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재계의 난’ 진압 카드는 ‘세금 압박’

[뉴스포스트=도기천 기자] 재벌기업과 정치권이 서로간에 전면전에 돌입했다.
먼저 칼을 빼든 쪽은 정부와 국회다. 한나라당은 대기업이 오너일가 소유의 회사와 내부거래할 경우 정부에 신고토록 하는 사전신고제 도입을 들고 나왔다. 대기업 법인세 감세 철회도 여야가 손발을 맞춰가며 진행 중이다. 민주당은 최저임금제 10%인상안으로 재계를 압박하고 있다.
국세청도 총대를 멨다. 사실상 변칙증여인 대기업들의 비상장법인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관행에 과세를 추진하기로 했다. 기업들의 역외탈세에 대해서도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러자 재벌기업들도 일제히 들고 일어섰다. 국회 지식경제위 주최로 지난달 29일 열린 대ㆍ중소기업 상생을 위한 공청회에 일제히 불참을 선언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유관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은 ‘반값등록금은 반시장적 정책’이라고 발표했다. 정치권을 향한 사실상의 선전포고인 셈이다.
여야 정치권은 기업 총수와 경제단체장들을 국회법 위반으로 고발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국세청과 검찰도 비자금 조성, 주가조작 등에 관여된 ‘재벌2.3세 줄소환설’을 흘리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벌써 사정당국이 몇몇 대기업의 내사에 들어갔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재계는 “해볼테면 해봐라”는 식이다.
<뉴스포스트>가 ‘치킨게임’으로 치닫고 있는 정계와 재계의 팽팽한 ‘기싸움’ 속으로 들어가 봤다.
 

최근 정치권과 갈등을 겪고 있는 재계 총수들(전경련 회장단). 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 효성 조석래 전경련 회장, 이건산업 박영주 회장, 두산 박용현 회장, 롯데 신동빈 부회장, 삼환기업 최용권 회장, 허창수 전경련 회장(GS그룹), 포스코 정준양 회장, 대림 이준용 회장, 코오롱 이웅렬 회장, SK 최태원 회장, 한화 김승연 회장.

“오너일가 내부거래․편법상속 법으로 원천봉쇄”
5면 중제-국세청, 3~4개 대기업 내사 중…‘재계 압박’

“대기업들이 지금처럼 오만해진 적이 없다. 기업들이 공청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대화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공청회를 출석 의무가 부과되는 청문회로 격상하고, 그래도 출석하지 않는다면 국회법에 따라 고발 조치할 계획이다.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김영환 국회 지경위원장)
“최근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도를 넘어서는 것 같다. 최저임금제 인상폭 확대, 대기업 법인세 인하 철회, 사전신고제 추진 등 일련의 ‘대기업 때리기’는 내년 총선에서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무분별한 반시장적 정책이다.”(A그룹 관계자)
정치권과 재계가 정면 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정경유착이라는 단어는 옛말이 됐다. 불과 몇 년전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다.
포문은 한나라당이 먼저 열었다. 이달초 당비대위에서 MB정부 친기업정책의 핵심으로 꼽히는 감세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언급한 것. 며칠 뒤에는 구체적으로 ‘법인세 감세 철회’ 얘기가 나왔다. 대기업이 오너 일가 소유 기업과 거래할 경우 정부에 신고토록 하는 사전신고제를 추진하는 한편 반값등록금도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 여당으로서는 전향적이라고 할 만한 조치들이다. 이는 지난 4.27재보선 참패 후 당이 비대위 체제로 재편되면서 소장개혁파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데다, 비주류의 황우여 원내대표가 줄곧 당혁신을 주창해온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반값등록금’ 비난은 물타기?

그러자 재계는 발끈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지난 21일 법인세 감세 철회, '반값 등록금' 등 정치권의 정책 추진에 대해 '포퓰리즘'이라고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며칠 뒤에는 ‘수장의 입’이 아닌 ‘싱크탱크’를 통해 전선을 확대하고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유관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이 반값등록금을 바판하는 보고서를 내놓은 것.
한경연은 지난달 27일 ‘반값등록금의 문제점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반값등록금은 소득 재분배와 수익자 부담 원칙 등 경제 원칙에 어긋나는 동시에 학력 인플레를 심화시키면서 대졸 실업자를 양산할 수 있다”며 “등록금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값등록금 정책은 부유한 가정에까지 혜택을 주게 되는 등 시장경제 원리에 위배된다는 것.
이날 한경연은 이례적으로 전경련 기자실에서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을 했다. 보고서 브리핑은 1년여 만에 이뤄진 일이다. 전경련 측은 “최근 정치권과의 갈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브리핑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정치권과의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언론)’를 선점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그러자 정치권은 즉각 맞불놓기에 들어갔다. 국회 지식경제위는 ‘대ㆍ중소기업 상생을 위한 공청회’에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 이희범 한국경영자총연합회장,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주요 경제단체장에게 출석요구서를 날렸다. 이번에는 공청회지만 다음번엔 청문회가 될 수도 있다는 엄포도 잊지 않았다.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를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다 정치권은 한진중공업 노사갈등을 두고 조남호 회장을 국회 청문회에 출석시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국회 환경노동위는 한진중공업 노사 갈등과 관련,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불출석할 경우 청문회 연기, 고발 조치 등을 단계적으로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경제단체들이 최근 정치권의 친서민 정책을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인데 대해 공청회(또는 청문회) 형식을 빌어 따지는 한편 한진중공업 진상조사를 통해 친노동자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여야 중진들의 재계를 향한 쓴소리도 이어졌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지난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과연 대기업이 투자 및 고용 증가를 위해 할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고 재계를 향해 날을 세웠다.
이주영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우선 순위를 서민에 두고 그런 원칙 하에 움직이고 있는 국회를 대기업 편을 안 들었다고 무원칙하다고 폄하하는 것은 아주 편협한 생각의 발로”라고 지적했다.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고물가, 전세대란에 서민들이 한숨으로 날을 지새고 비싼 등록금 때문에 학부모와 학생의 절규가 끊이지 않는데 세금을 안 깎아준다고 볼멘소리하는 재벌은 도대체 어느 나라 기업인가”라며 “소탐대실하지 말고 자중자애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달 29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대 중소기업 동반성장 공청회’. 이날 재계 총수 및 경제단체장들은 국회의 참석요구에도 불구, 전원 불참했다.

공청회 불참에 MB 격노

하지만 정치권의 강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재계는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허창수 회장은 경제5단체장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의 상견례 자리에서 “경쟁국은 상법과 공정거래법 등을 일시적 흐름보다 경제원리에 맞게 신중하게 운용하고 있다”며 “우리의 경우 정책결정에서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순수하고 분명한 원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치권이 앞다퉈 내놓고 있는 ‘대기업 옥죄기’ 정책의 순수성이 의심된다는 것. 앞서 허 회장이 정치권에 선전포고한 ‘포퓰리즘’ 발언의 후속타인 셈이다.
결국 허 회장을 비롯한 재계 총수들은 지난 29일 열린 국회공청회에 불참했다. 다시 한번 자신들의 불만을 표방한 셈이다.
정치권은 강도높게 이날 재벌들의 불참을 강도높게 비난했다. 김영환 지경위원장은 “(재벌들이) 국회에 포퓰리스트라는 낙인을 붙였다. 국회가 나라도, 기업도 안중에 없이 표만 생각하는 무책임한 정치집단으로 내몰렸다. 공청회는 빛을 바래고 국민의 조롱이 될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며 “재벌의 납품가 후려치기, 편법상속을 비난하는 일이 포퓰리스트라면 그 포퓰리스트의 길을 가겠다. 성장만 보는 외눈박이에서 성장과 분배를 보는 두눈박이가 되겠다”며 재벌들의 공청회 불참을 맹비난 했다.
민주당 김재균 의원은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생 문제 등 이런 제반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안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공청회를 만들었는데 꼭 자리에 나와야 할 분들이 안나왔다”며 “이는 우리 위원회를 무시하고, 국민의 대의기관을 깔아뭉개는 안하무인격 태도를 보인 것”이라고 성토했다.
한나라당 이종혁 의원은 “대기업의 중소기업 영역침투가 도를 넘었다는 것이 국민의 정서인데, 선거를 앞두고 대기업 때리기를 한다는 정치적 거풀을 씌워 출석하지 않았다”며 “단체장들의 불출석은 국민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청와대쪽에서는 MB(이명박 대통령)가 재계 인사들의 국회청문회 집단 불참에 격노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MB는 집권초기부터 꾸준히 친대기업 정책을 펴왔다. 고환율정책으로 수출기업들의 숨통을 퉈줬으며, 각종 감세정책을 펴왔다. 위기상황에 처한 대기업들에게는 공적자금을 투입했으며, 여러차례 부동산 부양책을 발표해 건설경기를 살리려 했다.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도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재계의 반란’은 MB로서는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정치권은 예고한대로 이들에 대한 청문회를 준비할 태세다. 최악의 치킨게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재계의 난’ 세금으로 진압

재계와의 치킨게임에서 정치권이 내놓은 카드는 ‘세금’이다. 우선, 정부는 사실상 변칙증여인 대기업들의 비상장법인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관행에 철퇴를 가하기로 했다. 이는 여야정치권과도 이견이 없는 사안이라 재벌 손보기에 가장 현실적인 결정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MB(이명박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다.
이 대통령은 최근들어 "국민들은 공정사회 구현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로 공정한 과세를 꼽고 있다"며 "국세행정을 공정하게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대기업이 가족 소유의 비상장 계열사에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편법적으로 기업을 상속하는 것을 막기 위한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을 제출하겠다는 입장을 여당에 전달했다.
정부안에 따르면 대기업의 계열사가 다른 회사보다 비싸게 물품을 공급해서 이익을 취했을 경우 공급가격 차액에 대해 과세하고, 같은 가격이라도 대기업 계열사에 일감을 대량으로 몰아줘 과다 이익을 챙겼을 경우 그에 대해 추가 과세를 하는 방안이 핵심이다. 또 대기업이 비상장 계열사에 '물량 몰아주기'를 통해 계열사 주식가치를 올렸을 경우 주식가치 증가분에 대해 과세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은 한술 더 뜨고 있다. 아예 대기업이 오너 일가 소유 계열사와 거래할 경우 정부에 미리 신고토록 하는 ‘사전신고제’를 추진하고 있다.
정진섭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은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와 편법 상속을 막기 위해서는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것보다 오너일가의 거래를 투명하게 하는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며 대기업들이 오너와 특수관계가 있는 회사와 거래할 때 신고토록 하는 제도의 도입을 정부에 요청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대기업 오너 일가 소유의 비상장회사(주로 소모성자재구매대행사)가 계열기업에 납품할 때는 사전 신고를 해야 한다.

재벌 ‘실탄 창구’ 원천봉쇄

정부와 정치권의 이같은 ‘강수’는 대기업들이 오너 지분이 높은 비상장 계열사에 집중적으로 물량을 몰아줘 기업을 키운 뒤, 고액의 배당금을 받아 챙기거나 주식을 상장해 막대한 이익을 얻는 ‘오랜 관행’을 뿌리 채 뽑겠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재벌들의 ‘실탄창구’를 막아 2,3세에게 편법적으로 경영권이 승계되는 수순을 ‘원천봉쇄’ 하겠다는 것. 사실상 ‘재벌과의 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재계가 겉으로는 반값등록금 등에 시비를 걸며 정부를 비난하고 있지만, 실상은 이 상속증여세법 개정이 재계가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다.
실제로 재벌들의 내부거래를 통한 수익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최근 재벌닷컴이 재벌 총수 자녀들이 대주주로 있는 매출액 100억원 이상 비상장 회사 20개를 꼽아 내부거래 비율을 조사했는데, 평균 46%에 달했다. 이런 수법으로 지난 5년새 이들 비상장사들의 매출은 평균 3배이상 급증했다.
삼성SDS는 지난해 매출 3조6265억원 가운데 63.1%인 2조2887억원을 삼성전자, 삼성화재 등 계열사의 IT 프로젝트를 수주해 얻었다. 2009년에도 매출 2조4940억원 중 63%인 1조5724억원을 그룹 내부거래로 올렸다.
이 회사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8.81%)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4.18%),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4.18%)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날이 갈수록 내부거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회장과 아들 정의선 부회장은 지난 2001년 50억원을 투자해 물류업체인 글로비스를 설립한 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수천억원의 주가 차익을 거뒀다.
'조선호텔베이커리'는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딸인 정유경 부사장이 40% 지분을 갖고 있다. 신세계 이마트에서 파는 빵이나 피자는 조선호텔베이커리 제품이다.
신격호 롯데회장의 두 딸이 18.6% 지분을 가진 롯데후레쉬델리카는 롯데마트에 삼각김밥과 샌드위치를 납품하고 있다.
LG CNS는 지난해 매출 2조571억원 중 45.5%인 9367억원을 LG전자, LG디스플레이 등 그룹 계열사에서 얻었다. LG CNS는 그동안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 부문의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상대적으로 그룹 내 매출이 작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2009년 38.8%였던 내부거래 비중이 지난해에는 45.5%로 급증했다. LG전자가 글로벌 IT시스템 통합을 시도하면서 2640억원 정도의 일감을 LG CNS에 몰아줬기 때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SK C&C도 SK텔레콤 등 계열사를 통해 꾸준히 매출액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SK텔레콤이 5335억원 상당의 IT 물량을 SK C&C에 몰아준 결과 이 회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63.8%(9424억원)에 달했다.
이들 대기업 계열사들은 내부거래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고 있지만 대부분 비상장사이기 때문에 당국의 눈을 피하기가 쉽다. 또 매년 배당시즌 때마다 오너일가가 수백억원의 배당금을 받고 있어 관련 업계에서는 ‘꿩먹고 알먹는’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지난달 29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대 중소기업 동반성장,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및 MRO 등에 대한 공청회'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해외비자금 끝까지 추적

한편 정부는 재벌들의 역외탈세에 대해서도 칼을 빼들었다. 최근 국세청은 이 대통령 주재로 '제2차 공정사회 추진회의'를 열고 '조세정의 실천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국세청은 해외 은닉재산 정보취득을 위해 올해 오스트리아 등 10개국과 협상을 추진해 조세정보 교환협정을 37개 국가로 확대할 계획이다. 국세청은 지난해 역외탈세 조사로 5,000억원을 추징한 데 이어 올해 1․4분기에만 4,600억원의 역외탈루 세금을 추징했다.
특히 최근들어 정부(정치권)와 재계의 갈등이 깊어지자 사정당국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조세정의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확고한 상황이라 국세청도 힘을 받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국세청은 특히 재벌가 오너들의 비자금 추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현동 청장은 최근 “우리나라 역외탈세는 기업의 해외투자나 해외투자법인과의 특수거래관계를 계기로 이뤄지며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의 대주주나 그 가족들이 관련되어 있다”며 ‘로얄패밀리’들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국세청은 이미 몇몇 대기업 총수들의 해외비자금을 포착, 계좌추적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초부터 본청 국제조세관리관실 산하에 ‘역외탈세담당관실’을 신설하고 ‘해외금융계좌 신고제’를 도입하는 등 본격적인 역외탈세 추적 업무에 들어갔으며, 탈세 혐의가 짙은 기업에 대해선 오너 및 최대주주는 물론 거래처까지 강도 높은 조사를 펼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국세청이 3~4개 기업에 대해 해외거래 과정에서 거액의 탈세를 한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국세청은 이미 재벌가의 ‘비자금 조성법’을 지난해부터 ‘메뉴얼화’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사정당국이 몇몇 기업의 내사를 진행중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재계 “기업압박은 포퓰리즘”

정치권이 이처럼 재계에 초강수를 두고 있는 것은 내년 총선․대선과 무관치 않다.
한나라당의 경우 지난 4.27재보선 참패 후 당쇄신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이상 ‘청와대 거수기’를 자초했다간 내년 선거를 치르기가 힘들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따라서 7.4전당대회로 새롭게 구성된 지도부에게 가장 큰 화두는 ‘당개혁’과 ‘친서민’이다. 야당의 복지정책을 능가하는 획기적인 서민정책을 생산해야 하는 게 이들의 책무다.
민주당은 일찌감치 3무1반(무상급식․보육․의료와 반값등록금) 정책을 당론으로 채택한 상태다. 특히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반값등록금’과 ‘주거대책’에 사활을 걸고 있다.
문제는 예산이다. 결국 한때 당정이 함께 추진했던 법인세 인하 등 대기업 감세정책을 철회할 수밖에 없게 됐으며,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대기업 내부거래 규제 ▲비정규직 보호 등 대기업을 옥죄는 정책의 추진이 활발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반(反)대기업’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하고 있다. 특히 세금은 ‘기업 경쟁력 약화’로 연결될 수 있기에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대기업들이 세금을 많이 낼수록 수익성이 악화돼 결국엔 서민 경제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이론이다.
이현석 대한상공회의소 전무는 "대기업을 지나치게 비판하거나 경영활동을 압박하는 것은 기업의 사기를 저하시키게 된다"며 "결국 투자와 고용에도 도움을 주지 못해 경제활성화에도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법인세율을 높이면 기업들의 경쟁력이 악화되기 때문에 복지 재원 마련이 더 어렵게 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법인세를 낮춰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권이 여야 할 것 없이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재계로 불똥이 튀고 있지만, ‘이번에는 그냥 당하지는 않겠다’는 자세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기왕 내뱉은 정책들을 물리기에는 이미 늦어 보인다. 당장은 ‘정면충돌’ 할 것 같지만 오랜 정경유착의 고리가 쉽사리 끊어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민주당 모 중진의원은 “한바탕 태풍이 지나고 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호흡을 맞춰가는게 정치권과 재계의 생리”라며 “결국 재벌들이 적정한 선에서 양보하는 액션을 취하게 될 것이고 정치권은 마지못해 수용하는 듯한 모양새를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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