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박은미 기자] 한미 무역전쟁이 시작했다. 시작은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다. 삼성과 LG전자는 미국 정부에 유감을 표했고 미국 가전업체 월풀은 ‘美 노동자의 승리’라고 치켜세웠다. 정치적 발언으로 여론전을 펼치며 트럼프 정부의 환심을 사려는 월풀의 의도가 보인다. 

월풀은 지난해 5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세이프가드를 청원한 당사자다. 1911년 창업 이래 107년 동안 미국 1위를 지켜온 월풀이 어쩌다가 트럼프 정부의 우산아래만 생존할 수 있는 기업이 된 것일까.

세이프가드란 일종의 안전장치 개념에서 시작됐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를 벗어나 많은 독립 국가들이 생겨 지구촌 나라들이 무역을 통해 연결되면서 한 나라의 문제가 유기적으로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이에 일정제품의 수입이 급증해 국내 산업에 심각한 피해가 예상될 경우, 수입국이 일시적으로 수입을 제한하기 위해 1947년 GATT(관세무역 일반협정) 회원국들이 만든 조치다.

그러나 실제 발동한 사례는 드물다. 세이프가드 적용은 비상조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한국산 등 수입 철강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WTO에 제소당해 협정위배 판정을 받는 등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이같이 세이프가드는 초강대국이라 해도 국제 사회 질서를 감안하면 선택하기 어려운 조치인 것은 분명하다.

월풀에 주장에 따르면 삼성과 LG전자 제품이 지나치게 싼 가격에 수입되면서 미국 제조업에 큰 피해를 끼쳤다. 자사 제품이 가격 경쟁력에 밀려 시장에서 뒤처졌고, 삼성과 LG전자의 부당행위로 미국에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 즉 ‘미국에서 물건을 팔려면 미국에 일자리를 만들라’는 트럼프의 대선 구호와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월풀은 미국 세탁기 시장에서 여전히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트랙라인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세탁기 시장에서 월풀의 점유율은 2015년에 비해 약 1.4%포인트 떨어졌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월풀의 시장점유율은 37.7%로 삼성전자(17.1%), LG전자(13.5%)의 점유율을 합쳐도 월풀에 미치지 못한다.  

이밖에 근거가 미약한 월풀의 주장은 한 두개가 아니다.

월풀은 세이프가드가 발효가 미국 소비자의 선택권 침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R&D에 더 많이 투자해 월풀의 세탁기 라인업 강화로 소비자들의 선택지를 다양하게 만들면 된다"는 답변을 내놨다. 2011년에는 ITC에 삼성과 LG전자의 냉장고에 대한 세탁기 덤핑 판매 혐의로 제소했다가 모두 기각, 완패한 전례도 있다.

이번 세이프가드 결정으로 수요가 늘 것으로 보고 오하이오 주 클라이드의 제조 공장에서 정규직 일자리 200개를 새로 만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의 장단에 맞추기 위해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며 임시직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돌려막는 데 급급한 국내 기업들이 오버랩된다.

하지만 월풀은 역풍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번 조치로 월풀의 일자리와 점유율이 늘어날 수는 있겠지만, 당장 고율의 관세로 소비자 가격이 치솟으면 수많은 자국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게된다는 것을. 결국 트럼프가 월풀의 민원 해결사를 자처하면서 ‘기회의 땅’ 미국이 소비자들의 기회마저 박탈하는 우스운 나라가 돼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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