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댁

“암도 없는가? 안에 계신가요?”

뜻밖에도 임실댁이었다. 붉은색 고무통을 머리에 이고 문간에서 빼꼼히 들여다보고 있던 임실댁이 황씨와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으며 마당으로 들어섰던 것이다.

“집에 계셨고만요.”

“아니, 임실댁 아니요! 임실댁이 여긴 워쩐 일이다요?”

“그냥 지나다가 들려봤어라, 성님 계실 때도 들려 쉬어가곤 혔는디, 성님 생각도 나고 혀서.....”

그러고 보니 아내가 떠난 후 간만에 보는 임실댁이었다. 전보다 허리가 좀 굽어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강단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마당으로 들어선 임실댁은 머리에 인 고모통을 토방에 내려놓고는 아내가 있던 그때처럼 스스럼없이 마루 끝으로 올라앉았다.

황씨 역시도 그런 그녀를 보며 자신의 아내가 그랬던 것처럼 앉았던 자리에서 몸을 뒤로 물러 올라앉으라는 무언의 표시를 했다. 그렇지만 뭔가 어색함은 감추어지지 않아 애써 헛기침을 했다.

눈은 임실댁이 토방에 내려놓는 고무통 안을 살피면서. 칡잎에 덮인 손바닥 크기의 참붕어들이 고무통 안에 반 통 남직이나 들어있었던 것이다.

“물괴기 받아 갖고 가는 모양이요?”

‘예, 어젯밤 비가 와서 그런지 이번 참은 제법 고개가 묵직하게 실허네요.“

“아하! 그러고 본 게 오늘이 수요일이고만요, 아따! 고놈들 참말로 실허게 생겼다.”

황씨는 몸을 굽혀 칡잎을 들추고 맨 위의 놈의 몸통을 손가락으로 툭 튕겨내는 시늉을 해 보였다. 여전히 뭔가 어색했던 것이다. 그 바람에 죽은 듯 늘어져 있던 붕어들이 화들짝 몸을 뒤틀며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아따, 막 잡았는가, 싱싱하네! 고놈들.”

튕기는 물방울을 피해 급히 뒤로 물러선 황씨의 얼굴에 금세 어색함이 사라지고 간만에 화색이 도는 빛이었다.

“큰놈으로다가 두어 마리 내리 놀까요?”

황씨의 그런 모습을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임실댁이 마루에서 급히 내려 은근한 눈빛으로 물었다.

“아, 아뇨! 뭐 할라고 그럴 것 없소. 물괴기도 옛날 말이지, 시방은 당최 옛날 맛이 나지 않은 게 먹거자픈 생각도 없소.”

황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거사 물괴기만 그러가니요. 요새는 배가 불러서 그런지 입이 변해서 그런지, 그리도 이놈 하나 지져 잡숴 보쇼.”

황씨가 고개를 저으며 물러나는데도 임실댁은 그런 표정을 읽지 못한 양 토방 위에 나뒹구는 소쿠리를 잡아끌었다. 그리고 대뜸 고무통 속을 헤쳐 꼬리를 빳빳하게 쳐든 실한 참붕어들을 골라 담아냈다.

“안 사요, 아따 안 산단 말이요. 그걸 누가 해먹을 줄 안다고.....”

그제야 황씨는 급하게 손사레까지 치며 임실댁이 들고 있는 소쿠리를 잡아챘다. 그리고 잽싸게 소쿠리를 들어 임실댁이 건져 낸 물고기들을 다시 통 안으로 쏟아 넣었다.

물고기를 산다 해도 자신이 해 먹을 줄 모르니 괜한 돈을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황씨의 태도에 임실댁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아따, 물괴기 몇 마리 드리고 갈라고 일부러 들렸어라, 그동안 성님이 저 헌티 헌 걸 생각허면 그깟 물괴기 몇 마리 갖고는 어림도 없겄지만 그리고 제 마음이 그렁게 못 이기는 척 냅두시면 안 되겠어라?"

황씨가 자신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에 몹시 마음이 상한 듯 임실댁은 목소리까지 높여 그의 손을 툭 밀쳐냈다. 그 바람에 황씨는 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 틈을 놓칠세라 임실댁이 다시 활처럼 휘며 소쿠리 밖으로 튕겨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임실댁은 그것을 그대로 두고 부엌으로 향했다. 주춤 물러서 어정쩡하게 서 있던 황씨가 황급히 그녀를 따랐지만 이내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긁적였다.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은 홀아비부엌살림이었던 것이다. 그보다 전혀 생각지 못한 임실댁의 행동이었던 것이다. ‘하이고, 괜찮은디.’ 하지만 임실댁은 절대 괜찮지 않은 모양이었다. 부엌에서 나온 그녀는 황씨에게 눈도 두지 않은 채 곧장 익숙한 손놀림으로 물고기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허 참!”

황씨는 당혹감을 헛기침 한번으로 감추고는 못 이기는 척 마루로 올라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오지랖도 넓은 여편네, 길게 내뿜은 담배 연기와 함께 아내를 향한 긴 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살아생전 아내는 임실댁을 보면 늘 불쌍한 마음이 들어간다고 했었다. 어린 나이에 시집 와 병으로 남편을 일찍 사별하고 다섯이나 되는 자식을 혼자서 키우는 여자라고 했었다.

또 사시사철 물마를 틈이 없는 임실댁의 손은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 같다고도 했었다. 그런 측은지심 때문이었는지 아내는 임실댁이 재를 넘어와 옥정호의 배꾼들에게 물고기를 받아가는 수요일이면 일부러 길목을 지키고 서있다 점심을 챙겨 먹이기도 하고 애들의 작아진 옷을 챙겼다가 들려주기도 했었다.

아마도 임실댁이 아내와의 그런 일들이 생각이 났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가 없는 자리에 황씨는 영 불편하기만 했다. 마치 생각지 못한 남의 물건이 자신의 장 꾸러미 속에 슬며시 딸려 들어온 것처럼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었다. 그동안 임실댁을 한두 해 본 것도 아니니 새삼스럽게 내외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내가 있을 때의 일이었던 모양이었다.

아내가 없는 집에서의 임실댁은 분명 낯선 어색함이 있었다. 더구나 임실댁의 저런 모습을 누가 오다가다 넘겨보기라도 한다면 그런 우세는 없을 터였다. 좌불안석이었다. 빨리 임실댁을 밖으로 내보는 게 상책이었다.

“됐소, 인자 내가 헐틴 게 냅두고 가보쇼.”

쓸쓸 밀어치는 칼등에 고기비늘이 말끔하게 벗겨지자 황씨는 황급히 마당으로 내려서 그녀의 손에서 물고기 냄비를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빨간 고무통을 그녀 옆으로 휙 떠다 밀었다. 빨리 나가달라는 뜻이었다. 헌데, 임실댁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음마, 가만히 계시쇼, 물괴기는 잘 못 지지면 비린내가 나서 못 먹는단 말이요. 언제 이런 일을 혀 봤다고 .....저기 저 돌팍 위에 있는 붕어내장들이나 담어다 어따 버리고 오쇼.”

임실댁은 오히려 냄비를 빼앗는 황씨를 밀쳐내고는 급히 부엌으로 향했다. 턱으로는 수돗가에 흩어진 붕어내장들을 가리키면서. 황씨는 그런 임실댁의 기세에 눌려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그녀가 시키는 대로 수돗가로 걸음을 옮겼다. 투덜대는 볼멘소리를 내면서.

“흐미, 저걸 어디다 갔다 버리라고.....”

“젠장, 그걸 내가 아요. 냄시 안 나게 어디 멀리로 갔다 버리면 되는 거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아주 작은 소리였는데 귀신 같이 알아들은 임실댁이 부엌으로 들어가다말고 쏘아붙이자 황씨는 그만 자신도 모르고 피식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톡 쏘아대는 임실댁의 말본새가 영락없는 아내의 그것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황씨에게 변화가 일기 시작한 건 그날 이후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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