 소르르 잠겨 한기마저 느껴졌던 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감싸 안을 듯 넓은 품이 느껴졌던 바다. 그런 것인지.

푸른 브라와 미니스커트 한 장으로도 충분히 자신감 있어 보이는 저 남자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인지.

난 그대로 춤추는 남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커피잔을 집어 든다. 남자가 그런 내 시선을 느낀 듯 턱을 들어 겨울하늘을 마주한다. 아, 저 눈빛, 곤혹스러운 저 빛. 말 못할 사연이라도 있는 것인가. 그럼에도 트로트 리듬에 정확하게 몸을 타는 저 동작. 그 하나하나가 너무 강렬해 시선을 뗄 수가 없다.

하지만 난 애써 그에게서 시선을 돌린 채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는다. 따뜻하다.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기라도 한 듯 따뜻하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따뜻함인가. 그대로 난 잠시 눈을 감는다.

그 사이에 오이도남자는 노래를 마치고 저만큼 각설이 마당을 비껴선 봉고차에 기대고 서있다. 마치 권투선수의 트레이닝복과 같은 두툼한 코트를 파란브라 위에 걸쳐 입고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모습은 또 다른 사람을 보는 듯 신선하다. 그런 그에게서 문득 어릴 적 봤던 그림형제의 동화가 생각이 난다. 마술에 걸린 왕자가 공주의 입맞춤으로 개구리에서 왕자로 변신한다는 동화 말이다. 왜 하필 그 동화가 생각이 나는 것인지. 그 멋쩍은 생각을 하다말고 다시 커피잔을 집어 든다.

차갑다. 차가워진 컵 안에서 울컥 물의 비릿함이 올라온다. 비위가 상한다. 아무리 고소한 향을 뿜어내는 커피라도 이렇게 식어버린 커피에서는 역겨움이 올라온다.

그래서 평소에 난 식어버린 커피는 마시지 않는다. 버리기 아까워 역겨움을 참고 마실 만큼 난 그렇게 순수하지 않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남편과의 관계. 그 어떤 애정도 증오마저도 상쇄되어 버린 관계. 아! 그런데 난 지금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싶어진다. 입술이 델 것 같은 진한 향이 가득한 커피를. 문을 밀고 나와 망설일 것도 없이 길을 건너 그에게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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