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적폐청산 수사를 두고 정면충돌했다. 문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분노’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 전 대통령의 성명에 강력 대응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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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문 대통령이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밝힌 입장은 단 두 줄이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하며 정치보복 운운하는데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마치 청와대가 정치보복을 위해 검찰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을 한 것에 대해 이는 우리 정부에 대한 모욕이며 대한민국 대통령을 역임하신 분으로서 말해서는 안 될 사법질서에 대한 부정이고 정치 금도를 벗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 대통령이 ‘분노’를 말한 것은 제가 대변인을 하면서 처음 듣는 말”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에도 불구, 이날 아침회의에서 입장표명을 하겠다는 뜻을 꺾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문 대통령의 이례적 반응은 17일 이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촉발됐다. 이 전 대통령은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수사에 대하여 많은 국민이 보수를 괴멸시키고 이를 위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의 측근 세력도 문 대통령의 입장발표 전까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총공세를 폈다. MB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김효재 전 수석은 “친여 매체, 여당이 의혹을 제기하면 시민단체가 고발하고 이를 검찰이 수사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 기획하지 않으면 그런 패턴이 일정하게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늘푸른한국당 이재오 대표 역시 “정치판이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의 싸움이 되면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에서) 비서실장도 하고 수석도 했는데, 결국 문재인 대통령에 (불똥이) 튀게 된다”며 “당신들이 괴롭히면 우리가 알고 있는 걸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을 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文, ‘정쟁화’ 알면서도 반격

그동안 보수 세력은 현 정부의 적폐청산을 두고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을 계속 적용해왔다. 최근 진행되는 전 정부 관련 수사가 법에 근거한 사법부의 정상적인 활동이라는 인식보다 ‘정치검찰’의 활동으로 비춰지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정치적 공방이 이어질 경우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적폐청산의 동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자유한국당은 기다렸다는 듯 문 대통령의 ‘분노’ 발언을 부각시키며 비난했다. 한국당은 이날 논평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자만 나오면 그렇게까지 흥분하고 분노한다는 것 자체가 이 수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보복이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MB 청와대의 정무수석을 지낸 정진석 의원은 “김정은에게도 분노하지 않았던 문 대통령이 이토록 쉽게 분노하는 인물일 줄 몰랐다”고도 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도 마찬가지로 대변인을 통해 문 대통령의 감정을 부각했다. 이행자 국민의당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감정적으로 발끈해서는 안 된다. 전·현직 대통령의 썰전은 국민들 눈살을 찌푸리게 할 뿐”이라고 말했다. 바른정당 권성주 대변인 역시 “분노를 표출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수사를 강화하라는 가이드라인으로 비쳐질 수 있다. 공과 사를 가리고 신중하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발언의 파장을) 고려하지 않았겠느냐”며 문 대통령의 ‘분노’ 발언이 단순 자연인으로서의 감정적 발언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수위높은 대통령의 발언에 따른 파장을 예상하고도 감내했다는 것.

이 관계자는 “대통령의 분노가 어떻게 개인적인 것에 머무를 수 있겠나”라며 “적어도 문재인 대통령의 분노는 국가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정부를 맡고있는 책임감 때문에 그동안 많은 인내를 해왔지만 모든 것을 인내하는 것이 국민통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의롭지 않은 것에 인내하지 않는 것이 진짜 책임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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