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나영 기자] “생활터전을 박살내는거지”

26일 오후 5시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역에 위치한 통합판매대 내부. (사진=김나영 기자)
26일 오후 5시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역에 위치한 통합판매대 내부. (사진=김나영 기자)

지하철 2호선 잠실역 승강장에서 3년째 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순자(56·가명)씨는 26일 오후 5시 폐점을 두시간 앞두고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교통공사가 전날 “2020년까지 지하철 1~8호선 승강장에 설치된 통합판매 151대와 자판기(음료수자판기 404조·스낵자판기 28대)를 철거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서울시의회 업무보고에 발표한 '승객 공간과 동선 확보를 위한 승강장 비움과 통합' 계획에 따르면 공사 측은 현재 공실인 통합판매대 25대를 우선 철거하고, 운영 중인 통합판매대에 대해서는 계약이 끝나는 대로 순차적으로 철거할 예정이다.

 

지하철 매점 운영 측 “기사로 철거 소식 접해”

서울교통공사 조례시설물 담당자에 따르면 계약 기간이 가장 짧게 남은 통합판매대는 2호선 잠실역, 4호선 회현·수유역 등으로 내년 2월 28일 계약이 종료된다. 기자가 26일 오후 세 곳을 방문한 결과, 두곳은 매점 철거 방침에 대해 몰랐고 한곳은 기사로 접했다며 황망한 기색을 보였다. 잠실새내 방면으로 향하는 잠실역 승강장에서 매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통합판매대를 운영하는 이 씨는 “오늘 신문 기사를 보고 철거 소식을 알았다”며 “매점이 하찮아 보일지 몰라도 여기서 장사하는 사람 뿐 아니라 신문 갖다 주는 사람 등 여럿의 생계가 달려 있는데 나가 죽으라는 건지 황당하다”고 말했다.

기자와 이야기하는 30분 동안 잠실역 통합판매대를 찾은 시민은 3명. 전날에 이어 서울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면서 손님들은 마스크를 찾거나, 커피우유·생수 등 음료를 구매했다. 이씨는 “오늘 하루 종일 5만원 팔았다”며 “대합실에 편의점이 들어서고, 종이 신문을 안 사면서 매출이 반토막 났다”고 말했다. 그는 “아가씨들 스타킹 올 나가거나, 나이 드신 분들 목이 타 물 한 모금 마시고 싶을 때 밖에 나가면 얼마나 헤매냐”고 되물으며 “비좁고 공기도 안 좋은 곳에서 혼자 종일 일해봐야 교통비밖에 안 나오지만 경기가 좀 풀리면 나아질까 기대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통합판매대는 ‘서울특별시 공공시설물 내의 신문·복권판매대, 매점 및 식음료용 자동판매기 설치 계약에 관한 조례’에 따라 장애인, 65세 이상 노인, 한부모 가족의 모 또는 부, 독립유공자가족 등을 대상으로 공모추첨 방식으로 운영자를 선정하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134개소 통합판매대 중 58.2%(78개소)는 65세 이상 노인이, 34.3%(46개소)는 장애인이, 7.5%(10개소)는 한부모 가정이 운영 중이다. 이씨는 “요즘 대학 나와도 취업하기 힘들지 않냐”며 “여기는 정말 밑바닥 생활하는 사람들인데 이마저도 없어지면 어떻게 하냐”고 말했다.

 

26일 오후 4시 서울 지하철 4호선 회현역에 위치한 통합판매대 (사진=김나영 기자)
26일 오후 4시 서울 지하철 4호선 회현역에 위치한 통합판매대 (사진=김나영 기자)

서울교통공사 “임차인과 협의해 승강장에서 대합실로 이전할 계획”

서울교통공사가 통합판매대를 철거하려는 이유는 승객 안전과 동선 확보 때문이다. 공사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최근 전동차 고장으로 승객 분들이 한꺼번에 하차를 한다든지 지하철 스파크가 발생해서 열차가 지연되는 등 승강장 위급 상황이 몇 번 발생했다”며 “승강장에 설치된 통합판매대나 음료수자판기 등 조례시설물이 승객 이동에 불편을 끼치고 비상시 대피하는데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개선할 목적으로 승강장 비움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지하철 조례시설물 철거 결정 과정에서 시민이나 점주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없었다는 것이다. 공사 관계자는 “통합판매대 등 조례시설물에 대해 설문 조사를 진행하거나, 민원이 제기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시민들은 통합판매대 철거 소식에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26일 오후 5시 잠실역 통합판매대에서 미세먼지 마스크를 구입한 김 모(24·여) 씨는 “매점 때문에 지하철 타기 불편하다고 느낀 적은 딱히 없는 것 같다”며 “요즘 워낙 편의점이 많아져서 지하철 매점을 자주 이용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급한 일이 생길 땐 매점이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잠실역 통합판매대를 취재하는 동안 일부 시민은 매점 아주머니에게 화장실, 출구 위치 등을 물었다.

서울교통공사는 승강장 비움 사업과 관련해 임차인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현장의 반응은 달랐다. 공사 관계자는 “공사가 일방적으로 매점을 폐쇄하는 건 절대 아니다”라며 “현재 임차인들과 협의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 협의해서 승강장에 설치된 통합판매대를 대합실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매점 운영자 가운데 통합판매대 철거 방침을 기사로 접한 분도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승객 공간과 동선 확보를 위한 승강장 비움과 통합' 사업에서 정작 '통합'이 빠졌다는 지적이 현장에서 제기되면서 향후 통합판매대 이전·철거 과정에서 보다 긴밀한 협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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