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수도권 청년들의 주거빈곤 문제는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다. 대낮에도 햇볕이 들지 않는 쿰쿰한 지하방에서, 건물 꼭대기에 간신히 얹힌 옥탑방에서, 콩나물시루 찐듯 빼곡한 고시원에서 청년들은 집 없는 설움을 절절히 겪었다.

(사진=김혜선 기자)
민달팽이유니온 구성원들. 맨 오른쪽이 이한솔 사무처장. 그 옆은 최지희 위원장. (사진=김혜선 기자)

그렇게 집 없이 고되게 살아가는 ‘민달팽이’의 삶을 함께 이겨내고자 비영리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은 지난 2011년 탄생했다. 수도권 대학생 8명이 모여 시작한 민달팽이유니온은 현재 조합원 수 800여명을 훌쩍 넘는 어엿한 시민단체로 자리잡았다.

민달팽이유니온이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다. 주거정책 제안이나 캠페인을 벌이는 등 시민단체로서의 역할과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이라는 비영리 주거모델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이 협동조합은 청년들이 함께 집을 임대해 합리적인 가격에 청년들에게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모인 월세는 또다른 주택을 구입해 공급하는 식이다. 현재 협동조합의 임대주택인 ‘달팽이집’은 서울과 부천, 전주에 총 10호가 공급돼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그동안 조명되지 않던 청년 주거빈곤 문제는 명백하게 사회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 행복주택이나 기숙사 신설 지원 등 주거지원 정책이 쏟아졌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기존에 주택을 가지고 있던 인근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친 것.

특히 최근 서울 한 아파트 단지에 청년임대주택 건립을 반대하며 붙은 공고문은 이 같은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공고문에는 서울시에서 추진 중인 ‘역세권 청년주택’을 두고 ‘5평짜리 빈민주택’으로 표현하며 임대주택이 들어설 경우 교통 혼잡 문제와 조망권·일조권 침해, 빈민 슬럼화, 우범화 등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비슷한 사례로 고려대, 한양대 등 대학 기숙사 신축 역시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임대 소득이 줄어든다는 것이 반대 이유다.

진정한 청년 주거복지가 실현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9일 <뉴스포스트>는 민달팽이유니온 이한솔 사무처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공공주택 공급에 지역이기주의 현상이 심한데.

공급위주 정책의 명확한 한계다. 고려대 기숙사 신축 문제만 보더라도 기초 지자체에서 신축 결정을 내는 것부터 주민 반대에 부딪쳐 자꾸 반려된다. 덮어놓고 ‘신축 하겠습니다’라고 할 게 아니라 실제로 그 정책이 실행될 수 있는지 디테일하게 체크하면서 들어가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역갈등 요소를 제외해도 공급위주 정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책이 탁월하다고 해도 대다수 청년들이 겪고 있는 주거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은 못한다. 기존의 정책들이 실효성이 있으려면 몇 가지 갖춰야 될 조건이 있다.

- 실효성을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공공주택도 있지만 청년 1인가구의 주거 대부분은 민간시장에서 공급된다. 이 민간시장을 어떻게 통제하고, 거기에 맞물려 공공주택 공급을 어느 정도 할지 분석해서 들어가야 한다.

예를 들면 뉴스테이는 민간 중심 정책이다. 기업형 임대주택이라고도 하는데 임대기간을 최소 4년~8년으로 정해 장기 거주를 보장해준다. 그런데 세금 감면, 금융 혜택에 건폐율·용적률까지 완화해주고 8년 이후엔 판매할 수도 있다. 분양이 안 되면 정부가 사준다.

이런 정책이 실효성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물음표가 달린다. 단순한 물량공급 자체는 적절한 정책이 될 수 없다. 공공성의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 만약 민간시장 재원을 활용하고 싶다면 주택 기준을 엄격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뉴스테이처럼 널널하게 기준을 두면 결국 민간시장에 특혜를 주는 효과만 나올 수 있다. 실제로 가격적인 부분에서는 청년들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실효성 없는 정책이 뽑아지고 있는 것이다.

- 공공성을 위한 제한을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공공성의 기준을 엄격하게 둔다면, 공공주택 가격을 시장가격의 몇 퍼센트로 제한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장기임대주택 ‘시프트’부터 정해진 것이 ‘시장가격 80%’라는 기준인데 현재 수도권 주택의 시장가격이 너무 높다보니 이것이 실효성 있느냐는 토론이 필요하다.

현 박원순 시장의 역세권 청년임대주택은 공공성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임대료는 주변 시세의 60~80% 수준, 임대보증금 비율도 30% 이상으로 의무화해 월임대료 비율을 억제했다. 그런데 8년 뒤에는 분양전환이 가능하다. 8년 뒤에는 완전히 시장에 개방하겠다는 얘긴데, 사실상 그 이후 대책이 없는 거다. 임기 내에는 물량을 많이 확보할 수 있지만 그 이후 대책은 없다. 이 부분도 토론이 필요한 단계라고 본다.

- 장기적 관점에서 청년 주거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월세 상한제와 세입자의 계약갱신 청구권이 기본으로 깔려있어야 어떤 정책이라도 장기적으로 잘 풀어 낼 수 있다고 본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은 이미 이러한 정부 규제들이 있고, 일부에서는 임대료 규제까지 하고 있다.

임대업자들의 반발은 클 수 있다. 그런데 헌법에 있는 토지공개념이 이런 데서 출발하지 않나. 땅은 추가적으로 생산될 수 없는 재화이고 집은 인간 삶의 필수재인데 마치 비트코인처럼 투기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가 제한은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지방선거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눈여겨보는 청년주거 정책이 있는지.

아직 각 선거캠프에서 나온 주거정책들은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다. 주거문제를 완화하겠다는 캐치프레이즈만 있을 뿐, 구체적인 공급 계획이나 제도개선 계획은 없다. 때문에 아직 유니온이 정책 분석을 할 시기는 아닌 것 같다.

사실 주거정책은 어느 당이던 전부 낼 것이다. 청년 주거정책은 특히 유사한 정책이 많다. 안타깝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정책성이 될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인물 위주의 선거가 될 것 같다. 유니온은 이 과정에서 청년 주거문제의 토론 수위를 높이고 정책 실효성을 제고하는 역할을 한느 것이 목표다.

- 올해로 민달팽이유니온 7년째 인데. 금년 활동계획은.

일단 오는 6월13일에 지방선거 관련 활동을 집중적으로 할 계획이다. 지방선거 이후에는 지방 달팽이집과 관련해서 연구를 진행하려고 한다. 지방은 수도권과 달리 집값이 비싸지 않은데도 달팽이집 수요가 꾸준히 있다. 때문에 이 수요가 왜 필요한지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유니온에서는 주거비 부담이 아니더라도 달팽이집의 형태나 운영방식을 필요로하는 청년들이 많이 있다고 보고 있다. 어딜 가나 열악한 세입자의 권리 신장을 위한 차원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또 넓게 말하면 공동체적인 요소를 바랄 수도 있겠다. 좁은 방에 닭장처럼 나눠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 달팽이집은 이런 부분에서 청년들의 수요를 충종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활동계획은 달팽이집 형태에 관한 고민 중이다. 가령 장애인 청년과 비장애인 청년들이 함께 거주할 수 있는 주거모델을 개발한다던지, 이런 식의 사업 확장 준비를 하고 있다.

- 활동에 어려움은 없는지.

제가 유니온을 전부 운영하는 게 아니라서. 굳이 꼽자면 청년 주거문제가 더디게 변한다는 게 아쉬움이다. 또 청년단체다보니 아무래도 연령대가 어리다. 실제로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도 사회에서 인정받는 게 쉽지 않다. 그게 가장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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