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발 총탄에 복부·팔다리 등 5발 총상…남한 피 1만2000CC 수혈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13일 오후3시15분경, 북한군 1명이 목숨을 걸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위치한 ‘자유의 집’을 향해 질주했다. 북한군에서는 추격조 4명이 따라붙어 ‘조준사격’했지만 그는 5발의 총탄이 몸에 박히면서도 끝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남한으로 귀순했다. 한 편의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긴박한 순간이었다.

(사진=유엔사 제공)

유엔사, 귀순과정 CCTV 공개

유엔사는 2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북한군의 귀순 당시 6분57초 분량의 폐쇄회로(CCTV) 영상을 공개했다.

공개된 영상은 13일 오후 3시11시분부터 시작된다. 귀순병은 군용 짚차(Jeep)를 몰고 JSA로 향하는 유일한 길목인 ‘72시간 다리’로 향했다. 72시간 다리는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이후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폐쇄되자 북한이 72시간 만에 건설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북한 감시망을 의식한 듯 다리 앞 건물에서 잠시 멈칫한 차량은 다시 속도를 높여 이동했다. 이에 일부 북한군 병사가 놀라 뛰어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차량은 멈추지 않고 판문점 서쪽 72시간 다리를 건너 김일성의 친필 서명이 새겨진 ‘친필비’를 지났다. 이후 영상에서 차량은 큰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데, 이곳에서 차량이 배수로에 빠진 것으로 추정된다.

3시14분, 인근 초소에서는 북한군 2명이 뛰어오고 판문각 계단에서도 북한군 2명이 합류해 귀순병을 추격했다. 소초에서 나온 북한군은 AK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나머지 북한군도 권총을 들고 있었다.

3시15분, 귀순병은 배수로에 빠진 차량을 빼내려 몇차례 시도하지만 꼼짝하지 않자 포기하고 남측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북한군 추격조 4명은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중 AK 소총을 든 한명은 넘어지다시피 엎드려 쏴 자세를 잡고 조준사격했고, AK 소총을 든 다른 한명은 앉아 쏴 자세로 사격했다. 권총을 든 2명은 서서 사격했다. 귀순병이 끝내 MDL을 넘자 북한군 1명은 총을 든 채 MDL 남쪽으로 수m나 내려왔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MDL 북쪽으로 돌아갔다.

3시17분, 무장한 북한군 14명이 친필비 앞에 집결했다. 한동안 대기하고 있던 무장 병력은 도로를 따라 천천히 북쪽으로 올라갔다. 차량 1대가 달려와 이들이 있는 곳에 멈추는 모습도 보였다.

3시43분, 귀순병은 자유의집 서쪽에 위치한 벽 아래에 쓰러져 있었다. 우리 군은 3시31분에 귀순병을 최초 발견했다. TOD(열상감시장비) 영상에는 우리 군 3명이 3시55분 경 귀순병에 포복으로 접근하는 모습이 잡혔다. 대대장은 엄호했고 부사관 2명은 귀순병이 쓰러진 곳까지 기어가 그를 끌어냈다. 귀순병은 오후 4시 23분 유엔사 헬기로 후송돼 4시 45분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에 도착했다.

유엔사 대변인 채드 캐럴 대령은 이날 발표에서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너머로 총격을 가했다는 것과 북한군 병사가 잠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는 두 차례의 유엔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중요한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유엔사는 JSA 내 연락채널을 통해 위반 사실을 북한군에 통보하고 정전협정 위반 방지를 위한 대책 회의를 요청했다고 전했다.

 

‘死線’ 넘어온 귀순병

40여발의 총격을 뚫고 사선을 넘어온 귀순병은 25세의 오모씨다. 그는 복부와 우측 골반, 양팔, 다리 등에서 5곳 이상의 총탄이 박힌 ‘중상’으로 아주대병원으로 옮겨져 5시간에 걸친 1차 수술을 받았다. 의료진이 진찰한 북한 병사의 ISS(Injury Severity Score·중증도지수)는 22점. ISS가 15점을 넘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중증외상환자로 분류한다.

수술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오씨는 총상으로 파열된 소장 내부가 다량의 분변과 기생충으로 오염돼 심각한 상황이었다. 수술을 집도한 이국종 교수는 15일 1차 브리핑에서 “2차 수술에서 오염 부위를 제거하기 위해 복강 세척 이후 복벽을 봉합하는 데 성공했고, 복벽에 남아있던 1발의 총알을 제거한 뒤 수술을 종료했다”며 “많은 합병증이 예상되어 고도의 주의가 필요한 상황으로 대량 출혈에 의한 쇼크 상태에 빠졌던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외상 환자에 비해 예후가 불량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오씨는 수술 중 발견된 회충과 개회충 외에도 비활동성 결핵과 B형간염에 감염돼있었다. 팔에 입은 총상으로 혈류 장애로 절단 직전까지 갔다. 사경을 헤매던 오씨는 귀순 6일째인 18일 자가호흡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하고 20일 의식을 되찾았다.

다발성 총상 부위는 오염물과 괴사 조직을 제거한 이후 지연성 봉합을 했지만 후유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지속적인 관찰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다. 의료진은 오씨가 물을 마실 정도로 회복되자 가장 먼저 구충제를 먹이고 B형간염과 대량 수혈에 따른 간기능 악화에 대해 약물 치료를 병행했다.

오씨의 치료를 위해 수혈한 대한민국 국민의 피는 1만2000CC. 22일 진행한 2차 브리핑에서 이 교수는 “대한민국 국민이 수혈한 피가 몸속에서 세 번 돌아 살고 있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오씨는 자신에게 남한 사람들의 피가 수혈됐다는 의료진의 설명에 “고맙습니다”고 말했다고 알려졌다.

이 교수는 “브리핑을 하고 있는 현재 환자의 의식은 명료한 상태이고, 치료에는 매우 협조적”이라며 “두 차례의 큰 수술과 귀순과정, 총격으로 인한 피격상황, 중환자실에서의 치료 등에 의한 심리적 스트레스가 심하다. 이로 인해 대화에 매우 소극적이고 우울감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오씨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장폐색’이다. 이 교수는 “장폐색은 영구적으로 남을 수 있다. 원래는 장이 미끄러워서 음식이 얹혀도 해결돼는데 장이 들러붙으면 큰 음식물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 외에 총을 맞은 것은 내 경험에 비춰봤을 때 잘 극복하리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왼팔을 절단할 뻔했다. 시커멓게 죽어있었다. 기껏 살았는데 팔다리가 없으면 얼마나 상심하겠나. 일단 붙여봤다. 신경이 워낙 많이 다쳐서 양쪽 팔은 조심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오씨가 의식을 회복하고 가장 먼저 접한 것은 ‘남한 가요’다. 이 교수는 “통상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깨울 때, 기관 삽관을 제거하고 나면 정신을 못 차린다. 그 때 음악을 튼다”며 “세 곡을 틀어줬다. 소녀시대 Gee를 오리지널과 락버전, 네메시스 인디밴드가 부른 버전이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걸그룹을 매우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오씨는 한국 가요 외에도 영화 채널 등 TV를 시청하고 있다. 그는 제이슨 스타뎀 주연의 ‘트랜스포터’를 보며 “나도 (북한에서) 운전을 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운전 잘 한다면서 왜 또랑에 빠졌냐고 물었는데 (의미를) 못 알아들었다. 그 얘기하고 나서 바로 사과했다. 옛날 기억 떠올리게 할 수 있는 질문이니까”라고 말했다. 오씨는 이 외에도 ‘브루스 올마이티’와 CSI 같은 미국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씨는 현재 의료진과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호전됐다. 이 교수는 “걸그룹 노래가 좋다고 하길래 ‘나는 남자 노래가 좋은데 넌 왜 여자 노래가 좋니’라고 농담했다. 야구 얘기도 하고 KT WIZ 응원하라고 푸쉬했다. 야구가 뭔지는 알더라. 같이 캐치볼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 교수는 환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면 듣는 식으로 오씨와 소통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씨는 이 교수에 “총에 맞아 진짜 아팠다. 지금은 덜 아프다”고 호소하는 등 의사 표현을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상태다. 이 교수에 따르면, 오씨는 18살에 군에 입대해 6년간 북한에서 복무했다. 이씨는 “(오씨가)‘군에 그만 있고 싶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30분내 치료가 이뤄지는 나라”

오씨가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된 건 국내 외상외가 최고 전문가인 ‘아덴만의 영웅’ 이국종 교수의 피땀어린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오씨 치료 과정에서 한국 중증외상센터의 열악한 현실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2차 브리핑에서 “여러분은 그 환자분(귀순병)한테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지만, 제가 어제 밤에 출동해서 데리고 와 수술한 환자는 생명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센터에 그런 환자만 150명이 넘는다”면서 “저희 병원에는 외과계 전공의가 전혀 없다. 중증 외상센터는, 분명히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대한민국에서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북한 군인이 한국에서 살면서 기대하는 삶의 모습은 자기가 어디서든지 일하다가 위험한 곳에서 다쳤을 때 30분 내로 병원에 도착해 중증외상센터에서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는 나라에서 살려고 넘어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씨의 의료정보 공개를 둘러싸고 ‘인권침해’ 논란이 인 것에 대해서도 ‘작심발언’ 했다. 이 교수는 “며칠간 벌어진 일 때문에 병원장이 격노했다. 외부에서 굉장히 나쁜 의견이 나왔을 때 신생 외과대는 견딜힘이 없다”며 “의사 전체 영역에서 외과 의사들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전문화된 일에 특화된 사람이다. 말이 말을 낳고, 낳은 말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말의 잔치가 되어버리는 복잡한 상황을 헤쳐나갈 힘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의료진이 오씨의 상태를 공개한 것을 두고 “(귀순병이)사경을 헤매는 동안 남쪽에서 치료받는 동안 몸 안의 기생충과 내장의 분변, 위장의 옥수수까지 다 공개되어 또 인격의 테러를 당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김 의원은 이 교수의 호소에 “인격 테러의 주어는 이 교수가 아닌데, 제가 이야기 한 것으로 언론이 이야기하면서 의도적인 싸움 붙이기로 몰고 갔다”며 “환자 치료에 전념해야 할 의사가 혹시라도 저로 인한 공방에서 큰마음의 부담을 졌다면 이에 대해서는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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