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미투 그 후①] 국회 수석 여비서관은 왜
[미투 그 후①] 국회 수석 여비서관은 왜
  • 김나영 기자
  • 승인 2018.04.13 15: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성폭력상담회 주최 '피해와 생계 사이, 직장 내 성폭력을 말하다' 집담회

안희정과 같은 날 밝혀진 국회 성폭력 피해자

‘기사 생산자’가 조회수 3짜리 게시판에 고백

[뉴스포스트=김나영 기자] 3월 5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속적으로 정무비서를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연극계를 중심으로 타올랐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의 횃불이 정치계로 확산되며 큰 파장이 일었다. 그만큼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같은 날 국회 내 성폭력 피해를 고백한 또 다른 미투 증언이 있다. 당시 현직 5급 비서관이 조회수가 통상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국회 홈페이지의 국민제안 게시판에 실명을 밝히고 경험담을 알린 것이다. 그는 “2012년부터 3년간 근무했던 의원실에서 성폭력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생계형 보좌진이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경력이 쌓일 때까지 사직서를 낼 수 없었고, 함께 일한 직원들의 평판이 다음 채용 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법적 절차를 밟을 수도 없었다”고 밝혔다.

12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에서 '피해와 생계 사이, 직장 내 성폭력을 말하다' 집담회가 열렸다. (사진=김나영 기자)
12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에서 '피해와 생계 사이, 직장 내 성폭력을 말하다' 집담회가 열렸다. (사진=김나영 기자)

“5급 수석 비서관이, 조회수가 2~3도 안 되는 국회 게시판에 성폭력 피해를 고백한 것을 보면서 와르르 무너져 내렸어요.” 이보라 국회 여성정책연구회 대표는 ‘피해와 생계 사이, 직장 내 성폭력을 말하다’ 집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12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로 ‘피해와 생계 사이, 직장 내 성폭력을 말하다’ 집담회가 열렸다. 미투 운동을 계기로 각 노동현장에서 직장 내 성폭력이 어떤 권력 구조로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성폭력 근절을 위해 필요한 대안을 논의하고자 기획된 자리다.

이날 집담회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오매가 진행했으며,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활동가 이가희, 페미니스트 연극인연대 황나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회 오름, 국회 여성정책연구회 대표 이보라가 발표했다.

이보라 대표는 “국회 보좌진은 기사를 생산하는 사람”이라며 “정부로부터 자료를 입수해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방식으로 기자와 사전에 논의해서 기사의 방향이나 각도를 설정하고 언론에 보도를 만들어낸 뒤 그날 저녁에 보도가 됐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기사를 생산하고 법도, 정책도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여러 수단을 가지고 있는 5급 비서관이 얼마나 말할 공간이 없었으면 거기에 올렸을까 하는 비참함이 저를 무너지게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런 문제를 말할 곳이 없다”며 “기껏해야 국회 대나무 숲에 익명으로 고발하는 것이 현재 구조”라고 말했다.

 

국회 여성 보좌진으로 산다는 것

국회 보좌관이 성폭력 등 업무상 위력에 취약한 이유는 보좌관의 권리·의무에 대한 규정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의원 보좌관의 법적 근거는 ‘국회의원수당 등에 관한 법률’(이하 국회의원수당법)에 있다. 국회의원수당법 제9조 제1항에 따라 국회의원은 입법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보좌관 등 보좌직원을 둘 수 있다. 법에 명시된 보좌관에 대한 규정은 ‘정수’, ‘결격사유’, ‘당연퇴직 사유’, ‘친족 등 채용사실의 신고 및 공개’가 전부다.

이 대표는 “하나의 국회의원실이 하나의 중소기업처럼 독점적으로 운영된다”며 “이를 감시하거나 보좌진 등이 권리침해를 당했을 때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가 전무하다”고 밝혔다. 이어 “해고의 경우에도 기업은 한달 정도 예고제를 하는데 보좌관은 아침에 해고통보를 받으면 저녁에 짐 싸서 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의원의 기분이라든지 아주 사적인 이유로, 혹은 이유도 모르는 채 해고되는 사례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국회 보좌관 중에서도 여성 보좌관은 업무상 위력에 더욱 노출돼 있다. 국회가 압도적인 남초 집단이기 때문이다. ‘3·8세계 여성의 날 기념 토론회’ 자료에 따르면 20대 국회 여성의원 비율은 17%이지만, 여성보좌관 비율은 6.7%에 불과했다. 19대 국회에서도 여성보좌관 비율(6.8%)이 여성 의원 비율(16.7%)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이러한 경향은 조사를 시작한 16대 국회(여성의원 비율 5.9%, 여성보좌관 비율 2.8%)부터 꾸준히 이어졌다. 여성 의원조차 여성 보좌진을 적극적으로 기용하지 않는 것이다.

 


새 권력지형 역사 쓸 때

“근처에 떡볶이집, 파스타집이 없을 정도로 국회가 보수적”이라는 이 대표는 “국회의원이 늘 유권자를 만나고 변화를 꾀할 것 같지만 정작 내부적 모순에 대해서는 개선할 구조와 절차가 없어 변화가 느리다”고 말했다. 이어 “국감 주요 질의내용이 여성 임원비율이 왜 이렇게 적냐 하는 문제인데 정작 국회에서 여성 비율이나 처우 문제에 대해 둔감했던 것 아닌가 하는 내부적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2년 뒤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또 한번 보좌진 면직 러시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한다”며 “국회의원이 지방선거 앞두고 지역구를 관리해야 한다는 이유로, 여자니까 술 잘 못 먹고 밤 늦게까지 다닐 수 없다고 여성 보좌관을 많이 해직한다”고 밝혔다.

또한 “국회에서는 공적인 언어를 남성들이 독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정당화한다”며 “고도의 정치적 행위, 정무적 판단, 의정 활동 등 내용의 주체와 객체, 피해와 가해라는 사실을 알 수 없게 하는 모호한 말로 상황을 덮어 버려 폭력 행위가 아무것도 아닌 것, 말해지지 않아야 될 것으로 여겨지는 상황이 아주 많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일련의 사태를 통해서 미투 운동이 이어지면서 정치적으로 새롭게 각성이 되고, 새로운 정치적 주체들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며 “권력의 속성을 제대로 발견하고 분석해서 새로운 권력 지형의 역사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nwhykim@nate.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