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지난 14일 뇌물수수 등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유일하게 인정한 혐의는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10만달러 수수 혐의다. 이 외에 이 전 대통령은 차명재산, 국가기록물 유출 등 혐의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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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대통령이 인정한 국정원 특활비 10만달러 수수 혐의는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검찰 조사에서 자백한 내용이다. 당시 김 전 실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이 돈을 받아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둔 김윤옥 여사 보좌진에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측에 돈을 받은 것은 자신이고 김 여사가 아니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전 대통령은 돈의 사용처를 ‘대북공작금’과 관련해 나랏일 하는데 썼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대통령이 국정원 특활비 10만달러 혐의를 유일하게 인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법조계 이 전 대통령의 이 같은 진술은 ‘뇌물수수’ 혐의를 피하는 동시에 김 여사를 검찰 수사선상에서 배제시키기 위한 전략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국정원 특활비는 명확하게 사용처가 정해지지 않은 돈이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이 전 대통령이 특활비 사용처를 나랏일, 특히 ‘대북공작’에 쓰였다고 진술해 법적인 처벌을 피하려 한다고 분석한다.

일각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등을 돌린 김 전 실장을 의식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수사 과정에서 사건 관련인들이 상반된 주장을 할 경우 수사기관은 누구의 말이 맞는지 가리기 위해 사건 관계자들을 불러 대질한다. 검찰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것으로 알려진 김 전 실장이 대질조사에 나설 경우 불리한 증언이 쏟아질 것을 우려했다는 주장이다.

이 전 대통령은 이 외에 자신에게 제기된 모든 혐의를 ‘모르쇠’로 일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이 제시하는 증거에도 “알지 못한다”, “실무선에서 한 일이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차명재산 의혹이 제기되는 도곡동 땅 판매대금 중 67억원을 형 이상은씨에게 받아 논현동 사저를 건축했다는 혐의에는 “빌린 돈”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스 소송비 대납 관련 내용이 적힌 청와대 문건이 이 전 대통령 소유인 영포빌딩에서 발견된 것에 대해서는 “조작된 문건”이라고 주장했다고 알려졌다.

한편,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 여사를 조사할지를 두고 고심에 빠졌다. 이 전 대통령이 국정원 특활비 혐의를 일부 인정했고, 김 전 실장도 김 여사에 돈을 전달했다고 주장해 사실관계를 따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뿐만 아니라 김 여사는 이팔성(74)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이 전 대통령에게 건넨 20억원 중 일부를 받았다는 정황도 검찰에 포착됐다. 이 전 대통령의 사위 이상주(48) 삼성전자 전무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이팔성 전 회장 측으로부터 받은 수억원을 김 여사 측에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에 이어 김 여사까지 검찰이 소환 조사할 경우 ‘정치보복’ 프레임이라는 부담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 검찰이 권양숙 여사를 두 차례 소환한 것과 비교될 수 있어 정치적 부담이 상당하다.

실제로 검찰은 그동안 이 전 대통령 관련 사건을 수사하며 그의 측근과 가족을 소환해 조사를 벌였지만 김 여사만은 소환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들은 김 여사의 조사 여부에 대해 “아직 검토하지 않았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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