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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이 정치계에 던진 ‘책임’의 무게
노회찬이 정치계에 던진 ‘책임’의 무게
  • 김혜선 기자
  • 승인 2018.07.25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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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국회' 기존 구태정치와 대비
불공정한 정치자금법 개정 논의도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평생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대변했던 노회찬 의원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정치권과 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다. 그의 죽음에 발단이 된 것은 일명 ‘드루킹 특검’에서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 것도, 드러난 증거도 없는 상태였지만 그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자신의 몸을 던졌다. 무엇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노 의원이 발견된 것은 23일 오전 9시 38분경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 현관 앞에서였다. 현장에는 노 의원의 외투, 신분증이 포함된 지갑, 정의당 명함, 유서가 남았다. 이날 오후 정의당이 일부 공개한 노 의원의 유서에는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모두 4천만원을 받았다.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적혀있었다.

노 의원은 유서에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며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고 고백했다.

“책임을 져야 한다”

노 의원에 제기된 혐의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 4천여만원’. 일각에서는 평생 ‘청렴한 정치인’의 아이콘으로 살아온 노 의원이기에 돈과 관련한 문제에서 더욱 민감하고 아프게 받아들였을 것으로 추측했다.

실제로 노 의원은 유서에서 자신의 과오에 대한 변명보다는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며 스스로 부끄러워했다. 자신으로 인해 진보당에 누를 끼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뇌도 담겼다. 노 의원은 “이정미 대표와 사랑하는 당원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다. 정의당과 나를 아껴주신 많은 분들께도 죄송할 따름이다.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며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적었다. 그가 정치인으로서 짊어진 책임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의원이 느낀 책임감과 부끄러움은 ‘방탄국회’라는 오명까지 감수하며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등 많은 특권을 누린 정치권의 행태와 극명하게 대립된다. 그의 죽음이 정치권에 던진 화두는 분명하다. 도덕적 불감증에 빠진 이에게는 자신의 과오와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인간성’을 회복하라는 것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만 갖고 그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는 이에게는 무거운 국회의원의 책임의식을 일깨웠다.

각계각층 이어지는 조문행렬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그의 빈소에는 여야 정치인들은 물론 교복을 입은 학생, 대학생, 아이와 함께한 가족, 직장인, 장애인, 일용직 노동자 등 시민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사망 당일인 23일에는 3천여명의 조문객이 빈소를 찾았고 다음날인 24일에도 6천여명이 더 찾아왔다.

이들이 기억하는 노 의원은 ‘약자의 편에 선 국회의원’이었다. 조문 첫날 빈소를 찾은 한 시민은 “아직도 노 의원님이 돌아가셨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그분만큼 서민과 약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일한 정치인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시민은 “노 의원만큼 깨끗하고 청렴한 정치인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현실이 안타깝다. 계속 살아계셔서 약자를 위해 일하셔야 했다”고 말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사진=뉴스포스트)

정치권은 동료 정치인의 죽음에 여야 할 것 없이 비통에 빠졌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의 벗, 진보정치의 커다란 별을 잃고 말았다. 그 슬픔을 이루 말할 수 없고, 너무도 원통하다. 지금도 현실인지 믿기지가 않는다”며 “그를 외롭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자책을 멈출 수 없다. 무거운 짐을 나눠 들지 못한 것이 너무나 죄스럽다”고 전했다.

같은당 심상정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나의 영원한 동지 노회찬. 그가 홀로 길을 떠났다”며 “억장이 무너져내린 하루가 그렇게 갔다”고 밝혔다.

빈소에는 문희상 국회의장과 더불어민주당 홍영표·자유한국당 김성태·바른미래당 김관영·민주평화당 장병원 원내대표가 첫날부터 문상을 위해 방문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와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김동철 바른미래당 비상대책위원장, 조배숙 민주평화당 대표 등도 조문 행렬에 참석했다.

평소 노 의원과 친분이 깊던 이들도 빈소를 찾아 그의 영정 앞에서 오열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24일 큰절 도중 터져나오는 울음을 이기지 못하고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유시민 작가 역시 노 의원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심상정 의원 앞에서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조 수석은 조문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제 충격적 소식을 접하고 황망하고 비통했다. 믿을 수 없었다. 장례식장에 걸린 영정 사진을 보고서야 눈물이 터져 나왔다”며 “오래 전 어느 허름한 선술집에서 노 의원과 어깨 걸고 노래 부르던 일이 생각난다. 올해 초 눈 오던 날,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린다”고 추억했다. 이어 “진보정치의 별이 졌다고들 한다. 그러나 어느 날 밤 하늘에 새로 빛나는 별이 있으면, 노 의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편히 쉬시라”고 덧붙였다.

진보정치의 별이 지다

노 의원은 많은 이가 기억하는 대로 평생을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의 발전을 위해 뛰어왔다.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난 노 의원은 경기고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제작, 배포하는 등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큰 영향을 받아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대학생 시절에는 노동자의 삶을 살기 위해 1982년 서울의 한 직업학교에서 전기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따 용접공으로 위장취업을 했다. 이후 각종 시위를 주도하고 불온문서를 살포한 혐의로 경찰의 수배선상에 올랐고, 7년간 도망다니다 1989년 체포돼 국가보안법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살았다.

노 의원은 생전 언론 인터뷰에서 투옥생활 당시 겪은 생활고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제가 감옥에 있는 동안 집사람이 제 옥바라지를 하면서 살림을 꾸렸다”며 “집사람이 ‘여성의 전화’에서 일을 하면서 ‘다만 얼마라도 좋으니 생활비는 꾸준하게 벌어다 달라’라고 하더라. 그래서 (매달) 30만원을 약속했는데, 결국 지키지 못했다”고 미안해했다.

1992년 만기 출소한 노 의원은 1997년 진보정당 ‘국민승리21’의 정책기획위워장으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에서 초대 부대표를 지내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중앙정치에 입문했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노 의원의 행보는 카드가맹점 수수료인하 운동,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개선, 학교급식 직영화,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추진 등 ‘서민’을 향했다. 또 삼성에 떡값을 받아온 검사 명단인 ‘삼성 X파일’을 폭로하는 등 대기업의 횡포에 앞장서 맞서기도 했다.

이후 노 의원은 민주노동당 분당으로 심상정 의원과 진보신당을 창당했고, 18대 총선에 서울 노원병에 출마했다가 낙마한 후 19대 총선에서 재도전해 당선됐다. 그러나 국회활동 9개월만에 과거 ‘삼성 X파일’ 문건을 폭로한 것이 문제가 돼 유죄를 선고받고 의원직을 상실하기도 했다. 지난 2014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국회 입성을 다시 시도했지만 패배했고, 2016년 총선에서 경남 창원 성산에 출마해 다시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다.

정치자금법 폐단 문제도 지적

한편, 정치권 일각에서는 현행 정치자금법이 갖는 폐단이 노 의원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치자금법에서 규정하는 정당 국고보조금, 후원금 모집 등이 거대 정당과 현역 정치인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지적이다. 이준석 바른미래당 전 당협위원장은 노 의원의 죽음을 두고 “제도가 사람을 죽인 것”이라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표현했다.

이 전 위원장은 “노 의원은 진보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재산을 모을 기회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 와중에 원외에 있더라도 정치는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럼 주변에서 동창이든 돕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라며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정치 신인이나 원외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법을) 강요한다는 것은 불법을 강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정치자금법 상 후원금을 모집할 수 있는 자격은 국회의원이나 국회의원 예비후보, 지방자치단체장 후보, 대통령 후보 및 예비후보 등에 한정된다. 국회의원 예비후보 등록도 총선 120일 전에야 할 수 있어 후원금 모집 시기도 제한된다. 현역 국회의원의 경우 임기 내내 후원금을 받을 수 있지만 정치 신인이 활동을 하려면 명함, 차량운행비, 문자메시지 발송부터 지역사무실, 직원 임금 등 월 수천여만원의 자금 문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 전 위원장은 “한 사람 당 (정치인에게) 500만 원 한도가 있기 때문에 결국 ‘쪼개기’ 후원을 강제한다든지 강연료 아니면 도서출판회 이런 식으로 편법을 강제하게 된다”며 “정치자금법 개정에 대해서 ‘국회의원 세비를 줄여라’ ‘정치인들 돈을 죄어라’ 이렇게 말하는데 반대로 돈을 죄면 죌수록 역설적으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정치하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고 설명했다.

김혜선 기자 hyeseonkim9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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