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신현지 기자] ‘아는 피아니스트 이민정’이라는 별명으로 페이스북을 통해 팬들과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이민정이 ‘본지’와의 만남을 청해왔다.

피아니스트 이민정(사진=신현지 기자)

1월 2일 예술의전당 이민정 리사이트홀 독주회를 앞두고 꼭 할 말이 있다고 한다. 다름 아닌 지금까지 행해져 오는 공연 예술계의 통념을 깨뜨려 보이겠단다. 즉 이번 1월 2일 ‘이민정 독주회’에 초대권은 한 장도 뿌리지 않겠다는 대중 앞의 선언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좋아요. 제 음악이 좋아 찾아오는 유료관객과만 만나겠어요.” 앳된 외모와는 달리 이렇게 당찬 계획을 밝히는 그녀는 누구일까?

이민정, 그녀는 예술 영재의 요람인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한 재원이다. 또 미국 오벌린 콘서바토리에서 최고연주자 및 Special Student Diploma 과정과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graduate assistantship)박사학위를 취득한 해외파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학교의 강사채용 지원 자격 조건에 최근 3년 이내 독주회 3회 이상... 초대권 남발 이유 있어

물론 그렇다고 다를 건 없다. 14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이민정 귀국 독주회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의 354 관람석은 유료 관객 82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 초대권으로 채워졌다.

귀국독주회에 들어간 비용은 약 1천만원. 기획사를 통한 홀 대관과 홍보 관련에 들어간 부대비용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독주회는 한 번에 그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학교의 강사채용 지원 자격 조건에 최근 3년 이내 독주회 3회 이상이라는 단서가 있었으니. 뿐만 아니라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독주회만이 채용점수에 반영이 된다는 이해 어려운 조항까지 포함이었다.

이미 모교를 포함 여러 군데의 강사지원에 실패한 그녀로서는 이 같은 강사지원 요건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어디라도 일자리를 구해야만 할 처지였다.

그런데 그녀는 과감하게 강사 지원을 포기했다고 한다. 아니, 솔직히 그 많은 비용을 들여 자신의 음악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피아노 연주는 하고 싶지 않았단다.

“그렇잖아요. 제가 조성진이 아닌 이상 누가 제 음악을 알아 연주회 티켓을 구입하겠어요. 그런데 초대권을 남발한 그런 음악회를 또 하라고요. 왜요? 무엇 때문에? 물론 그런 고충은 저뿐만 아니에요.

대부분 다 그래요. 그래도 연주회를 해야 경력으로 인정이 되고 강사자리 하나라도 뚫고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그 많은 경비와 초대권을 뿌려서라도 연주회를 하는 거죠. 참으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어요.

지금껏 관행처럼 그래왔으니. 같은 음악과 동급생들도 교수님이나 음악계 윗분들의 음악회 표는 사주고 팔아주고는 하지만 친구의 음악회는 의례 초대권 들고 가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요.”

초대권은 No, 내 음악을 아는 유료관객과만 만나

예술의 전당이든 세종문화회관이든 공연장마다 연주회 홍보전단지가 수북한 모두가 대부분 초대권으로 채워진다며 씁쓰레 웃는 그녀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겨울하늘이 그녀의 표정만큼이나 어둡다.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태세다. 잠시 후 그녀는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러니 강사라도 채용이 되고 자리를 잡고 나면 그때부터는 연주회를 열지 않지요.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할 시간도 없고 또 여력도 없긴 하겠지만 이런 시스템에...

아무튼, 음악계 통념처럼 되어버린 이 시스템에서 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짧은 경험이었지만 서둘러 이건 내길이 아니라는 결론이죠. 당장 경제활동과 지위와 소속을 누리는 사회활동이 보장되지 않지만 나 홀로 피아니스트로 살기로 마음을 굳혔어요.

소위 엘리트 교육코스를 거쳐 오는 동안 늘 높은 곳만 올려다보니 패배의식과 또 주변의 희생과 뒷바라지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다시 그 같은 패배의식과 주변의 희생을 바랄 수는 없다는 것이에요.

지금껏 예술을 향유하는 혜택을 누렸으니 그것을 이제 많은 사람에게 돌려주자는 생각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제 연주회를 찾아주어야 돌려드리는데 제가 쇼팽콩쿨 입상자 조성진이 아닌 이상 그 역시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먼저 저를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나를 아는 사람이 백 명만 있다면...

‘아는 피아니스트 이민정’ 페이스북으로 소통...7천명

“페이스북을 이용하기로 했어요. 친근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아는 피아니스트 이민정’으로 매일매일 피아노 수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객으로 만들 수 있는 나름의 장치를 마련한 것이죠.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피아노 이야기만으로 들어주는 사람이 하나둘 모여 몇 천 명의 팔로워가 생겼어요. 호응은 때마다 늘었다 줄었다 하지만 현재 7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제 페이스북을 공유하고 있어요.

급여를 주는 곳은 없지만 현재 피아노가 제 직장이고 저 스스로 전업 피아니스트라 생각하면서 직장인 근무하듯 주당 최소 40시간 연습시간을 지키고 있어요. 휴일 없이 매일연습하고 있지요. 전 그것을 가장 중대한 원칙으로 삼고 있고요.”

페이스북을 통해 7천 명의 팬을 확보한 이민정이 다음 단계로 준비한 것은 2018년 1월 2일 ‘이민정 피아노리사이틀’ '기예, 손의 고백'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날의 연주에 그녀는 어느 연주회보다 기대가 크다고 한다.

2018년 1월 2일 ‘이민정 피아노리사이틀’ 과연 관객은 얼마나?

“초대권 전혀 없는 유료관객들만을 모시고 열리는 이민정 피아노리사이틀이에요. 그러니 관객이 얼마나 될지 저도 솔직히 긴장이 돼요. 단 한 분이라도 좋아요.

2018년, 새해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피아니스트 이민정과 함께하실 분들은 예술의 전당 리사이트홀을 꼭 찾아주세요. 2017년 ‘데뷔’, 귀국독주회 이후 새롭게 이어질 ‘기예’ 손의 고백 시리즈에 가장 사랑받는 베토벤 소나타 ‘비창’, 피아니스트의 숙명과도 같은 쇼팽의 에튀드, 또 브람스의 파가니니 변주곡까지 저의 모든 열정을 바쳐 에너지가 반짝이는 소리를 아낌없이 펼쳐내겠습니다." 

음악계에 통념을 깨고 새로운 물꼬를...

피아노 독주의 정수가 돋보이는 프로그램으로 유료관객들만을 만나겠다고 선언한 이민정 피아니스트는 이 기회에 음악계 동료들에게도 할 말이 있다고 한다.

“음악계' 라는 추상적인 그룹에 소속감과는 별개로 피아노와 함께 살아온 동료들에게 애정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저는 소수만이 해당하는 스타연주자가 아니더라도 피아니스트가 피아니스트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해주고 싶어요. 그래서 선례가 없는 그 과정을 개척자 정신으로 부딪혀가는 중이에요.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지 저도 모르겠어요. 허나 일단은 만 40세, 귀국 후 3년이라는 시간을 정해놓았고 이제 1년 3개월이 지나고 있어요. 3년 동안 대단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제가 오랜 꿈이던 '피아니스트' 로 살아가는 법을 파악하고 저 자신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이라는 생각이에요.

그리고 대단한 음악가가 되지 않더라도 피아노 하나로 지금껏 달려온 사람이 평생 피아니스트로 살 수 있는 사례가 많아지면 지금처럼 음대강사자리를 얻기 위해 턱없이 부족한 자리싸움을 하는 문제도 해결될 길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고요.

예술을 공부하고 예술가로 살기로 한 이상 학교교육을 마치고 이제야말로 진짜 나의 예술, 나의 길을 출발해야 할 시점에 인생을 다 산 사람처럼 저 자신을 함부로 결론 내서는 안 되잖아요.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다는 걸 알아요. 

그분들과 함께하고 싶어요. 지금까지의 음악계의 통념처럼 여겨왔던 그런 것들을 눈치를 보지 말고 또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음악만을 위해 사는 진정한 음악가로서 우리가 음악계에 새로운 물꼬를 터주는 일을 같이했으면 좋겠다는 거지요.”

연주회 기획자가 되는 것 어렵지 않아

지금껏 음악을 향유해온 만큼 그것을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이민정은 페이스북과 소통에 이어 이번 독주회에 직접 기획자가 되어 준비했다고 한다.

“처음 귀국 독주회는 뭘 모르니 기획사를 통해서 기획사가 이끄는 대로 따라 했는데 그러자니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엔 제가 직접 기획자가 되어 홀 대관부터 포스터며 홍보에 관한 일체를 준비했어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어요. 비용도 절반으로 줄었고요. 그러니 미리 겁먹을 건 없다는 생각이에요.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음악을 듣고 평가해 줄 관객이지 그 어떤 관행에 눈치 볼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한편 이민정은 유년시절 월간 음악 콩쿠르 1위, 한독 브람스 협회 음악 콩쿠르 1위, 서울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전국 청소년 음악 콩쿠르 1위를 비롯하여 다수의 콩쿠르에 입상 경력이 있으며 유학시절에는 Canada Pacific Piano Competition 파이널리스트, American Protege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1위, The Bradshaw & Buono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2위, Concert Artists Guild Competition 파이널리스트, MTNA OH State Competition에서 입상 등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또 서울음대 재학 중에는 수원시립교향악단과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에 이어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1번을 연주로 콘체르토 데뷔를 했고 시카고 신포니에타 정기연주회 솔리스트로 선정되어 시카고 심포니홀에서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1번을 연주한 실력파이기도 하다.

왜 클래식 음악계에만 굶어도 좋고 누가 몰라줘도 좋다는 생각을...

한편 음악을 하지 않았으면 작가나 연극배우가 되었을 거라는 그녀는 경제적인 해결도 못 하고 피아노만 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누군가에겐 제 삶이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왜 유독 클래식 음악계에만 작가나 화가, 연극배우들처럼 굶어도 좋고 누가 몰라줘도 좋으니 그 업을 계속해나가겠다는 사람이 없는지가 더 이상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데도 사람들이 연주회를 찾지 않고 연주자가 모조리 비용을 부담하며 유료관객 없는 명목뿐인 연주회를 해야 한다면 그녀 역시도 어느 시점에서 그만둘 수밖에 없겠지만 그렇다고 시도해보지 않는 것은 더더욱 안타까운 일이라는 말에 힘을 준다.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저조차도 무심코 세뇌되어있던 통념들을 깨뜨려가는 중이에요. 조금씩 한계가 넓혀지는 것이 희망적이라고 할 만하고요. 그러니 이번 이민정 피아노리사이틀을 꼭 지켜봐 주세요.”

이민정의 다음 고백은 ‘기예, 손의 고백'에서 계속

끝으로 그녀의 최종목표를 묻자 그녀는 피아노를 도구로 누군가의 마음에 울림을 주고 그 현장에서 되돌아오는 그 반응을 얻어 다시 표현하고... 관객이 반드시 있어야만 성립이 가능한 무대예술, 시간예술인 '연주' 를 통해서만 평생 살고 싶다며 다음과 같이 뜻을 밝힌다.

“저는 그 모든 과정을 '대화'라고 부르고 싶어요. 독백이나 공허한 외침으로 끝나지 않는...

칭찬과 박수 받으려 뽐내는 것 역시 아니고, 지금 나의 진솔함으로, 관객과 음악으로 대화 하고 싶다는 것이지요. 무엇보다도 클래식 연주자로서 저의 역할은 역사 속 작곡가와 관객을 이어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더 먼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한 사람인 베토벤, 쇼팽, 브람스 등을, 마치 주선자 같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잘 소개해주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바로 이 마음이 제가 고전음악과 위대한 음악가들의 예술혼을 내가 사는 동안에 이어가려는 마음과, 음악가가 아닌 관객에게도 최선을 다하는 방향으로의 태도가 고스란히 담긴 생각이에요. 물론 그러자면 속속들이 작곡가와 곡에 대한 연구가 철저히 선행되어야 하겠지만요. 그러니 앞으로 열심히 음악을 위해 살겠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약속드려요. 2018년 1월 2일 ‘이민정 피아노리사이틀’ 꼭 기억해주세요.”

‘아는 피아니스트 이민정’의 고백 "나는 피아니스트다" 의 못다 한 그녀의 이야기는 1월 2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트홀 ‘기예, 손의 고백'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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