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째 임금 동결..."'소사장제'가 진짜 문제"
하루 최대 18시간 근무...'구두 장인' 명맥 끊겨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우리 성수동 '구두장인'들도 사람답게, 인간답게 살고 싶습니다"

지난 6일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가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일대에서 코오롱FnC에 단체교섭에 응하라며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6일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가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일대에서 코오롱FnC에 단체교섭에 응하라며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6일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측은 이날 오후 12시 5분께 서울 성동구 성수동 한라 시그마 벨리 2차 앞에서 제7차 '코오롱FnC 슈콤마보니 규탄대회'를 개최했다. 슈콤마보니는 코오롱FnC의 대표 수제화 브랜드다.

이날 집회에서 슈콤마보니 하청업체 소속 제화 노동자들은 "'공임 인상'과 '소사장제 폐지' 등을 논의하자"며 코오롱FnC 측에 단체교섭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노동자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본사가 직접 나서서 보장하라는 게 제화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슈콤마보니 수제화를 제작하는 하청업체 소속 제화 노동자들은 지난달 31일부터 본사 측을 상대로 파업에 돌입하고, 성수동 수제화 거리 인근에 농성장을 마련해 노숙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집회 역시 농성과 함께 시작했다.

눈에 띄는 점은 이날 집회에 참석한 인원 대부분은 슈콤마보니 소속이 아니라는 것이다. 100여 명의 집회 참석자 중 절반 이상은 성수동 일대 수제화 거리에서 근무하는 타사 하청업체 소속 제화 노동자들이다. 3·40년 이상 경력의 제화 기술자들인 이들은 점심시간을 할애해 매일 집회에 참석한다.

황금 같은 점심시간까지 반납하고 집회에 나온 타사 소속 제화 노동자들은 슈콤마보니 노동자들의 상황을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공감했다. 이들은 집회 발언을 통해 슈콤마보니의 사안은 코오롱FnC뿐만이 아니라 성수동 수제화 거리 일대 제화 업계 대다수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제화 노동자들이 파업을 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올해 4월 탠디제화는 제화 노동자들의 공임를 500원 인하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은 바 있다. 이에 탠디 제화 하청업체 소속 제화 노동자들은 같은 달 4일부터 파업을 시작해 38일간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성수동 일대 제화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다수의 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어났다. 논란이 커지자 탠디제화는 5월 공임 1,300원 인상안을 내놓고 노사합의에 성공했다.

열악한 환경에 시달리던 제화 노동자들은 '탠디제화 사태' 이후 노조에 가입하고,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이들은 세라제화, 고세제화, 라팡제화와 공임 인상 등을 협의하는 소정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제화 노동자들이 탠디제화 사태가 일어난 지난 4월부터 현재까지 약 6개월 이상 제화업계 본사 측과 싸우고 있지만,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제화 업체들은 노조 측과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본지는 제화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이들의 요구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사무국장 이현수 씨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6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일대에서 열린 코오롱FnC 규탄 집회에서 이현수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이현수 사무국장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지난 6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일대에서 열린 코오롱FnC 규탄 집회에서 이현수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이현수 사무국장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별님 기자)

"우리는 사장님이 아니다"

이씨는 성수동 일대 다수의 구두 브랜드 업체에서 47년간 간 근무한 베테랑 제화 노동자다. 현재 제화 일을 그만뒀다는 이씨는 사측에 맞서는 선후배 제화 노동자들을 보고 이 문제에 뛰어들었다. 그는 "성수동 쪽에서 제화공들이 파업하고 있다고 해서 가봤다"며 "처음에는 구경만 했는데, 사연을 듣다 보니 가슴이 아파 집회 봉사라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에 따르면 현재 제화 노동자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수십 년째 이어지는 임금 동결 상황이다. 그는 "성수동 일대 제화 노동자들의 공임은 거의 20년 동안 동결됐다"며 "심지어 일부 제화 업체는 임금을 깎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이씨는 "슈콤마보니의 구두 한 켤레당 공임은 7천원 정도로 타사 보다는 많이 준다"며 "다른 업체의 공임은 구두 한 켤레당 4,500원에서 6,500원 정도다"고 설명했다. 이어 "슈콤마보니 제품 디자인 특성상 제작이 어렵다"며 "다른 업체보다 공임을 많이 준다고 해도 제작 시간이 많이 걸려 수입은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성수동 일대 제화 노동자들이 만드는 수제화는 업체마다 다르지만 보통 2·30만 원대의 높은 가격대로 팔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를 제작하는 제화 노동자들은 20년 이상 같은 임금을 받고 있다. 명품 수제화를 만드는 최고의 기술자들이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제화 노동자들이 직면한 문제에는 임금 동결 문제뿐만 아니라 제도적인 부분도 있다. 이씨는 제화 업계가 2000년부터 '소사장제'를 도입하면서 노동자들이 노동 사각지대에 놓였다고 주장했다.

일종의 특수고용직인 소사장제는 제화 노동자들을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분류한다. 이 때문에 제화 노동자들은 본사의 하청업체에 소속돼 있으면서도 4대 보험과 퇴직금, 연차 등을 누리지 못한다.

이씨는 "제화 노동자들보고 사장님이라고 하는데, 대우는 일반 노동자들만 못하다"며 "세금 등 사장으로서 진 의무를 다하고 있으면서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전혀 누리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진짜 사장은 우리가 아닌데 덤터기를 씌운 셈"이라며 "공임 인상, 소사장제 폐지, 4대 보험·퇴직금 등 보장 등을 현재 노조 측이 요구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측이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일대에 마련한 농성장. (사진=이별님 기자)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측이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일대에 마련한 농성장. (사진=이별님 기자)

"첫차 타고 출근해 막차 타고 퇴근"

낮은 임금과 소사장제는 제화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을 열악하게 만들었다. 이씨는 제화 노동자들이 하루 평균 16시간에서 18시간까지 근무한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주 52시간 근무'는 먼 나라 이야기다. 일감이 많을 때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수제화를 만들어야 한다. 특수고용직인 탓에 연차와 월차 역시 보장받지 못한다.

이씨는 "제화 노동자들은 첫차 타고 나와서 막차 타고 퇴근한다"며 "인천이나 부천에 사는 이들은 일이 늦게 끝날 경우 성수동 일대 사우나에서 잠을 자고 다시 출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루 평균 16시간 이상 일하지만, 제화 노동자들의 벌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씨는 슈콤마보니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의 예를 들면서 "구두 장인 한 명이 하루에 수제화 15개를 만들면 11만원 정도 번다"며 "밥 값과 차비를 제외하면 하루 치 임금은 10만원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두가 팔리지 않는 비수기(1~2월, 7~8월경) 때는 이마저도 벌지 못한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러니 제화 노동자들이 일하는 작업실 역시 쾌적하지 못하다. 이씨는 "(작업실에서는) 본드 냄새와 먼지가 가득하다"며 "한참 일 하다 보면 머리가 멍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풍 시설을 설치하거나 마스크를 쓰고 일할 수도 없었다. 그는 "환풍 시설을 달기에는 금전적인 문제가 있다"며 "너무 오래 일하니까 마스크도 답답해서 못 쓴다"고 말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일 하다 보니 건강에 무리가 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씨는 "가위질을 하다 보면 손가락에 가위 자국이 그대로 있다"며 "손가락 마디마디에 관절염이 생긴다"고 말했다. 아울러 본드 냄새와 먼지로 가득한 작업실 탓에 호흡기관도 좋지 않다고 전했다.

3·40년 이상 한길을 걸어온 장인이라도 이 같은 노동환경에서 일하다 보면 실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일부 제화 업체들은 실수에 대한 책임을 제화 노동자에게 묻는다고 이씨는 증언했다. 소비자가 문제가 된 제품에 대해 본사에 컴플레인을 걸 경우 본사 측도 하청업체 측도 아닌 일개 제화 노동자가 벌금을 낸다는 것이다.

이씨는 "사람이 첫차 타고 출근하고 막차 타고 퇴근하다 보면 무지하게 피곤해 일에 실수가 생길 수 있다"면서 "그럴 때는 하청업체 검품부에서 검품을 해야 하는데, 거기서도 못한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걸 손님이 구매해 컴플레인을 걸면 제화 노동자가 50만 원에서 150만 원 가량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떤 사람은 한 달 월급을 그대로 벌금으로 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일대 농성장에 마련된 피켓들. (사진=이별님 기자)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일대 농성장에 마련된 피켓들. (사진=이별님 기자)

아울러 이씨는 제화 업계 일부 하청업체들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는 "제화 노동자들이 실수할 경우 온갖 인신공격을 하는 하청업체 직원들도 있다"며 "어떨 때는 자존심이 매우 상한다"고 증언했다. 그는 이 같은 하청업체 측의 갑질 때문에 제화 노동자들의 이직률이 매우 높다고 전했다.

최고의 기술자들이 비참한 대우를 받다 보니, '구두장인'의 명맥마저 끊기게 생긴 상황이다. 현재 성수동 제화 거리에 있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5·60대 이상 장년층이다. 이씨는 젊은 인재 양성이 되지 않는 구조에 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씨는 "제화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이 열악해 젊은 사람들이 배우려 하지 않는다"며 "앞으로 10년 지나면 일할 사람이 없을 거 같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직업 만큼 복지가 좋아진다면 청년들도 이 일을 배우려고 할지 모른다"면서 "그렇게 된다면 일자리 창출도 될 수 있을 텐데 명맥 자체가 끊기게 생겼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성수동의 명물 수제화 거리. 이곳을 명물로 만든 주역은 바로 제화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 같이 "이제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친다. 이씨 역시 "20년 이상 억압받고 살았다"며 "성수동 제화 노동자들은 사람답게 살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비합리적인 제도, 비인간적인 대우 등 때문에 제화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는 것은 물론 구두장인의 명맥마저 끊기게 생겼다. 제화 업계가 노동자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미래에는 성수동 명물 수제화 거리마저 사라질지도 모른다.

한편 코오롱FnC 관계자는 제화 노동자들과의 단체교섭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해당 관계자는 "제화 노동자분들은 코오롱FnC와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아니라 협력업체와 계약한 분들"이라면서 "협력업체에 제화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달라고 하면 공정거래법 위반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탠디제화 등 일부 제화 업체들이 본사와 협력업체, 제화 노동자 3자간의 합의를 이루었지 않았냐는 반문에는 "타 업체와 코오롱FnC는 계약 내용이 다를 것"이라며 "본사로서 도의적인 책임이 있지만, 협상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관계자는 "슈콤마보니는 제화 노동자들에게 업계 최고 임금을 주고 있다"며 "(제화 노동자들이) 지난 7월 24일 자로 2,600원에 합의했는데, 갑자기 3천 원 인상을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