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문재인 정부가 지난 정권의 외교참사 수습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가 간 체결된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위안부 문제 등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지 않는 내용을 안고 가야하기 때문.

신년사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뉴시스)
신년사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뉴시스)

특히 아랍에미리트(UAE) 외교와 관련해 제기되는 의혹은 ‘핵폭탄’급이다. 당초 UAE 의혹은 지난달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UAE에 긴급하게 특사로 파견된 배경을 놓고 불거졌다. 당시 일부 언론은 임 실장의 파견이 MB정부 비리 뒷조사, 특히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는 보도를 이어갔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임 실장의 중동 방문은 문재인 정부가 MB 정부의 원전 수주를 뒷조사하다 UAE측이 항의, 국교 단절 위기가 발생해 간 것”이라며 의혹 진상 규명을 주장했다.

그러나 논란의 방향은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UAE 논란은 MB가 ‘유사시 군 자동개입’이라는 비밀 군사협정을 맺었기 때문에 불거진 것”이라고 주장하며 급전환됐다. 이 주장은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김태영 전 장관이 9일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사실로 확인됐다. 김 전 장관은 인터뷰에서 “섣불리 국회로 가져가기보단 내가 책임지고 (비공개 군사) 협약으로 하자고 했다”고 실토했다.

위안부 문제도 큰 골칫거리다. 지난달 27일 외교부 장관 직속 위안부 TF는 한‧일 위안부 합의 절차를 검토하고 청와대 주도로 외교부가 ‘위안부 밀실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전 정부는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소녀상 이전 문제’, ‘제3국 기림비 지원 문제’, ‘성노예 용어 사용’ 등 일본 측의 무리한 요구 역시 전부 들어준 사실이 드러났다.

 

어려운 수습…文 정부 선택은?

하지만 정부는 전 정부의 외교 문제를 드러내놓고 지적하기 곤란한 상황이다. 당장 외교문제가 얽혀있는 사안에 섣불리 입장을 취했다가는 국교단절 등 최악의 상황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

UAE 논란은 최대한 드러나지 않는 게 상책이다. 사실상 ‘비밀 군사협정’이라는 실체로 드러난 UAE 논란은 문제제기가 계속될 경우 필연적으로 협정 파기나 재협상 등으로 흘러가게 된다. 일단 우리나라 헌법 상 타국과 조약체결은 국회 동의를 얻도록 돼 있어 절차적 문제가 크다.

공식적으로 정부가 UAE와의 비밀 군사협정을 인정하고 수습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는 어마어마하다. 우선 수니파 국가인 UAE는 시아파 국가인 이란과 적대관계에 있어 이란과의 외교 문제로 옮겨 붙을 수 있다. 일명 ‘화약고’인 중동의 종교 갈등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다. UAE는 우리나라의 주요 원유 수입국이다. 외교문제로 UAE와의 관계가 악화되면 GS칼텍스, SK 등 국내 대기업 정유사도 휘청일 수 있다.

이에 정부와 여당은 UAE·위안부 논란에 적극적인 행동은 자제하는 눈치다. 청와대는 지난 8일 방한한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의 일정도 방한 직전까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UAE 논란에 대한 적극적인 진상조사보다는 국익과 기업안전 등을 강조하며 ‘정부 발목잡기’를 자제해야한다는 논조를 폈다.

문 대통령도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UAE 관련 질문이 나오자 눈에 띄게 어두운 표정을 보였다. 문 대통령은 UAE 군사협정 비공개 이유로 “상대국 측에서 공개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저는 외교 관계도 최대한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앞 정부에서 양국간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면 그 점에 대해서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비공개 협정 내용 속에 흠결이 있을 수 있다면 앞으로 시간을 두고 유에이 측과 수정 보완하도록 협의하겠다. 적절한 시기 되면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장은 UAE 관련 의혹을 덮겠다는 뜻이다.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도 일본과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해 ‘협상 파기나 재협상은 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외교부는 9일 “한·일 위안부 합의가 양국간 공식합의인 만큼 재협상을 요구하진 않겠다”며 “그러나 잘못된 매듭은 풀어야 한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해 드리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해 실제 협상 폐기나 재협상 조치는 취하지 않지만, 일본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미완결로 규정하며 ‘최종적 불가역적 협상’ 의미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위안부 후속조치를 위해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엔도 정부가 모두 지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와 관련, 노회찬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외교부 후속대책 발표) 효과는 내용적으로는 (위안부 협상이) 파기된 것이다. 그런데 잘못하면 수세에 몰린 일본이 국가 간의 약속이 한국에 의해서 파기되었다는 식으로 자기들이 피해자, 우리가 가해자가 되는 식으로 몰고 갈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그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이 제시하는 ‘국가 간 합의’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프레임에서도 벗어나는 전략을 택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진실을 인정하고 피해자 할머니들에 진심을 다해 사죄하고 그것을 교훈을 삼아 다시는 그런 일 생기지 않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노력해나갈 때 피해자도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완전한 해결”이라면서 “지난 정부에서 그런 식으로 피해자 배재 가운데 문제해결 도모 자체가 잘못된 방식이었다. 재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같은 조치가 국내 위안부 피해자 단체와 일본의 반발을 동시에 샀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본 정부는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에 주일 한국대사관에 전화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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