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측근들에게 ‘킹’에 대한 도전 의사 전달

[뉴스포스트=김태혁 기자] 작년까지 이재오 특임 장관의 고민은 크게 두가지 요약 할 수 있다.
“박근혜로 대권을 잡을 수 있을까?”와 “박근혜가 정권을 잡으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문제였다.
아직도 자신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는 박근혜 전대표가 만약 대통령이 되면 ‘읍참마속’의 대상이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차라리 야당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정치적 탄압이라고 몰아붙일 수 있지만 같은 한나라당 내에서는 딱히 항거할 명분도 없이 ‘토사구팽’ 당할 확률이 99%에 가깝다.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던 이 장관은 올 초 입장을 내년 대선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최근 색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어 정가의 관심이 다시한번 이장관에게 쏠리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시절 4차례 옥살이

최근 이장관은 자신의 트위터에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엄혹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1974년 서울구치소에서 그해 유월 첫 일요일 아내에게 첫 편지를 썼다. 그때 참담했던 생각이 지금도 생생하다. 감방에서는 자기가 보는 하늘이 세상의 전부인 거 같았다”고 썼다. 이 장관 홈페이지에 나온 이력을 보면 그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에 반대했다가 1973년 10월부터 이듬해인 74년 8월까지 옥살이를 했다. 트위터 글은 당시 구치소에서 느낀 소회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박 전 대통령 시절 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4차례 옥살이를 했다.

이 장관은 지난 3일에도 트위터에 “1964년, 1965년에 일어났던 굴욕적인 한-일 회담 반대 학생운동으로 1965년 군이 대학을 점령하고 위수령을 내리고 드디어 저는 대학 제적과 함께 수배가 되었습니다. 제 인생의 갈림길이었습니다. 오늘은 1964년 6월3일 군이 계엄령을 내려서 학생운동을 탄압한 그날입니다. 47년 전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처럼 자꾸 박 전대통령을 걸고 넘어지는 것은 자신과 박전대표는 여러 가지 부분에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에대해 정치평론가 김해민씨 “이장관이 늘 본인의 마음에 담아뒀던 이야기지만 공개적으로 두 번이나 언급한 걸 보면 이 장관이 박 전 대표와의 차별화나 각세우기를 통해 본인의 정치를 하겠다는 뜻을 표시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김해민씨는 이번 발언은 “유신 세대가 적지 않은 MB 주변 참모들과 한나라당에 박정희 시절의 ‘역사’와 박 전 대표의 ‘출신’을 상기시키며 자신의 정치적 영역을 만들겠다는 의도가 함축되어 있다”고 밝혔다.

잘 알려져 있듯이 MB와 이 장관은 6·3 동지회 회원이다.
이들의 첫 인연은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 때로 거슬러 올라 간다. 당시 두 사람은 함께 시위를 주도했다.

MB는 이 일로 옥고를 치른 뒤 운동을 청산하고 현대건설에 들어가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반면 이 최고위원은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된 후 재야 투사의 길을 걸었다.

이들이 다시 의기투합한 것은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다. 이 장관이 MB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으면서 이들의 관계는 ‘운동권 동지’에서 ‘정치적 동지’로 한층 두터워졌다.

둘 사이에는 빠르게 가까워 질수 있는 내면에는 당내 비주류라는 동질 의식이 있다. 1995년 신한국당에 합류한 MB은 이회창 대표 체제에 반대하는 정치발전협의회 멤버로 활동하며 줄곧 당 중심부에 비판적이었다.

지난 2월부터 전국적으로 조직화 시작해

이 장관도 개혁적인 성향 때문에 비주류가 됐다.
이 둘은 힘을 합쳐 결국 MB는 대통령, 이장관은 MB의 오른팔 역할인 특임장관을 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쪽은 이같은 이장관의 발언에 대해 ‘불쾌하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친박 초선의원은 “반독재와 독재의 구도를 만들어 나름의 대선 후보로 나서려고 명분을 축적하는 모양”이라며 “MB와 박 전 대표의 회동 뒤 이 장관이 고립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이 장관이 자제력을 잃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한나라당 친이계 의원들은 “정치인 이재오의 최대 목표는 ‘킹’이고, 최소 목표는 ‘킹메이커’였는데, 요즘은 킹 쪽으로 기울고 있다. 당권보다는 총선 이후 펼쳐질 대권 구도를 염두에 두고 정치를 하는거 같다”고 분석했다.

친이계가 이처럼 이 장관의 잠재력을 크게 보는 것은 그가 박근혜 전 대표에 맞설 만한 조직력을 보유한 유일한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리멸렬했던 범친이계 사조직이 이 장관을 중심으로 모였지고 있다.
최근 이 장관은 전북평상포럼, 강원평상포럼 창립총회에 잇따라 참석했다. ‘평상’은 “평상에서 문턱 없이 대화하자.”는 이 장관의 평소 발언에서 유래됐다. 지난 2월부터 전국적으로 조직화되기 시작해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이 장관의 한 측근은 “평상포럼이 친이 성향의 조직인 것은 확실하지만 오직 이재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이 장관과 뜻이 비슷한 이들이 모인 조직인 만큼 향후에는 이 장관을 포함한 친이계 대선 후보들이 이 조직 위에 올라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그는 지난 3월부터 5월 초까지 전국의 민주평통 지부를 모두 돌며 특강을 했다. 민주평통은 국내외 자문위원만 1만 8000여명에 이른다. 야당 소속 기초·광역의원도 당연직으로 참여하지만 현 정부 들어 보수 성향 인사로 대폭 교체됐다.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의 핵심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 소속 인사들도 민주평통에 대거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관과 개인적 인연이 깊은 조직으로는 푸른한국을 꼽을 수 있다. 회원수가 3500여명인 이 조직은 이 장관과 함께 개헌론 확산에 주력했다. 최토출 이사장은 2007년 MB 캠프의 정책자문그룹인 청한포럼(청계천에서 한강까지)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청한포럼은 앞서 2005년 이 장관이 서울시장 출마를 잠시 준비하던 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싱크탱크로 출발했다.

이 장관의 최측근인 진수희 보건복지부장관이 공동대표로 있는 부국환경포럼도 눈여겨볼 만하다. MB 캠프에서 대운하 공약을 담당했던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부국환경포럼은 4대강 사업을 적극 지지하는 우파 환경단체다. 온라인 팬클럽인 재오사랑, 조이클럽, 조이포럼도 이 장관의 뒤를 받치고 있다.

이 같은 세(勢)를 바탕으로 이 장관이 내년 총선-대선에서 ‘킹’ 또는 ‘킹메이커’로 주도적 역할을 해 나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이 장관은 최근 측근들에게 ‘킹’에 대한 도전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관이 “그동안 본인에 대한 ‘차기’를 언급하면 덕담으로 받아들였는데, 이제는 조금 다른 분위기”라는 것이다.

이 장관은 ‘평상포럼’을 대선 활동으로 봐도 되겠나’라는 질문에 “기자들의 상상력에 맡기겠다. 그런 상상력이 맞는 경우가 종종있다”고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야당과도 그동안 불편한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노 전 대통령과는 동지적 배려가 전제된 관계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강조하고 있다.
자신과 노전대통령은 70년대까지만 해도 한 사람은 반 군사정권의 투사로 한 사람은 법조인·인권변호사로 같은 길을 걸었지만 현장에서 마주칠 기회는 별로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민주화 투쟁의 절정에서 전두환 군사정권이 끝나고 재야 민주화 운동세력이 제도권 내부로 진입하면서 만남이 시작됐다는 것.

80년대 말 다수의 재야 인사들이 참여한 한 토론회 석상에서 첫 만남이 이뤄졌다고 했다. 당시 재야 운동세력 내부에는 현실정치 참여를 두고 양 갈래의 기류가 형성돼 있었다.

'재야세력이 독자적인 정당을 창당하느냐' 아니면 '기존 야당과 연대해 이른바 '민주세력연합'을 통해 하루라도 빨리 의회에 진출하느냐'를 놓고 재야세력 내부에서 노선투쟁이 뜨겁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이장관은 "80년대말 군사정권이 끝나고 민주화운동세력이 정당화하느냐 재야운동을 할 것이냐를 두고 토론한 적이 있었고 나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세력화를 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각론에서는 자신은 재야세력이 독자적으로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독자정당파였고 노 전 대통령은 기존 야당과 연대해 정치세력화해 의회 진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쪽이었다"고 밝혔다.

이후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민중당 창당을 주도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YS의 민주당에 입당해 정치에 입문함으로써 각기 다른 길을 걸어오게 됐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됐고 이후에도 '노동운동이 정치에 참여하는 문제', '지방자치제도' 등을 주제로 놓고 토론을 벌였고 참여정부에서는 대통령과 야당 원내대표의 신분으로 청와대에서 2차례 회동했으며 사학법을 둘러싼 여야간 대결이 첨예하던 시절 노 전 대통령은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손을 들어줬지만 민주당이 양보하길 거부해 문제가 꼬였다는 것이 이장관의 입장이다.

그러나 민주화운동의 동지적 관계였지만 현실 정치 입문 후에는 서로 다른 노선을 추구하며 입장이나 정책적 노선이 달랐으나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한 동지적 배려는 전제된 관계였다고 강조했다.

모든 책임음 대통령에게 전가하는 것은 ‘금물’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고있는 저축은행사태에 대해서 목소리를 냈다.
이장관은 경기 안양시에서 열린 한 포럼의 초청특강에서 저축은행 비리사태에 대해 '부패의 결정판'이라 규정하면서 "정권의 명운을 걸고, 전 정권이든 현 정권이든 성역없이 수사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활동 재개를 선언하고 사회적 이슈에 대해 처음 내는 공식적인 입장이었다. 이장관은 이날 검찰은 물론 현 정부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던져 관심을 모았다.

이 장관은 "저축은행이 이자를 더 준다고 하니까 (서민들이) 힘들게 번 돈을 예금했다. 그러나 저축은행들은 이 돈을 끌어모아 부당, 부실 대출하고, 망하려고 하니까 권력있는 사람들이 돈을 다 빼가고, 막노동하는 사람 돈만 잠겨 버린 것"이라며 "이걸 그대로 두고 공정사회라 그러고 친서민사회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검찰 오명 벗으려면 전 정권이든 현 정권이든 성역없는 수사도 촉구했다.
"만약 전 정권이 저축은행 허가과정에 관계돼 있다면 그대로 처벌하고, 알고서도 묵인했다면 현 정부가 그대로 책임을 져야 한다. 검찰도 부패, 정치 검찰의 오명을 벗으려면 성역없이 수사해야 한다. 누가 뒤를 봐주고 권력이 개입되었는지 벗겨내면 국민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리를 못 밝혀내면 부패, 정치검찰 오명을 다시 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장관은 지방정치와 관련 정당 공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대통령 선거 한번 하면 지역갈등, 이념갈등, 계층갈등, 세대갈등이 생긴다. 선거라는 것이 갈등을 하나로 만들어야 하는데 잊어버릴 만하면 갈라진다. 지자체 기초의원, 광역의원, 기초단체장, 공천하지 말자. 동네, 지역을 위해 일하는데 정당이 무슨 관련이 있느냐, 잘 지내던 사람도 선거만 끝나면 원수진다"면서 정당 공천 제도에 반대했다.

또한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점을 제기하며 권력의 분산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 장관은 "대통령 임기 5년이 끝난 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감옥갔다.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이 감옥에 갔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살했다. 성공한 대통령이 없다. 대통령이 아무리 일을 잘했지만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전가해서 그렇다.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 이렇게 해선 나라가 성공할 수 없고 갈등과 분열만 남아있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열린 숭민포럼은 지난 2007년 MB정부가 탄생할 때 당선에 기여했던 원내외 위원장들과 지지자들이 민생·민주·민의를 떠받든다는 취지로 결성해 최근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이날 숭민포럼 3주년 행사에는 이재오 특임장관, 숭민포럼 김부광 상임대표, 심재철 한나라당 정책위원장, 이춘식 의원, 이필운 전 안양시장, 정용대(안양 만안), 최종찬(안양 동안갑) 지역당협위원장, 안양시의회 이재선, 심재민 의원을 비롯 경기도 인근과 강원도와 충청도 등에서 모인 회원들과 한나라당 지지자 등 약 6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주인공은 단연 이장관으로 참석자들로부터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특히 심재철 의원은 "오늘 이 자리는 청렴하고 깨끗하고 공정하고 올바른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서는 이재오 장관 얘기를 듣고자 함"이라고 치켜 세우고 이춘식 의원은 "이재오 장관께서 구심점이 되어 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데 앞장을 서주셔야겠다"고 할 정도였다. 이장관의 위상을 다시한번 느끼게 해주는 행사였다는 것이 대부분 참석자들의 전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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