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김정은 갈망하던 “체제보장” 직접 언급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북한이 비난한 맥스선더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종료일인 25일 이후 남북 고위급회담을 비롯한 대화 재개가 이뤄질 것으로 관측한다”

(그래픽=김혜선 기자)
(그래픽=김혜선 기자)

22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단독 정상회담에서 한 말이다. 23일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한미정상회담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은 6월12일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며 이같은 내용의 문 대통령 발언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 사전 모두발언에서도 북한의 태도변화와 관련한 질문에 “북미정상회담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걱정하는 게 있는데, 저는 예정대로 제대로 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신중한 성격의 문 대통령이 구체적인 날짜까지 밝히며 남북관계가 다시 완화될 것이라고 단언한 이유는 뭘까.

김정은 갈망 ‘체제보장’

그동안 한반도 정세는 ‘롤러코스터 국면’을 이어왔다. 비핵화 회담을 위해 적극적인 몸짓을 보이던 북한이 급작스럽게 돌변한 것은 지난 16일. 당시 북한은 돌연 한미 공군의 연례적 군사훈련인 ‘맥스선더’를 비난하며 당일 예정돼있던 남북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연기 통보했다.

이에 더해 이날 북한은 외무성 개인 성명을 통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리비아식 비핵화’ 발언을 맹비난하며 북미정상회담을 재고려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북한이 약속을 깨고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에 남측 기자단의 방문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북미정상회담 판이 깨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북한이 문제제기한 △맥스선더 △볼턴 보좌관 등 부분은 모두 체제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요소인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맥스선더 훈련은 미 공군의 최강 스텔스 전투기 F-22가 참여하는 훈련으로, 적 레이더망 뚫고 들어가 핵과 미사일 기지 등 핵심 시설을 정밀 타격할수있다. 이른바 ‘참수작전’ 수행에 가장 적합한 기종인 것. 특히 북한이 지적한 B-52는 핵무기를 운용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다. 다만 B-52는 애초부터 이번 훈련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게 한미 군 당국의 설명이다. 볼턴 보좌관이 주장한 ‘리비아식 비핵화’의 경우, 당시 독재자 카다피가 핵포기 이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전례가 있다.

실제로 북한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성명에서 비핵화를 위해서는 미국이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 공갈을 끝장내는 것’이 선결조건이라고 강조했다. 23일에도 북한은 관영매체인 노동신문 논평 등을 통해 미국의 베네수엘라 경제제재를 언급하며 “주권국가의 제도전복, 정권교체를 노린 미국의 비열한 내정간섭과 반인륜적인 제재소동은 국제사회의 규탄 배격을 면치 못한다”고 주장하는 등 체제안전에 대한 갈망을 드러냈다.

결국 비핵화 담판을 앞둔 북한의 ‘니즈’는 미국의 확실한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 특사로 활동했던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사실상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때도 그런 얘기를 했지만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전을 보장 받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김정은 안전” 육성에 풍계리 문 연 北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북한이 가질 수 있는 체제 불안감의 해소 방안 등에 대해서 논의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북한 도착한 남측 기자단. (사진=뉴시스)
북한 도착한 남측 기자단. (사진=뉴시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북한의 체제보장을 자신의 육성으로 확인해준 것은 상당한 무게를 가진다. 트럼프 대통령의 체제안전 보장 발언은 한미정상회담 전 모두발언에서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이 열리며 나왔다. 그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가 이뤄지면 북한 정권의 안전을 정말 보장할 것이냐’는 한 외신기자의 질문에 “보장하겠다”고 단번에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건 처음부터 보장하겠다고 이야기해온 것”이라며 “김정은은 안전할 것이고 굉장히 기쁠 것이다. 북한은 굉장히 번영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 국민은 아주 열심히 일하는 국민이다. (비핵화가 되면 ) 북한 국민들을 위해서 또 한국을 위해서도 상당히 좋은 일이 될 것”이라며 “한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 대통령이 내 옆에 있다. 이 3국과 내가 대화를 했다. 이 3국 모두 북한을 도와서 북한을 아주 위대한 국가로 만들기 위한 아주 많은 지원을 지금 약속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문 대통령 역시 북미간 ‘수교’를 언급하며 거들었다. 북미수교는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의 최종 관문으로 북미관계가 정상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도 반드시 성공시켜서 65년 동안 끝내지 못했던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룸과 동시에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북미 간에도 수교를 하고, 정상적인 관계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지원 의원은 “이번에 북한의 제일 큰 소득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체제보장을 하겠다고 밝힌 것”이라며 “폼페이오 국무장관 입에서는 나왔지만 트럼프 대통령 입에서 체제보장 얘기는 안 나고 경제지원 얘기만 나오니까 사실상 북한으로서는 좀 자존심도 체면도 구겼던 바 있다”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이게 나왔기 때문에 오늘부터라도 북미 간에 어디선가 대화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협상)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고 본다”고도 전망했다.

실제로 북한은 이날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에 배제했던 남측 기자단 명부를 접수했다. 한미정상회담이 끝난 지 몇 시간 만이다. 한미 정상의 ‘체제보장’ 메시지가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낸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문 대통령이 단언한 대로 한미관계에 다시 훈풍이 불고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앞서 북한은 지난 12일 외무성 공보를 내고 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식에 한국과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5개국 언론에 취재를 허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전날까지 북한은 우리 측 기자단의 명부를 받지 않고 있었다.

북한이 남측 기자단 명부를 수령하면서 공동취재단 기자 8명은 이날 오후 12시30분께 정부가 제공한 특별기를 타고 북한 원산에 2시경 도착했다. 항해 경로는 지난 1월 마식령스키장에서 열린 남북공동훈련 당시 선수들의 방북한 동해 직항로를 이용했다.

한편, 문 대통령의 남북관계 개선, 북미정상회담 개최 자신감은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을 번갈아 만나며 양 측의 의중을 직접 들은 결과로 보여진다. 북한은 미국이 체제보상 약속을 지킬지,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지킬지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과 나눈 ‘도보다리 밀담’ 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식 비핵화는 ‘올인원’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내달 12일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에 ‘장미빛 미래’만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날 정상회담에서 가장 주목받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북미정상회담 연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이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 그렇다면 그것도 괜찮다. 그것이 한동안 열리지 않을 것이란 뜻은 아니다”며 “그러나 6월12일 회담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회담을 열 좋은 기회가 있다”고 북미회담 연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그는 “우리가 원하는 어떤 조건들이 있고 그러한 조건들이 충족될 것으로 생각한다.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회담이 열리지 않겠지만 솔직히 북한과 세계를 위한 위대한 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도 말했다.

북한이 중국과의 정상회담 이후 태도가 변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에게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했다고 보나’는 질문에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두번째 만난 다음에 김정은의 태도가 좀 변했다고 생각한다. 별로 좋은 느낌이 아니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중국을 두 번째 방문하고 떠난 다음에 태도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내가 알 수는 없다. 시 주석은 세계 최고의 도박사, 포커페이스 플레이어”라며 “어쨌든 만난 다음 태도가 변한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거기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일어났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시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에 대해서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비핵화 방식에 대해서는 “한꺼번에, 일괄 타결(All-in-One)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다. 그러면서도 “완전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그는 “한꺼번에 이뤄진다는 것은 물리적인 여건으로 봤을 때 불가능할 수도 있으니 물리적인 이유 때문에 짧은 시간에 딜(deal)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단기적 비핵화 프로세스를 가동, 북한에 중간 보상을 제공하겠다는 여지를 남긴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비핵화’를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밝혔다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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