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북한이 기존의 핵·경제 병진노선을 폐기하고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겠다는 신전략을 채택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전면중단하고 풍계리 핵실험장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북한은 지난 20일 김정은 주재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결정서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함에 대하여’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결정서에는 사실상 핵동결 조치들이 담겼다. △주체107(2018)년 4월 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켓(ICBM)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 핵 시험장(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할 것 △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 등이다.

청와대는 즉각 성명을 내고 “전 세계가 염원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환영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조만간 있을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한 매우 긍정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 역시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의 핵동결 소식을 전하며 “모두를 우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핵동결 조치를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은 지난달 대북특사단의 방북 당시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이라는 전제조건을 달고 추가 핵실험이나 미사일 시험발사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번에는 전제조건 없이 핵무력 중단을 꺼내들었다.

이번 북한의 발표가 이전보다 진전된 비핵화 조치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의 발표는 미국에게 큰 위협으로 간주되는 ICBM 능력의 완성을 포기하겠단 의미다. 국제사회와의 타협 의지를 명백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도 이날 전원회의 관련 분석자료에서 북한이 ‘핵사찰’까지 시사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원은 “국제 핵레짐에서 ‘투명성 담보’라는 표현은 통상적으로 사찰을 통한 검증을 의미한다”며 “핵실험장에 대한 사찰 (수용) 가능성을 암시해 과감한 비핵화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견이 분분하다. 과거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파기한 전적 때문이다. 남북은 지난 1991년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채택했지만 2년만에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고, 이후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로 비핵화를 약속한 북한은 2003년 또다시 NPT 탈퇴를 선언했다. 다음에는 중국, 러시아, 일본이 뛰어들어 베이징 6자회담이 2005년 9월19일 열렸고 북한은 영변 냉각탑 폭파 장면을 공개하는 등 핵폐기 수순에 돌입했지만 이후 IAEA 핵사찰 방식에 반발하고 5차례 추가 핵실험을 강행하며 흐지부지됐다.

이에 미국 의회 의원들은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최대 압박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화당 소속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은 22일(현지시간)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누가 들어가서 그(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를 매혹하면 된다는 생각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무언가 진전을 볼 수 있길 바라지만 큰 장애물이 있다”며 “분명 김정은도 홍보에 관해 배웠을 테다. 그는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발표함으로써 대화를 위해 자신에게 좋게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튼 공화당 상원의원도 이날 “(북한의 이번 발표는)부객 시험보다 낫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며 “김정은의 발표는 쉽게 뒤바뀔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 운반)매개체나 단거리 탄도미사일에 대해서는 전혀 발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미국 내 여론을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에 관한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먼 길이 남아 있다”고 표현한 바 있다. 북한의 핵동결 선언이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결론을 낼 때까지는 먼 길이 남았다는 것. 트럼프 대통령은 “어쩌면 일이 잘 해결될 수도 있고 어쩌면 안 그럴 수도 있다-오직 시간이 말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일각에서 제기되는 ‘미국은 김정은에게 정상회담 선물을 줬는데 우리가 대가로 받은 게 없다’는 우려에 “북한에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비핵화(세계를 위해 매우 훌륭한 일)와 실험장 폐기, 실험 중단에 합의했다”고 말해 ‘비핵화 합의’까지 언급했다. 이에 외교가 일각에서는 최근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극비 방북 당시 ‘막후 합의’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된다.

한편,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동결 선언이 '비핵화'라는 출구로 이어지기 위해서 치밀한 비핵화 프로세스를 북한에 제안해야한다고 조언한다. 북한이 비핵화 자체에는 합의할 수 있어도 실제적으로 비핵화를 이행하는 단계에서 과거의 실수를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대통령 역시 19일 언론사 대표단 간담회에서 “남북미 간 큰 틀의 합의는 가능하지만 문제는 비핵화 이행에 있다. 디테일에 악마가 있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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