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선초롱 기자] 병원에서 채취된 혈액이 ‘무면허’ 임상병리사 손을 거쳐 검사가 진행됐다. 신빙성에 의심이 가는 이 같은 일이 GC녹십자의료재단에서 일어났다. 재단 내에서 병리업무를 맡은 임상병리사들 중 일부가 무면허 상태였던 것인데, 재단 측은 관리 업무만 맡겼고 담당 보건소에서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작 재단 측은 관련자들을 ‘전보’ 조치, 해명과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녹십자)
(사진=녹십자)

검사 신뢰도 추락

보건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GC녹십자의료재단(이하 녹십자재단)에서는 병리업무 담당자 중 일부가 ‘무면허자’인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임상병리 업무는 검사 업무에 필요한 기계, 기구 시약 등의 보관, 관리사용, 가검물 등의 채취·검사, 검사용 시약의 조제, 혈액의 채혈 제제·제조·조작·보존 공급 등 비전문가에게 맡기기 어려운 중요 업무들이 즐비하다. 이에 대학교 및 전문대학에서 임상병리학을 전공한 후 국시원에서 시행하는 임상병리사 국가시험에 합격해 보건복지부 장관의 면허를 받은 자만이 임상병리 업무를 담당할 수 있다. 

그럼에도 녹십자재단은 임상병리 무면허자 2명을 병리업무에 투입해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무면허로 자로 드러난 직원은 야간 통합검사팀 소속 과장 2명으로, 병리검사 업무 경험은 각 18년과 2년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들 무면허 직원들은 혈구검사 결과 판독, 검체 분류 작업, 일반 혈액 검사, 환자 생명과 직결된 크로스 매칭(수혈 적합성·Cross matching) 검사 등 임상병리 핵심 업무도 수행해 왔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녹십자 재단은 이번 논란에 대해 “통합검사팀 소속 직원 중 임상병리사 면허가 없는 직원이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검사 등 임상병리사 업무를 진행한 것이 아니라 운반, 관리, 단순 검체 분류 등의 업무만 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통합검사팀에는 면허가 있는 임상병리사뿐만 아니라 관리를 하는 인력 등도 필요한데 그런 일을 하던 직원”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7일에는 녹십자재단 관할 보건소인 기흥보건소의 현장 조사도 이뤄졌다. 기흥보건소는 무면허자의 임상병리 근무 사실을 확인했으나 재단 측에 법적 책임은 묻지 않기로 했다. 

기흥보건소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무면허자로 확인된 직원들의 업무를 실제로 살펴본 결과, 혈액샘플이 들어오면 정리하는 일, 업무분장, 운반 등을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들이 실제로 임상병리사 업무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현장을 목격자나 사진 등 증거가 없기 때문에 수사를 의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들 직원은 처음 입사할 때부터 검체분류요원으로 들어온 것”이라며 “하루에 재단으로 들어오는 검체 수는 8000건으로 이를 분류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병리업무가 아닌 관리업무만 했다는 사측 해명을 담당 보건소가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그대로 수용한 셈이나, 녹십자재단를 둘러싼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논란이 불거진 직후 녹십자재단이 업무상 불법이 없다던 해당 직원들을 타부서로 전보 조치했기 때문이다. 

녹십자재단은 대학병원, 종합병원, 특수병원, 의원 등의 임상검사를 대행해 주는 전문 의료기관으로, 4월 현재 전국 각지 병·의원과 연구기관 2500여 곳의 검사 의뢰를 진행하고 있다. 하루 접수되는 의뢰건수만 8000여건 이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외 신인도가 생명인 검사 대행 의료재단에서 무면허자 검사 대행이란 상식 밖의 의혹이 제기됐고, 문제가 없다는 해명과 달리 이를 서둘러 감추려고 만 모습에 재단에 대한 불신만 높아만 가는 모습이다. 

 

경개연, 녹십자 ‘내부거래’ 주목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에 초점이 맞춰졌던 일감 몰아주기 조사를 중견기업까지 확대한다고 밝힌 가운데, GC녹십자그룹의 내부거래 현황이 새삼 도마에 오르고 있다.

GC녹십자그룹은 녹십자홀딩스를 정점으로 하는 계열사들이 수직적 출자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녹십자홀딩스는 녹십자, 녹십자셀, 녹십자이엠, 녹십자헬스케어, 지씨웰페어, 녹십자웰빙 등 국내외 26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녹십자홀딩스는 최대 주주는 지분의 11.26%를 보유한 허일섭 녹십자 회장이다. 허 회장 외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46.54%로 오너 일가는 녹십자 그룹으로부터 수십억원의 배당금을 가져가고 있다. 

이중 일감몰아주기 수혜기업 거론되는 곳은 녹십자엠에스와 녹십자이엠이다.

진단시약 및 의료기기 전문업체 녹십자엠에스는 녹십자가 최대주주(42.1%)이며 오너 일가 보유 지분도 상당하다. 허일섭 회장(17.19%)을 포함한 특수관계인의 지분(친인척, 관계사 임원 등)은 25.1%에 달한다. 

녹십자엠에스는 한때 내부거래 비중이 100%까지 치솟으며 논란을 샀다. 내부거래 비중은 ▲2010년 100% ▲2011년 22.66% ▲2012년 20.26% ▲2013년 22.46% ▲2014년 18.78% ▲2015년 19.02% ▲2016년 33.8%으로 나타났다.

바이오 엔지니어링 종합건설기업인 녹십자이엠도 매출액 절반 이상을 그룹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6년간 녹십자이엠의 내부거래 비중은 ▲2010년 57.28% ▲2011년 52.14% ▲2012년 67.42% ▲2013년 59.32% ▲2014년 72.04% ▲2015년 80.48% ▲2016년 64.7%으로 나타났다. 녹십자이엠의 지분 100%를 녹십자홀딩스가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너일가가 간접적인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난해 이들 기업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사례를 지적하기도 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대규모 기업집단 이외의 집단에서의 일감 몰아주기 사례분석 보고서'를 통해 녹십자엠에스와 녹십자이엠도 회사기회유용과 일감몰아주기 헤택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녹십자 관계자는 “내부거래 비중이 축소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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