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없는 군색한 변명 "성추행은 죄송, 성폭행은 아냐"

이윤택 기자회견 (사진=뉴시스)
이윤택 연출가가 19일 자신의 성추문 파문과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사과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성 부족으로 여론의 공분을 사고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포스트=김나영 기자] 연극계 ‘#미투(Me Too) 운동’으로 성추문에 휘말린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67)이 19일 오전 10시 기자회견을 갖고 사과에 나섰다. 이 씨는 "부끄럽고 참담하다"라며 "선배 단원들이 항의할 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매번 약속했는데 번번이 제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성폭행 제보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다"며 "(성 행위는 있었으나) 강제가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성관계) 문제는 법적 절차에 따라 진실이 밝혀지기 바란다"라고 밝혔으나 성 폭행 사건은 현재 공소시효가 만료된 상황이다. 이미 시효가 지났는데 어떻게 절차를 밟겠냐는 질문에 그는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수십년간 한국 연극 현장에서 사실상 연극인들의 대부로 군림해온 이윤택 씨는 과거 자신이 저지른 추악한 성 추행 민낯이 하나둘 드러나자 일단 고개를 숙였으나, 피해 여성들과 성난 여론이 납득할만한 사과와는 거리가 먼 진정성 없는 사과 기자회견으로 공분을 더욱 부추겼다.

 

이윤택, 합숙소에서 밤마다 여자 단원 불러내 성기 주변 마사지시켜

이윤택 전 감독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폭로는 지난 14일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를 시작으로 이 씨의 기자회견 15분 전까지 계속됐다. 당시 연출을 맡은 이 씨는 공연 연습 차 합숙하면서 매일 밤 여자 단원을 불러내 성기 주변을 안마시키고, 발성 연습을 핑계로 여배우의 가슴, 성기 등 신체를 더듬은 것으로 드러났다.

김수희 대표는 "10년도 더 된 일"이라고 운을 뗀 뒤 "그는 연습 중이든 휴식 중이든 꼭 여자 단원에게 안마를 시켰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방공연에 가서 여관방을 배정받고 후배들과 같이 짐을 푸는 밤에 인터폰이 울렸다"며 "연출이 자기 방 호수를 말하며 지금 오라고 했다"라고 회상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가 누워 있었고 예상대로 안마를 시켰다"며 "(안마를 하던 중) 바지를 내리고 자기 성기 가까이 내 손을 가져가더니 성기 주변을 주무르라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폭로했다.

16일 미투 운동에 동참한 추은경 극단 바보광대 대표도 2000년에 "회식자리가 끝나고 밤에 숙소로 돌아가는 차량을 지정할 때 이 씨가 함께 타자고 했다"며 "이 씨가 (차에서) 안마를 요구했고, 자신의 성기를 만지게 했다"고 말했다. 또 "입으로 하라고 자꾸 힘으로 이끌었다"며 "그 힘이 너무나 셌고 무서웠고 앞에 운전하던 선배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을 정도로 겁에 질렸다"고 덧붙였다.

김보리(가명) 배우는 17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성기 마사지 도중 사정이라도 하게 되는 날엔 30여명이 모이는 대연습실에서 안마시술자를 극찬했으며 안마가 만족스럽지 않았거나 성기 마사지를 거부한 단원은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입에 담기 힘든 정도의 폭언을 들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발성 교육한다며 옷 속으로 손 집어넣고 중요 부위 더듬기도

소리를 내는 곳을 알려준다며 여배우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 행위도 상습적으로 되풀이됐다. 김수경 배우는 2012년 여름 "집중 트레이닝이 필요하다며 10명도 안되는 인원만 데리고 숙소 생활을 했다"며 "연극촌으로 연습을 가지 않을 때면 몇 안 되는 극단 단원들은 자신의 연습 순서를 기다리며 밖에서 대기하고 연출가와 단 둘이 극장 안에 남겨졌다"고 회상했다. 그는 "연습을 빌미로, 나를 특별히 아껴 연습을 시켜준다는 명목으로 뒤에서 껴안고,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발성을 하는 위치라며 짚어주던 더러운 친절함"이라며 "그래놓고 자기가 이렇게 가르쳐줬다는 걸 고인이 되신 선생님이나 극단 대표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이승비 배우는 같은 피해를 겪고 문제를 제기했다가 불이익을 당했다. 그는 "(이 씨가) 대사를 치게 하면서 온몸을 만졌다"면서 "사타구니로 손을 쑥 집어넣고 만지기 시작해 있는 힘을 다해 그를 밀치고 도망쳐 나왔다"고 밝혔다. 이어 "정신을 가다듬고 행정실로 찾아가 모든 얘기를 전했지만 그 일에 관련된 얘기는 듣지도 않고 원래 7대 3이던 공연 횟수가 5대5로 바뀌었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고 충격에 휩싸여 집에 오는 길에 응급실로 달려갔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그날 공연을 하지 못하자 최초로 국립극장 공연을 펑크낸 배우라고 마녀사냥을 당했다"며 "모든 사람이 날 몰아세웠고 남자친구 또한 그 공연 코러스였는데 연희단거리패였기에 모든 것을 묵인했다"며 "그 뒤로 신경안정제를 먹고 산다"고 덧붙였다.

이 전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발성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자칫 잘못하면 불가피하게 가슴이나 척추 쪽 터치할 경우, 부적절한 신체접촉이 이뤄진다"며 "그 배우가 저한테 성추행을 당했다는 생각을 지금에야 알았다"고 해명했다.

 

성폭행까지 묵인되는 '이 세상의 왕' 누가 만들었나

이 전 감독에 대한 미투 운동이 확산하는 가운데 성폭행 피해자까지 나왔다. 성폭행은 강간이나 강간미수, 즉 '교접행위'를 필요로 한다. 17일 김보리(가명) 배우는 "이윤택 극단에 있던 2001년 19살에, 극단을 나온 2002년 20살에 두 번의 성폭행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처음에는 선배와 짝지어 황토방이라는 별채로 호출받아 이불 밑으로 그의 팔다리를 주물렀다"며 "여러 공연에 배우로 참여한 뒤 황토방에서 성폭행 당했다"고 밝혔다.

성폭행까지 일어날 정도로 이 전 감독의 성폭력은 도를 넘어섰지만, 그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김 씨는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고, 일련의 과정을 둘러싼 왜곡된 뒷말은 김 씨를 겨냥했다. 이듬해 다른 연출의 공연 연습을 방문했을 때 이윤택과 마주쳐 2차 성폭행을 당하기까지 했다.

이 전 감독의 성폭력 피해자들은 연희단거리패를 떠나거나, 연극 자체를 등지는 식으로 문제에 대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차마 문제 제기를 할 수 없거나, 문제를 제기해도 전혀 개선되지 않을 정도로 이 씨의 권위가 견고했다고 입을 모은다.

김 씨는 "황토방에서 안마를 하고 있으면 종종 선배들이 들어와 작품의 방향이나 여러 극단의 상황을 얘기했다"며 "당시 성기 쪽을 주무르는 것을 본 선배도 있었지만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고의 연극 집단 중 하나라는, 그 집단의 우두머리를 모신다는 명목으로 마치 집단 최면이라도 걸린 듯이 각자에게 일어난 일과 목격한 일을 모른체하며 지냈다"고 말했다.

김 씨가 성폭행 당하기 몇 년 전에도 김 씨 선배가 이윤택의 안마 사실을 폭로하고자 P일보에 제보했지만 기자 출신인 이윤택에게 오히려 이런 제보가 있었다고 연락이 가 극단에 큰 회오리만 불고 곧 흐지부지 무마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논란의 장본인 이윤택은 1952년 부산에서 태어나 고교시절 처음 연극을 접했다. 고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부산일보 기자 시험에 뽑혀 6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1986년 연희단거리패를 창단하고 연극인의 길에 들어선 뒤 연극계의 거장으로 불렸다. 서울예대, 성균관대, 동국대 등에서 교수로 겸임한 바 있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