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만에 다시 헌재 간 낙태죄...가톨릭 국가 아일랜드마저 합법
"여성의 인권" vs "생명의 존엄" 논란 가열 속...이르면 이달 결론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지난달 24일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공개 변론이 2012년 이후 6년 만에 열렸다. 낙태 수술을 해줬다가 재판에 넘겨진 산부인과 의사가 제기한 헌법소원을 놓고 청구인과 법무부 양측의 대리인들 나와 재판관들의 질문에 답하며 공방을 벌인 것. 이날 헌재 앞에서 검은색 옷을 입은 여성 수백명이 모여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등 위헌 여부를 둘러싼 찬반 문제가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면서 빠르면 이달 선고가 내려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비마이너 회원들 (사진=뉴시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비마이너 회원들 (사진=뉴시스)

6년 전 헌재는 재판관 4대4 의견으로 낙태죄를 '합헌'이라 결정했다. 당시에는 '태아도 생명'이라는 이른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대립하고 있었다. 결정문에서는 "낙태를 처벌하지 않거나 형벌보다 가벼운 제재를 가하게 된다면 현재보다도 훨씬 더 낙태가 만연하게 될 것, 생명에 대한 권리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며 '태아의 생명권'에 무게를 두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판단을 내릴 거란 예측이 나온다. 무엇보다 지난 6년간 낙태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에 변화가 생겼다. 태아의 생명권 이상으로 태아의 모체인 여성의 자기결정권 역시 중요하다는 인식이다. 또 '여성의 자기결정권' 문제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의 현실적인 삶에 대한 고민도 깊어갔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여성이 임신하고 출산하면 육아와 양육 등의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며 "단순히 '태아의 생명권'대 '여성의 자기 결정권' 구도만으로 임신중단 문제를 파악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임신중단 합법화 촉구 집회도 이 같은 인식 변화를 보여준다. 여성 모임 비웨이브(BWAVE)가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를 연 것은 지난해 10월 23일 1차 시위를 시작으로 이번이 벌써 14번째다. 참석자들은 “마이 바디 마이 초이스”, "위헌 결정 내놓아라", "내가 바로 생명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분노했다. 또 7주 된 태아의 크기가 '해바라기 씨'와 비슷하다면서 해바라기 씨를 던지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이 분노한 이유는 간단하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임신중절수술을 한 여성과 이를 시술한 의료진을 처벌하는 '낙태죄'가 버젓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낙태를 한 임부는 1년 이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고, 임부의 동의를 받아 시술한 의사 등은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 합법적으로 임신중절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부모에게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이 있는 경우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한 경우 등 극히 예외적인 사항일 뿐이다.

형평성 논란도 크다. 태아의 아버지인 남성은 법적 처벌 대상에 제외돼있기 때문이다. 일부 남성들이 이를 악용해 상대 여성을 협박하는 사례도 있다는 게 한국여성단체연합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요구하자 남성이 '낙태 사실'을 고발하겠다고 협박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낙태죄의 불합리성은 처벌 문제뿐만 아니라 여성의 건강권 문제에서도 발생한다. 보건복지부가 2010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연간 임신중단 수술 건수는 16만 8,738건이다. 17만 명에 달하는 임부들이 법망을 피하고자 음지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시민들 (사진 = 뉴시스)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시민들 (사진 = 뉴시스)

하지만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진영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한국 천주교는 앞서 3월 낙태죄 폐지 반대 100만인 서명서와 탄원서를 헌재에 제출하면서 "태아의 생명권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 법무부는 '(여성의)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은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는 원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자의에 의한 성관계는 임신에 대한 미필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표현이 담긴 보충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해 논란을 자초한 바 있다. 성관계를 하면 응당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결국 법무부는 여성단체와 일반 여성들의 거센 분노 앞에 두 차례 해명자료를 내고 변론서를 철회하는 등 잠시 꼬리를 내렸다.

국내에서 낙태죄에 대한 찬반양론이 맞서는 가운데, 지난달 26일 천주교 국가 아일랜드에서는 낙태 금지를 규정한 헌법 조항이 전체 투표자 66.4%의 압도적인 지지로 폐지됐다. 낙태에 있어서만큼은 지나치게 보수적이었던 아일랜드에서 임신 12주 이전 임부의 임신중절수술이 허용된 것이다. 단 24주가 넘어간 태아에 대해서는 임부의 건강과 생명에 위협이 될 때만 임신중절수술을 허용했다.

보수적인 천주교 국가는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변화했고, 결국 국민의 손으로 낙태죄를 폐지했다. 아일랜드가 변화하는 동안 한국 역시 변화했다. 과거 뒷전으로 밀렸던 여성 관련 이슈들이 현재 주요 뉴스 톱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헌재가 전향적인 판단을 내릴 거란 전망이 나온다.

한편, 지난 2012년 위헌 결정을 내린 재판관들이 모두 퇴임한 것도 이번 판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진성 헌재소장은 후보 시절 청문회에서 "임신 후 일정 기간 안에 낙태를 허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르면 이달 말 낙태죄의 존폐를 결론지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 가운데,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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