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제야 '미투' 하냐구요?

성폭력 문제는 아직도 가해자 중심주의

[뉴스포스트=김나영 기자] ‘미투 운동’으로 수년간 묵혀 있던 성폭력 피해 경험이 말해지면서, 혹자는 의아해한다. 왜 그때 해결하지 않고 이제 와서 문제제기하냐고. 하지만 여전히 인터넷 검색창에 ‘성폭력 변호사’를 검색하면 피해자를 위한 대응책, 법률 상담, 변호사 소개보다 가해자를 위한 게시물이 압도적으로 많다. ‘술 취한 상태에서’, ‘무고하게 연루된’, ‘악의적으로 고소한 성폭행’, ‘억울하게 처벌받지 않으려면’ 등의 단어로 점철된 법무법인 홈페이지, 블로그 포스팅, 지식인 등은 성폭력 처벌을 앞둔 가해자에게 ‘역고소’라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실제로 법무법인 A는 홈페이지에 1630건의 성공사례를 실명만 지운 채 공개해 가해자들에게 가이드라인이 되고 있다. 2017년에는 법무법인 B가 아동 성추행, 강간 범죄, 기타 성범죄 등을 예시로 “부당한 처벌을 무죄, 불기소, 집행유예로 이끈다”고 광고해 시민의 문제제기로 광고판을 철거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김보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은 “변호사 시장이 상업화되면서 성폭력은 어느 범죄보다 ‘돈이 되는’ 분야로 선호되고 있다”며 “성폭력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역고소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19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의심에서 지지로, 역고소를 해체하다' 집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나영 기자)
19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의심에서 지지로, 성폭력 역고소를 해체하다' 집담회가 열렸다. (사진=김나영 기자)

19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로 ‘의심에서 지지로, 성폭력 역고소를 해체하다’ 집담회가 열렸다. 미투 운동으로 성폭력 피해 말하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수많은 피해자들이 가해자에 의해 무고, 명예훼손 등 역고소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 포럼은 성폭력 가해자와 법담론이 피해자를 괴롭히고 위협했던 역고소에 대항해 그 현황과 실체, 착각과 통념을 해체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날 집담회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노선이가 사회를 맡고,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 김보화,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허민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장임다혜, 한국여성의전화 인권문화국 활동가 재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김홍미리가 발표했다.

김 연구원은 “강용석이 1000여명의 네티즌을 고소하고 합의금을 요구하면서 고소가 희화화, 만연화, 일상화됐다”며 “이제 성폭력 피해자는 합의를 하면 꽃뱀이 되고, 합의를 안 해주면 전과자가 되는 위치가 됐다”고 말했다.

또 “최근 몇년간 블로깅 광고를 보고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오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남초 카페에서 변호사 사무실 직원이나 사무장이 상주하면서 답변을 다는 방식으로 영업행위를 하고 있다”며 “성폭력 가해자의 ‘대응법’은 불법과 합법 사이의 경계에서 ‘영업수단’이 되고, 일반인들에게 ‘학습’되고 있다”고 말했다.

 

소송 앞두고 관련 단체 기부해 감형받는 '꼼수'까지

김 연구원은 “변호사 시장이 과열되면서 성폭력 고소에 대한 대응을 넘어 역고소까지 부추기고 있다”며 “피의자가 미성년자일 경우 소년부 송치로 끝날 일도 ‘형사 재판에 회부되지 않게 해주겠다’며 의뢰비를 요구하거나, 턱없이 높은 상담비용을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또 “한 건으로 가능할 사건을 몇 건으로 쪼개서 분쟁을 양산하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수임료를 챙기는 돈벌이 수단으로 몇몇 변호사들이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폭력 가해자가 형을 감량받을 목적으로 성폭력 관련 단체에 후원하는 방식을 활용하기도 한다. 전국성폭력상담 협의회 소속 단체들이 2017년 9월 현황조사를 한 결과 총 7기관에서 87차례의 기부금을 내겠다고 제안을 받았고, 14건은 납부가 확인됐다. 납부가 확인된 기부금 중에는 변호인이나 사무장이 후원하면 감형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줘 기부했고, 변호인이 기부문의 및 기부금영수증 즉시 발급 여부를 문의한 사례도 4건 있었다.

이는 가해자의 성폭력 단체 후원‧기부가 양형을 낮추는 관행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2014년 카메라등이용촬영으로 기소된 사건의 재판에서 1심은 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지만, 2심에서는 선고유예를 판결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정기후원금을 납부하면서 다시는 이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판시했다.

 

역고소, '돈벌이' 수단 아니라 '윤리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김 연구원은 “가해자가 2개월 단위로 고소하면서 피해자가 일상을 유지하기 힘들게 하거나, 전략적으로 차근차근 고소를 진행해 긴 기간 동안 미제 사건으로 인식되게끔 해 피해자들의 입을 막는다”며 “피해자는 공포감과 지침으로 지속적으로 대응하고 연대하지 못하는 데 비해 가해자자들은 법인과 협업하거나 남성연대를 토대로 역고소를 강화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대안으로 변호사 내부적으로 자정 역할을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현행 변호사법 23조 2항에 따르면 ‘객관적 사실을 과장하거나’, ‘소비자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내용의 광고’, 또는 ‘변호사의 공공성이나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것’ 등에 대해 제지하고 있다. 또 변호사법 88조는 법조윤리를 확립하고 건전한 법조풍토를 조성하기 위하여 법조윤리협의를 두도록 되어 있고, 89조(윤리협의회의 기능 및 권한)에는 '법조윤리 실태의 분석과 법조윤리 위반행위에 대 한 대책' 등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김 연구원은 "사건 수를 늘리고, 합의금을 유도하고, 소모적이고 악의적인 역고소를 부추기고 남용하는 현상들에 대해서는 변호사 윤리 차원에서의 규율과 자발적인 노력이 요구된다"며 "대한변호사협회 회칙이나, 지방변호사회 내부 지침, 변호사 윤리장전 등에 좀 더 구체적인 윤리적 지침들을 적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성폭력 역고소 피해자에 대한 정부 차원에서의 법적·료적 지원 확대와 더불어 변호사 교육연수에 인권, 젠더감수성 교육을 반드시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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