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문제, 감정적 접근 '금물'...근거없는 혐오감 경계해야

2015년 예멘 내전 발발...무고한 예멘인 다수 희생
한국, 난민 보호 의무 있어...지역민 불안 해소도 중요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사우디아라비아 반도 최남단에 자리 잡은 예멘. 한반도보다 2배 이상 큰 영토를 가졌지만, 인구수는 우리의 절반에 불과하다. 한국과 별다른 인연이 없어 보이는 무슬림 국가 예멘이 한국의 언론 매체는 물론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열린 취업설명회에 참석해 상담을 받고 있는 예멘 난민들. (사진=뉴시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열린 취업설명회에 참석해 상담을 받고 있는 예멘 난민들. (사진=뉴시스)

지난 19일 제주도 출입국청에 따르면 올해 입국한 예멘인 561명 중 549명이 이달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했다. 지난해 예멘인 난민 신청자가 42명에 그친 걸 고려하면 유입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이다. 예멘 난민이 폭발적으로 유입됨에 따라 난민 수용 문제에 대해 연일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배우 정우성 씨까지 세계 난민의 날에 "난민과 함께해 달라"며 이 문제에 가세해 머나먼 나라 예멘은 단번에 한국 사회 최대 이슈로 자리 잡았다.

남북의 분열과 전쟁, 분단 등 예멘의 현대사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게 있다면 예멘은 불완전하게나마 통일을 했다는 점이다. 불완전한 통일은 예멘 사회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예멘 내전은 정치와 종교 간의 갈등은 물론 주변국들의 개입까지 낳았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예멘인들이 희생되고 있고, 일부 예멘인들은 극적으로 탈출해 한국을 비롯한 타국에 난민 신청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에 온 예멘 난민들은 '돌아가면 전쟁과 죽음뿐'이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난민의 호소에도 수용을 반대하는 입장이 만만치 않다. 난민들의 대거 증가로 인해 지역민들의 치안 불안이 커지고 있다는 게 대표적인 반대 이유다. 난민 신청자의 90%가 남성이기 때문에 범죄가 증가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제주도 서귀포시에 거주하는 A모(27) 씨는 "난민 대다수가 남성인 게 의아하다"며 "문화도 인종도 다른 예멘인들이 제주도에 적응하지 못해 쉽게 탈법 행위를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젊은 예멘 남성들이 취업을 위해 난민 행세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이른바 '가짜 난민설'이 돌기도 한다. 이 같은 여론을 반영하듯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난민 수용 반대 청원이 연일 올라오고 있다. 13일 올라온 난민 수용 반대 청원은 약 6일 만에 20만 명의 서명을 받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다.

지역민들의 불안감과 반대 여론이 고조되고 있음에도 현재 한국 내 난민 수용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은 1991년 UN 난민협약에 가입했고, 2012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난민을 보호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 전쟁으로 아수라장이 된 예멘 난민 신청자들을 강제로 추방할 수 없는 이야기다.

지난 해 예멘 수도에서 자선기관들이 나눠주는 음식을 받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사진=뉴시스)
지난 해 예멘 수도에서 자선기관들이 나눠주는 음식을 받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한국이 난민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면 이 문제를 감정적인 문제로 접근하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난민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감과 막연한 두려움을 경계하고, 이들을 우리와 같은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신강협 소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재 도민들의 공포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난민들이 도민들에게 가해를 가한 상황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제주도에 있는 예멘 난민 중 취업을 한 사람도 많아 뿔뿔이 흩어졌다"며 "만일 예멘인들이 난민으로 인정받는다고 해도 이후 절차가 매우 까다로워 일탈 행위를 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난민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과 적대감을 반박하는 통계자료도 있다. 제주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1일까지 예멘 난민 관련 신고 가운데 범죄 신고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소음 문제 2건, 응급환자 3건, 생활고 문제 1건, 길 물음 1건 등 총 7건의 신고뿐이었다.

아울러 신 소장은 난민들에 대한 적대감과 공포가 한국 사회에 내재된 이슬람교에 대한 무지와 편견 때문일지 모른다고 진단했다. 신 소장은 "현재 제주도에는 예멘인보다 더 많은 중국인들이 산다"며 "예멘 난민이 이토록 이슈가 된 것은 이슬람교에 편견이 큰 이유인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들이 서구 미디어를 통해 이슬람교를 접하다 보니 왜곡된 시각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국제법상 난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우리나라는 지금 당장 예멘 난민을 추방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시자 당선인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예멘 난민 문제를 국가 현안으로 취급해달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찬반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지역민들의 불안 없이 난민을 어떻게 수용하고 정착시킬 수 있을지 서둘러 모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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