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조폭’이라고 불릴 것 같은 사내들이 급하게 응급실로 들어왔다. ‘담당이 너냐? 우리 형님 잘 좀 봐드려라.’ 그들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 멱살을 잡아들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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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번쩍이는 별이 보였다. 정신을 차리니 내 고개가 돌아가 있었다. 그가 내 따귀를 후려친 것이었다. 나는 뭔가 움직이는 기척을 느꼈지만, 멸균된 손으로 환자의 몸에 주사기를 꼽은 상태라서 전혀 반응할 수 없었다. 볼이 화끈거리며 아찔하고 참담한 느낌이 들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사인 남궁인씨가 지난해 2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남 의사가 조폭 주먹을 얻어맞으며 응급환자를 살린 일은 지난 2010년에 일어났다. 최근 잇따라 불거진 응급실 의료진 폭행사건은 어쩌다 한번 일어나는 일이 아닌, ‘일상’이라는 얘기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최근 속수무책으로 일어난 응급실 폭행사건도 매맞는 의사들의 어두운 현실을 조명해준다. 지난달 1일에는 전북 익산에서, 6일 강원도 강릉에서, 29일과 31일에는 전북과 전남 순천에서 응급실 의사가 환자와 보호자 등에게 무차별 폭행당했다. 지난 16일에는 다른 환자를 치료하고 있던 응급의학과장에 가해자 A씨(57)가 다가가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렸다.

의료진의 폭행을 방지하는 법안은 지난 2016년 5월 통과됐지만, 남 의사는 해당 글에서 “그 후로도 폭행 피의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았던 일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폭행 현장에서 경찰 등 공권력은 방관하고, 의사들은 현실적으로 환자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처벌이나 실형을 강력하게 원하기 어렵다는 게 남 의사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의사 폭행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특히 의료진을 폭행하는 행위는 응급실 내 치료가 필요한 다른 환자들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중대 범죄라는 인식이다.

지난달 1일 전북 익산시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임모(46)씨가 의사 A(37)씨를 폭행한 직후 경비원들에게 제지 당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1일 전북 익산시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임모(46)씨가 의사 A(37)씨를 폭행한 직후 경비원들에게 제지 당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술마셔서’ 변명 안 통한다

이에 국회에서도 의료진 폭행에 가중처벌을 내리는 등 강력한 규제와 처벌을 도입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주취자의 의료진 폭행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점을 감안해 이 경우 가중처벌을 하는 내용의 개정안도 다수 발의됐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신고된 응급의료 방해행위 893건 중 폭행 건수는 365건으로 40.8%에 달했다. 또 가해자가 술에 취한 경우는 604건(67.6%)으로 응급실 난동 사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이 지난 13일 발의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개정안’은 의료인을 폭행해 상처를 입힐 경우 3년 이상의 징역,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는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특히 개정안은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이유로 형을 감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둬 주취 폭행자에 대한 선처를 원천 차단했다.

김 의원은 “현행법으로는 (의료진 폭행자가) 처벌되는 사례가 많지 않고 처벌을 받더라도 가벼운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규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폭행자를) 가중처벌함으로써 의료인 등의 안전을 확보하는 한편, 이를 통해 일반 국민들이 안전하고 적절한 진료와 응급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이밖에도 응급실에 청원경찰 인력을 의무적으로 배치하고, 그 경비를 정부가 부담하는 내용의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도 의료진 폭행 사건에 ‘주취자 가중처벌’ 조항을 두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17일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의료진을 폭행해 상처를 입힐 경우 기존 형의 50%를, 중상해 또는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기 의원은 “주취자의 경우 감정적·우발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폭력 행사 시 보다 큰 피해를 야기할 수 있으며, 실제로도 주취자의 폭력으로 인한 의료기관 및 의료인의 피해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환자의 생명권이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응급실 응급의료종사자에 대한 주취자의 폭행은 오히려 보다 강력히 가중하여 처벌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에도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이 다수 발의됐다. 지난달 17일에는 한국당 박인숙 의원은 의료진 폭행 건에 대한 처벌에서 현행 ‘벌금형’을 삭제하고 징역형만 부과하는 내용의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같은당 윤종필 의원도 벌금형을 없애고 10년 이하 징역형만 부과하는 개정안을 지난달 18일 발의했다. 이명수 의원은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이유로 형을 감경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을 추가한 개정안을 지난달 31일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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