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북한은 29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지난 6차 핵실험에서 핵탄두 경량화에 사실상 성공한 것을 고려하면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이번 미사일 도발은 ‘레드라인(red line·금지선)’을 제대로 밟은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화성-15형 미사일 발사 친필 명령서. (사진= 조선중앙TV 캡쳐)

북한은 이날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공식 정부성명을 발표하고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포했다. 성명에서 밝힌 탄도 미사일 발사 시각은 이날 새벽 3시18분(평양시간 2시28분). 정부 발표인 3시17분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성명에 따르면 화성-15형은 평안남도 평성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돼 정점고도 4475㎞, 비행거리 950㎞로 총 53분간 비행했다. 북한은 성명에서 “화성-15형 무기체계는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초대형 중량급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며 “지난 7월에 시험발사한 화성-14형보다 전술·기술적 제원과 기술적 특성이 훨씬 우월하며, 우리가 목표한 미사일 무기체계의 완결 단계에 도달한 가장 위력적인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사일은) 조선 동해 공해상의 설정된 목표수역에 정확히 탄착됐다. 시험발사는 최대고각 발사체제로 진행되었으며 주변국가들의 안전에 그 어떤 부정적 영향도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성명은 “김정은 동지는 새 형의 대륙간탄도로켓 '화성-15'형의 성공적 발사를 지켜보시면서 오늘 비로소 국가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켓 강국 위업이 실현되였다고 긍지 높이 선포했다”고 전했다.

 

‘화성-15’호 성능은?

북한이 밝힌 화성-15호의 고도는 4475㎞, 비행거리 950㎞다. 우리나라 합동참모본부 역시 이와 비슷하게 고도 약 4500㎞, 비행거리 약 960㎞라고 밝혔다.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 중 고도가 4000km를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전 발사보다 더 높은 고도에 올랐다.

대륙간 탄도미사일급 '화성-14'형 (사진=조선중앙TV 캡쳐)

통상 탄도미사일이 고각 발사되면 실제 사정거리는 최고 고도의 3배 이상이다. 정상각 발사 시 추정 사거리는 약 1만3000㎞로 미국 전역이 사정권에 넣는 것은 물론, 미국과 러시아가 보유한 ICBM 수준과 맞먹는다.

전문가들은 이번 화성-15형이 지난 7월 4일과 28일 각각 발사한 '화성-14형'의 업그레이드 버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화성-14형의 엔진을 개량, 추력을 키워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도록 개발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장영근 한국항공대 교수는 “화성-15형은 화성-14형의 연장선 상으로 보인다”며 “1단은 화성-14형에 사용된 백두산 엔진을 이용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2단 엔진은 신형으로 교체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화성-15호가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아직 검증하지 않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대기권을 벗어나 높은 고도로 올라간 ICBM은 다시 대기권으로 재진입할 때 탄두에 6~7천도의 고열이 발생한다. 이때 탄두 손상을 최소화해 목표 지점에 탄착하도록 하는 것이 미사일 기술의 핵심이다. 장영근 교수는 “탄두의 정밀 유도 제어와 화학적 삭마 등 재진입 기술을 검증하려면 정상 각도로 미사일을 발사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고각 발사한 걸 보면 아직 북한이 재진입체 기술을 시험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2단 엔진 연료가 ‘고체형’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장영근 교수는 “고체엔진 가능성도 열어놔야 한다. "2단 엔진은 크기가 적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고체형으로 단기간에 개발할 수 있다”고 했다.

 

핵탄두 경량화+ICBM=‘Red Line?’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8월17일 취임 100일을 맞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대북정책이 전환되는 ‘레드라인’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미 지난 9월3일 북한의 6차 핵실험에서 핵탄두 소형화·경량화가 사실상 증명되자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은 것으로 봤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에 의문을 표시하며 “아직도 가야할 길은 남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직 레드라인을 넘은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 것.

그러나 북한은 이번 화성-15형을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목표 로켓무기개발 완결 단계 도달한 가장 위력한 대륙간탄도로켓”이라고 선전했다. 사실상 문 대통령이 말한 ‘레드라인’을 넘은 표현이다.

상황의 심각성은 문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직접 주재한 NCS 회의에서 “대륙 간을 넘나드는 북한의 탄도 미사일이 완성된다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 있다”며 “북한이 상황을 오판하여 우리를 핵으로 위협하거나 미국이 선제타격을 염두에 두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미사일이 완성된다면’이라고 가정한 것도 ‘레드라인’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이례적으로 ‘선제타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미국의 움직임에 ‘군사옵션’이라는 표현을 써 왔다.

도발 당일 이뤄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도 긴장감을 엿볼 수 있다. 그동안 북한 도발에 한미 정상의 전화통화는 수일 내 이뤄졌지만 이번에는 5시간만에 이뤄졌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북한의 미사일이 이전보다 성능이 개량된 것으로 평가하고 빠른 시일 내 함께 후속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75일 만에 도발한 것은 새로운 국면으로 가는 게 아닌가라는 상황변화이기 때문에 양정상이 빨리 통화하면서 이에 긴밀하게 대응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국의 선제타격을 우려하는 발언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정부의 ‘압박과 대화’라는 대북 기조가 바뀔까? 답은 ‘아직은’이다. 문 대통령은 NCS회의에서 “북한은 스스로를 고립과 몰락으로 이끄는 무모한 선택을 즉각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며 여전히 대화 가능성을 열어놨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 역시 제재와 압박을 기본으로 한 기존의 대북 접근법을 바꾸지 않을 거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北 미사일 발사 의도는...미국 타격과시·중국 불만 표출

국정원은 북한의 이번 미사일 도발 의도를 “미국 타격 능력을 과시하고 중국의 대북 제재 동참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의도”로 분석했다.

이날 정보위원회 소속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보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서훈 국정원장에게 북한 미사일 발사동향 현안보고를 받은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의원에 따르면, 국정원은 이번 미사일이 기존 화성 14형보다 최대 고도와 속도가 높다는 점에서 개량된 ICBM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3차례 발사한 ICBM 중 가장 진전된 미사일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도발이 △미국 타격 능력 과시 △중국 대북제재 불만 표시 의도 외에도 내부 체제 결속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는 게 국정원의 분석이다.

한편, 국정원은 북한 미사일 발사 징후를 파악했고 전략적으로 예견된 도발이었다고 보고했다. 김 의원은 "(국정원은) 전략적으로 예견된 도발이었다고 얘기한다"며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 상태에서 김정은이 (대응) 발언을 했을 때 100% 도발이 예견됐다"고 전했다. 아울러 "(발사) 징후도 파악했다"며 "(도발을) 2분 만에 대통령에게 보고했을 정도다. 즉시 보고했을 정도로 징후는 이미 포착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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