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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보통사람’ 피난민들의 송년회 “새해엔 민주주의 꽃피길”
[르포] ‘보통사람’ 피난민들의 송년회 “새해엔 민주주의 꽃피길”
  • 김혜선 기자
  • 승인 2017.12.19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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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전쟁과 기근, 혹은 핍박을 피해 고국을 떠나 먼 타지로 몸을 피한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난민이라 부른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로 난민 신청을 한 사람은 7542명. 올해 12월 기준 난민신청자는 6013명으로 매년 급속도로 늘고 있다.

그러나 신청자들이 난민으로 인정받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난해에는 98명이 난민 인정을 받았고,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나 인도적으로 체류허가를 주는 경우는 246명이었다. 나머지 난민 불인정 판정을 받은 이들은 대부분 행정법원에서 법무부 심사과정에 오류가 있었음을 다시 다투게 된다.

그렇게 한국에 ‘남겨진’ 사람들을 돕는 단체가 있다. 피난처는 타국으로 피난한 난민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게끔 돕고, 나아가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게 성장하도록 지원한다. 피난처는 지난 4주 동안 난민들의 한국생활을 돌아보는 워크숍을 진행하고 그 마지막 행사로 피난민 송년회 ‘보통사람’을 열었다.

(사진=뉴스포스트)
(사진=뉴스포스트)

지난 10일 오후 5시 경,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한 카페에 들어서니 피난처 관계자와 난민들이 푸근하게 맞이했다. 피난처 난민옹호협력팀 변수현 간사는 “매년 기관에서 송년회를 열지만, 올해는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모두 난민들과 함께했다”며 “지난 워크숍에서는 ‘난민’으로서가 아닌, 한국 사회속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보통사람’ 으로서 느끼는 감정을 듣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사람들이 난민에 갖고 있는 선입견이 있어요. 보통 시리아 난민을 떠올리시거나,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하시거나, 아예 우리나라에 난민이 있다는 것을 모르시기도 해요. 그런데 이분들은 그냥 불쌍하거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충분히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표현할 수 있어요”

 

평범한 그들은 어떻게 난민이 되었나

부룬디에서 온 리차드씨는 지난 6월 우리나라에서 열린 태권도 대회에 부룬디 국가대표로 참석했다가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도망쳤다. 난민신청 이유를 묻자 그는 지난 2015년도에 부룬디에서 발발한 내전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진=뉴스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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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씨는 “피에르 은쿠룬지자 대통령이 헌법에 거스른 3선에 도전하며 쿠테타가 일어났다. 많은 청년들이 일어나 대통령의 3선에 반대했지만 대통령 산하 무장 청년조직인 ‘임보네라쿠레(Imbonerakure: 현지어로 멀리보는 혹은 감시하는 자들 이라는 뜻)’ 등이 재선 반대세력을 죽이고 체포해갔다”며 “가족 중 한사람이 재선 반대 시위를 벌였는데 무장단체에서 계속 대통령 재선에 반대하면 죽이겠다고 협박을 받았다. 두려워서 운동을 그만뒀지만 그 이후에도 정부는 시민들의 체포와 협박을 멈추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내와 한명의 아이를 고국에 두고 한국으로 왔다. 지난 한해가 어땠는지 묻자 “아내와 아이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이번 파티에서 고국이나 가족에 대한 걱정을 잠시 잊을 수 있어서 좋다”고 답했다. 리차드의 새해 소망은 부룬디에 민주주의의 꽃이 피는 것. 그는 “내년에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는데 안전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하루빨리 부룬디에 민주주의가 회복되길 바란다. 그때까지 아내와 아이를 한국에 데려와 안전하게 살고 싶다”고 토로했다.

또다른 난민 아담씨는 지난 2011년도에 발발한 수단 내전으로 고국을 떠나 한국으로 들어왔다. 아담씨는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다.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는데 정부에서는 청년들을 체포하거나 고문하는 등 억압했다. 수단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수 없이 한국으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사진=뉴스포스트)

송년회를 잘 즐기고 있냐고 묻자 아담씨는 “이렇게 함께 모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앞선 워크숍을 통해 다른 난민들이나 한국인들을 만나서 더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고 답했다. 아담씨는 새해 소망으로 “이뤄지기 힘들지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고국에 돌아가 대학교 학업을 마치고 싶다. 또 수단에 학교를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전공을 물으니 ‘경영학’이라고 답했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한국에서 난민의 실태를 알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나는 ‘보통사람’입니다

이날 만난 난민들은 송년회 제목과 같은 ‘보통사람’들이었다. 난민들은 왼쪽 가슴에 노란색 방울을, 통역을 위한 피난처 관계자는 파란색 방울을 달았다. 토크쇼 등 주요 행사가 열린 2층에서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난민들은 ‘고국에서는 어떻게 연말을 보내나’라는 질문에 하나같이 “한국과 비슷하다”고 답했다. 리차드씨는 “부룬디의 연말도 한국과 비슷하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12월31일 자정을 지나기 전까지 음식을 먹지 않고 온 가족이 모여 종일 음식을 만든다. 새해를 맞이하면 가족들과 덕담을 나누고 신에게 한 해를 잘 보내게 해달라고 소원을 빈다. 그런 다음 음식을 먹으며 밤새 파티를 연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은 클럽 같은 곳에서 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3층은 아이샤씨의 유화 작품이 전시돼있다. 그 중 태극 마크와 함께 모자이크하듯 채색된 그림이 눈에 띄었다. “나는 봄이고 강이고 꽃이고 삶이다”라는 짧은 시가 적인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부르카를 쓴 모녀가 수줍게 다가왔다.

아이샤씨의 유화 작품. (사진=뉴스포스트)
아이샤씨의 유화 작품. (사진=뉴스포스트)

지난해 9월 한국 땅을 밟은 아이샤씨는 “고국에서는 생명과 안전의 위협으로 밖에 나갈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안전하게 밖에 나갈수 있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림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니 그림 하나하나를 짚으며 해석했다. 아이샤씨는 “한국에 온 지 1년이 조금 넘었는데, 사계절 중 봄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봄이 나 자신의 봄이라고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과거-현재-미래를 뜻하는 워크숍 활동 등이 전시됐다. 세계지도에 자신의 고향을 표시하고 간단한 설명을 붙이는 전시와, 현재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그려 넣은 ‘뇌구조’도 전시됐다.

팟팀씨는 자신의 뇌구조에 ‘라이프스타일’을 가장 크게 넣었다. 다음으로는 ‘낙천주의’, ‘미래’, ‘기대’ 등을 썼다. 두 명의 아이와 생활을 이어가기 위한 ‘직장’도 한켠에 적었다. 팟팀씨는 지난 2011년 코트디부아르를 떠나 두 명의 아이와 함께 한국 땅에 왔다. 그는 “내년에는 비자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다. 아이가 두 명이나 있는데, 아이디 문제가 있어 집에서 계속 쉴 수밖에 없어 걱정이다”고 토로했다. 올해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물으니 “피난처를 만나 소중한 사람들을 만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답했다.

또다른 벽면에는 참석자들의 손도장이 잔뜩 찍혔다. 손도장 옆에는 한국어와 영어, 불어 등 다양한 언어로 깨알같이 새해 소망이나 꿈을 적었다. ‘참가하게 돼서 많이 좋았어요’, ‘봄’, ‘행복, 친구’, ‘평화’ 등 대부분 긍정의 언어였다. 한 해를 보내며 더 희망한 새해를 바라는 마음은 국경과 언어와 인종을 초월한 ‘보통’의 일들이다.

(사진=뉴스포스트)
(사진=뉴스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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