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절끓는 서울, 택배·야쿠르트·건설노동자는 쉬지 않는다

지난 1일 한 시민이 최악 폭염을 피하기 위해 양산을 쓰고 남대문 시장을 걷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1일 한 시민이 최악 폭염을 피하기 위해 양산을 쓰고 남대문 시장을 걷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한반도를 뒤덮은 불볕더위가 보름 이상 지속되다가 8월 벽두에 정점을 찍었다.

지난 1일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의 낮 기온이 39.6도까지 올라 역대 서울 지역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강원 홍천의 경우 41.0도까지 치솟아 1942년 대구가 기록한 40.0도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1907년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111년 만에 최악 폭염이 한반도를 강타한 상황.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 경보가 내려지는 등 대한민국은 가마솥더위에 몸살을 앓고 있다.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최악의 폭염이 이어지면서 대부분 시민은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냉방이 가동되는 실내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실외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도 생업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에 기자는 이날 오전 11시 20분께부터 오후 2시 20분께까지 서울 서대문구와 중구 등지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생업을 이어가는 이들을 찾아 고충을 들어봤다.

지난 1일 야쿠르트 판매원 A씨가 오후 판매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1일 야쿠르트 판매원 A씨가 오후 판매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뙤약볕에서 장사...손님 없어 울상
가장 쉽게 만날 수 있었던 실외 노동자는 서울 서대문구 인근 직장인 밀집 지역에서 근무하는 야쿠르트 판매원 A씨였다. 30년 넘게 야쿠르트 판매원으로 근무했다는 A씨는 오전 배달 업무를 마치고 오후 판매 업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베테랑 판매원인 A씨에게도 사상 최악의 폭염은 고역이었다. 그는 "30년 넘게 일했지만 이번만큼 무더운 여름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장시간 뙤약볕 아래에서 움직이지 않고 일해야 하는 A씨는 오후 내내 파라솔을 피고 제품을 판매한다. 하지만 파라솔은 최악 폭염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길가에 있다 보면 아스팔트와 차량 열기가 몸쪽으로 밀려와 특히 힘들다"고 토로했다.

A씨는 폭염 속에서도 시원한 반 소매 티셔츠 대신 무더운 긴 소매 상의를 입고 있었다. 그는 "햇볕에 노출되면 화상을 입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긴팔 상의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일정 장소에서 움직이지 않고 근무해야 하므로 더위를 피하는 것 보단 화상을 방지하는 게 우선이라는 이야기다.

무더위에 시원한 야쿠르트를 사려는 사람들이 증가할 법도 하지만, A씨는 도리어 폭염 때문에 매출량이 줄었다고 전했다. 그는 "유동인구가 적기 때문에 오히려 매출이 급감했다"며 "그래도 단골손님들 때문에 팔리든 안 팔리든 이곳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 최악 폭염으로 한산한 남대문 시장 모습.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1일 최악 폭염으로 한산한 남대문 시장 모습. (사진=이별님 기자)

역대 최악의 폭염은 365일 내내 사람들로 북적이는 서울 남대문 시장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날 오후 남대문 시장은 한산했다. 폭염으로 양산을 쓰고 쇼핑을 하는 시민들도 있었지만, 왁자지껄한 시장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남대문 시장 입구 근처에서 김밥을 판매하는 상인 B씨의 얼굴에는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가득했다. 오전 11시나 정오에 일을 끝마친다는 B씨는 이날 오후 1시 반이 넘어서도 퇴근을 하지 못했다. 그는 "점심 이전에 음식이 다 팔리는데,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며 "재료도 많이 남았다"고 말했다.

사람이 없다 보니 매출량이 급감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B씨의 하소연은 최악 폭염으로 깊어진 상인들의 한숨을 대변했다. 그는 "폭염으로 손님들이 안 오는 게 제일 힘들다"며 "매출량이 지난해에 비해 2, 30%나 떨어졌다"고 말했다.

B씨는 "아무리 평일 낮이라도 오늘보단 사람이 많았다"며 "어제까지만 해도 사람이 좀 있었는데, 오늘은 더더욱 없다"며 남대문 시장마저 한산하게 만든 최악 폭염의 위엄을 전해줬다.

지난 1일 펄펄 끓는 폭염 속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물류를 나르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1일 펄펄 끓는 폭염 속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물류를 나르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밖에서 움직이며 땀 뻘뻘...쉴 곳도 마땅치 않아
야외에서 종일 움직이며 일하는 노동자에게 폭염은 더더욱 고통스럽다. 택배 배달 노동자인 C씨는 폭염 속에 장시간 지속되는 배달 업무가 매우 고통스럽다고 증언했다.

C씨는 "폭염으로 물류량은 줄었으나, 몸까지 같이 축축 처져 빨리 움직이질 못한다"며 "요즘 같은 날씨에도 10시간에서 12시간 이상 근무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폭염 속 장시간 근무에도 C씨와 같은 택배 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할 곳은 거의 없었다. C씨는 "시간이 날 때 상가나 은행에 들어가서 잠깐 에어컨 바람을 쐬고 나오는 게 휴식의 전부다"라며 "다른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10일 넘게 지속되고 있는 최악의 열대야 역시 택배 노동자들에겐 고역이다. C씨는 "열대야 때문에 밤에 근무해도 너무 힘들다"라며 "집에 와서도 더위 때문에 잠을 못 자 피로가 누적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일 폭염 속에서 근무 중인 D씨와 동료들.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1일 폭염 속에서 근무 중인 D씨와 동료들. (사진=이별님 기자)

111년 만의 최악 폭염에서 건설 노동자만큼 고통받는 이를 찾기 힘들 것이다. 서울 서대문구 인근 상가 옆 보도블록 위에서 공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 건설 노동자 D씨는 "남들은 내 앞에서 덥다는 소리를 못 할 것"이라며 애써 웃으며 말했다.

D씨는 폭염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의 건강 상태를 상시 점검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위 속에서 무리를 하면 몸에서 열이 오른다"며 "이를 스스로 체크하면서 몸을 식힌다"고 말했다. 체력적으로 무리가 뒤따를 때 동료와 교대를 하면서 휴식을 취한다는 게 D씨의 설명이다.

하지만 생업이 달려있기 때문에 D씨는 폭염에도 쉬지 않고 작업장으로 나왔다. 폭염에도 주어진 일을 다 해야 한다는 게 D씨의 생각이다. 그는 "이 더위에 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내 일이기 때문에 책임감을 갖고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상청에 따르면 이번 주 후반 기온이 2, 3도가량 떨어질 예정이나 불볕더위는 지속될 전망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번 주말부터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1, 2도가량 떨어진다고 해도 35도 이상이다"라며 "최소 오는 12일까지는 무더위가 지속되겠다"고 전했다.

시민들의 밤잠을 설치게 하는 열대야도 당분간 지속된다. 열대야는 야간의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인 밤을 뜻한다. 이 관계자는 "12일까지 서울 최저기온이 26도까지 떨어지지만, 열대야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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