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지난달 15일 경북 포항을 강타한 규모 5.4의 지진으로 내진설계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경주 지진 일 년 만에 발생한 ‘역대급’ 지진에 더 이상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특히 많은 우려가 집중되는 것은 ‘필로티(pilotis) 구조’다. 필로티 구조는 주차공간 확보 등을 이유로 1층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올리는 방식의 건축물로, 특히 지진에 취약한 건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필로티 구조라도 내진설계와 제대로 된 시공이 이뤄졌다면 안전하다는 것이 건축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렇다면 ‘안전한 필로티’ 건축물이 있을까? <뉴스포스트>는 지난달 28일 내진설계전문가인 정광량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회장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 회장은 “내진 설계가 제대로 돼 있다는 전제조건 하에서 제대로 된 시공을 했다면, 필로티 구조라고 해도 지진에 문제가 없어야지 당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광량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회장. (사진=뉴스포스트)

파손된 필로티 건물의 공통점은

정 회장에 따르면, 필로티 건물의 파손은 구조상의 문제가 아니다.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포항 장성동·양덕동은 필로티 빌라가 밀집된 곳인데, 모든 건축물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 정 회장은 “전파된 필로티 건물 바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똑같은 필로티 건물이 있지만 그곳은 문제가 없었다. 이 지역은 대부분이 필로티 건물인데 정작 문제가 생긴 곳은 50채 중 1~2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전파, 반파, 경미한 파손 등 문제가 불거진 필로티 건축물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내진 설계와 시공, 감리·감독 등 전반적인 건축 과정에서 한 과정에서라도 내진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면 피해가 크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가장 문제가 된 점은 ‘불량 시공’이었다. 특히 필로티 구조의 기둥에 들어가는 철근에서 문제점이 드러났다. 필로티 구조 기둥에는 세로로 들어가는 ‘주철근’과 가로로 주철근을 묶어주는 ‘수평근(후프·Hoop)’이 있는데, 지진 충격을 감안하면 수평근은 10~15cm 간격으로 촘촘히 감아야 한다. 정 회장은 “전파된 한 필로티 빌라 현장에서는 이 수평근이 30~32cm 간격으로 감겨 있었다. 도면 상으로는 20~25cm 간격이다. 도면대로도 안 했고, 수평근도 빼먹은 것”이라고 말했다.

드러난 철근에서 수평근(붉은 원 안)은 단 3개만 보이도록 띄엄띄엄 시공되어 있다. (사진=뉴시스)

시공에서 ‘디테일’도 부실했다는 게 정 회장의 지적이다. 수평근을 주철근에 감을 때 철근이 터져나가지 않도록 억제하는 ‘늑근’은 철근 끝이 135도로 구부러진 훅(hook)을 써야하지만 실제로는 90도로 구부러진 훅이 사용됐다.

잘못된 내진설계도 문제다. 지진이 발생하면 건물 중심에 힘이 몰리고, 그 힘에 저항하는 부분이 코어다. 보통 건물의 계단실이나 엘리베이터 등이 코어 부분이다. 이번 포항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들은 코어가 한쪽 측면에 위치한 ‘편심코어’가 대부분이었다.

“편심코어 건물의 경우, 지진이 오면 코어가 버티면서 코어 반대편에 있는 기둥들이 틀어져버렸다. 중심코어의 경우 지진 힘을 받았을 때 흔들리는 정도가 덜하다. 하지만 편심코어는 한쪽에만 지진 힘이 쏠리면서 반대편 기둥이 틀어진다. 이럴 때 반대편에 벽을 넣어 힘의 균형을 맞추면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중심코어 건물이 모두 지진에 강하다는 것은 아니다. 정 회장은 “필로티 기둥이 모두 가로나 세로 한쪽 방향으로만 세워져있으면 그 반대방향으로 지진이 발생할 경우 파손될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픽=뉴스포스트)

내진보강 비용은?

그렇다면 내진 보강하는 비용은 얼마나 들까. 정 회장은 “건물 형태마다 다르고 건물을 어떻게 보강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답했다.

정 회장은 “필로티 구조 빌라의 경우, 건물의 기능적인 면을 무시하고 안전만 생각했을 경우 약 2~3천만원 이하로 내진 보강이 가능하다”며 “기둥이 파손된 경우는 추가 비용이 더 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 회장은 “처음부터 내진설계를 적용해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기본”이라고 덧붙였다. 건설 초기에 내진설계를 하면 500만원~1천만원 선에서 안전한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게 정 회장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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